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를 비롯해 각종 숏폼 영상 플랫폼의 인기로 인해 길게는 20분, 짧게는 1~2분가량의 짧은 영상 콘텐츠가 인기를 끌고 있다. 하지만 이런 분위기 속에서도 지레 겁부터 먹게 만드는 긴 러닝타임의 영화들이 꾸준히 제작되고 있다. 최근 ‘타이타닉’을 누르고 역대 전 세계 흥행 순위 3위에 오른 ‘아바타: 물의 길’은 3시간 10분이 넘었으며 내달 14일 개봉하는 ‘존 윅4’도 2시간 40분에 달한다. 올여름 개봉하는 최고 기대작 중 하나인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오펜하이머’ 역시 3시간에 달한다고 알려졌다. 하지만 ‘아바타: 물의 길’의 러닝타임이 애교로 느껴질 정도로 엄청난 길이의 영화들도 수두룩하다.
○세상에서 가장 긴 영화는?
도대체 보는 사람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말도 안 되는 길이의 영화는 의외로 많다. 역사상 가장 긴 영화로 알려져 있는 작품은 2012년 스웨덴의 에리카 마그누손과 다니엘 안데르손이 함께 만든 ‘로지스틱스’다. 중국 공장에서 생산된 만보기가 스웨덴 한 상점에서 판매되기까지의 모든 과정과 공정을 역순으로 담아낸 이 영화의 러닝타임은 무려 857시간이다. 영화를 한 번도 안쉬고 36일 동안 봐야 한다는 이야기다. 핀란드의 한 제지회사 건물을 촬영한 2011년 영화 ‘모던 타임즈 포에버’의 러닝타임은 240시간으로 다보는 10일 걸린다.
하지만 이런 류의 영화들은 전위성이 강조된 실험영화로 극장이 아닌 러닝타임 제약이 없는 갤러리 등에 전시되듯이 상영되는 게 일반적이다. ‘로지스틱스’와 ‘모던 타임즈 포에버’도 각각 시립도서관과 건물 외관 스크린에서 상영됐다.
하지만 극장에서 상영된 가장 긴 영화도 만만치 않다. 영국의 피터 왓킨스 감독이 만든 1987년 다큐멘터리 영화 ‘더 저니’(원제 리산Resan)는 러닝타임이 무려 873분이다. 1983년부터 1985년 여러 대륙을 돌아다니며 핵무기로 인한 군사비 증가에 의한 빈곤 문제를 담은 작품으로 베를린영화제에서 상영된 후 2007년 오스트리아 영화관에서 왓킨스 감독 회고전의 일부로 상영됐다. 왓킨스 감독의 또 다른 다큐멘터리 ‘코뮌’도 러닝타임이 345분이나 된다.
극영화 중 가장 긴 영화는 2018년 아르헨티나 마리아노 이나스 감독이 연출한 808분 길이의 뮤지컬 영화 ‘라 플로르’다. 여섯 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됐으며 세 번에 나눠 상영했다. 2019년 제20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상영돼 눈길을 끌었다.
○3시간짜리 ‘내부자들’ 감독판 보다 긴 한국영화는?
톨스토이의 소설을 기반으로 1967년 구소련 세르게이 본다르추크 감독이 만든 ‘전쟁과 평화’의 러닝타임은 484분으로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상(외국어영화상)을 받은 영화 중 가장 긴 작품으로 기록됐다. 실감 나는 전쟁 장면을 위해 75만 명의 엑스트라를 동원, 영화 역사상 최다 엑스트라 동원이라는 기네스 기록도 가지고 있다.
비교적 짧게 제작되는 애니메이션 영화 중 가장 긴 작품은 163분 길이의 1983년 일본 애니메이션 ‘우주전함 야마토’다. 1974년 일본 TV만화로 시작된 애니메이션 시리즈의 극장판으로 2199년 외계인의 침략을 받은 지구를 배경으로 하는 SF다. 지난해 개봉한 ‘신 에반게리온 극장판’이 155분으로 그 뒤를 잇는다.
최장 러닝타임의 한국영화는 고 신상옥 감독이 만든 1962년 ‘폭군 연산’이다. 박종화 작가의 소설 ‘금삼의 피’를 영화화한 작품으로 동시 제작된 ‘연산군’과 함께 ‘신상옥의 연산군 2부작’으로 불린다. 원 영화의 러닝타임은 192분에 달하나 영화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던 신 감독이 2000년 직접 영상자료원에 보관된 필름을 반출한 뒤 54분을 삭제해 해당 분량은 영원히 볼 수 없게 됐다.
두 번째로 긴 영화는 이병헌·조승우 주연의 ‘내부자들’의 감독판이다. 영화가 크게 흥행하자 130분 본편에 무려 50분을 더한 180분짜리 감독판을 ‘내부자들: 디 오리지널’이라는 이름으로 개봉했다. 청소년관람불가에다가 긴 러닝타임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208만 관객을 모았으며 본편이 모은 707만 관객까지, ‘내부자들’이 모은 관객만 915만 명이 넘는다.
○영화 한 편 만드는 데 12년?
영화가 완성되기까지 제작이 일시 중단되거나 지연됐던 작품을 제외하고 순수 제작에 가장 오랜 시간을 투자한 영화는 미국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의 2014년 작 ‘보이후드’다. 극 중 주인공인 6살 소년 메이슨 주니어가 대학에 들어가기까지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는 12년 동안 촬영했다. 다큐멘터리 영화가 아닌 극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주인공을 연기한 아역배우 엘라 콜트레인이 실제 6살이었던 2002년 촬영을 시작했으며 엘라 콜트레인을 비롯해 패트리시아 아퀘트, 에단 호크 등 배우들이 1년마다 모여 조금씩 촬영해 총 165분짜리 장편영화를 만들었다. 패트리시아 아퀘트는 이 영화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받았다.
링클레이터 감독은 1996년 로맨스 영화 ‘비포 선라이즈’를 시작으로 9년마다 2004년 ‘비포 선셋’, 2013년 ‘비포 미드나잇’을 내놔 ‘비포 3부작 시리즈’를 완성하기도 했다. 세 영화 모두 에단 호크와 줄리 델피가 주연했으며 영화 속 캐릭터도 영화마다 9년의 시간이 흐른 것으로 설정됐다.
비슷한 방식으로 촬영된 다큐멘터리 ‘업’ 시리즈도 있다. 서로 다른 계층의 7살 영국 소년·소녀 20명의 이야기를 담은 1964년 다큐멘터리 ‘7 업’을 시작으로 이들이 아이에서 청년으로, 또 청년에서 성인이 되어가는 과정을 7년 주기로 담아냈다. 1970년 14세가 된 아이들의 모습을 담아낸 ‘7 플러스 7 업’이 나왔고 총 63년에 걸쳐 ‘28 업’, ‘35 업’, ‘42 업’, ‘49 업’, ‘56 업’ ‘63 업’ 등 총 8편의 다큐멘터리를 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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