장하준 교수 9년 만에 새책
‘경제학 레시피’ 30일 출간
“경제학 원리 알아야 위기 대처”
“2008년 시작된 글로벌 금융위기는 끝난 적이 없습니다. 지금의 위기는 후속편입니다. 자본주의 역사상 가장 낮았던 0%대 이자율로 잠시 막았던 폭탄이 언제 어디서 터질지 몰라요. 경제 위기가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기 일보 직전입니다. 경제학의 원리를 알아야 하는 이유죠.”
책 ‘사다리 걷어차기’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등으로 유명한 장하준 런던대 경제학과 교수(60)가 말했다. 그는 ‘장하준의 경제학 레시피’(부키·사진)를 30일 출간한다. ‘장하준의 경제학 강의’ 이후 9년 만이다. 장 교수는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27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사태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지뢰밭을 예고했다. 한 군데서 터진 위기가 다른 국가로 이어질 수 있으며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라고 진단했다.
새 책에서 장 교수는 마늘, 멸치, 바나나 등 18가지 재료를 소재로 경제발전사와 경제학 이론을 풀어냈다. 그는 “경제에 관심이 없는 독자들을 유혹하기 위해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음식을 미끼로 꺼냈다”고 했다.
19세기 페루는 멸치를 잡아먹고 사는 물새들의 배설물 ‘구아노’를 활용해 고급 비료를 만들어 경제 호황을 누렸지만 그 영광은 100년도 지속되지 못했다. 1909년 독일 과학자가 인공 비료의 대량 생산 기술을 개발하면서 가격 경쟁력을 잃은 것. 마찬가지로 1970년대 독일과 미국 과학자들이 인공 고무를 개발하면서 전 세계 천연고무의 절반을 생산하던 말레이시아는 경제에 타격을 입었다. 쪽빛을 내는 천연염료를 생산하는 인도의 ‘인디고’ 산업은 1897년 남색 염료를 인공으로 생산하는 기술이 개발된 뒤 거의 붕괴됐다.
장 교수는 “자연자원이 풍부한 나라도 기술 개발을 통해 생산성을 높이지 않으면 시장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다”며 “생산성 향상은 한국 경제가 궁극적으로 나아가야 하는 정공법”이라고 강조했다.
책에는 경제학의 특정 견해를 여과 없이 받아들이는 것에 대한 경계도 담았다. 그는 “우린 음식을 만들 때 유명 조리법을 그대로 답습하지 않고 내 입맛에 따라 비법을 조금씩 바꾼다. 경제학에도 이 같은 태도가 필요하다”고 했다. 1980년대에 다시금 주류로 자리 잡은 신고전학파의 이론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할 것이 아니라, 자국의 상황에 맞게 다양한 복지제도와 보호주의를 갖추는 유연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이번 책은 ‘경제 문맹’이 없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썼습니다. 음식 이야기를 타고 경제학에 도착하는 이 여행 끝에, 앞으로 경제학을 ‘어떻게 더 잘 차려 먹을 수 있을지’에 대한 생각이 정립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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