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코페르니쿠스 이전… 알하이삼이 있었다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4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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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혁명 출발점 ‘지동설’ 뿌리
이슬람 천문학자들에게서 시작
잊혀진 과학사의 주역들 복원
◇과학의 반쪽사 /제임스 포스켓 지음·김아림 옮김/536쪽·2만1000원·블랙피쉬

지동설은 폴란드 천문학자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1473∼1543)가 처음 주장한 것이 아니었다. 당대를 지배하던 천동설을 뒤집으며 과학혁명의 출발점으로 여겨진 과학사의 대전환은 사실 9세기 이슬람 천문학자들로부터 출발했다. 11세기 이집트 천문학자 이븐 알하이삼과 13세기 페르시아 천문학자 나시르 알딘 알투시는 지구가 행성 궤도의 중심에 있지 않고 태양이 우주의 중심에 있을지 모른다고 추론했다. 코페르니쿠스는 이 학자들의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있다. 그의 연구서에 적힌 수학 기법이 아랍어와 페르시아어 문헌에서 나왔다. 인식의 전환을 상징하는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라는 말은 지극히 서구 유럽 중심적인 표현인 셈이다.

영국 워릭대에서 과학기술사를 연구한 저자가 서구 중심의 과학사에서 잊혀진 중동과 아시아, 아프리카, 남미의 과학사를 기록했다. “과학혁명이 서구의 창조적 산물”이라는 인식을 부수고 진정한 기원을 파헤쳤다. 과학혁명은 서구 유럽에서 어느 날 갑자기 태동한 게 아니라 전 세계가 오랜 시간 문화적으로 교류하며 함께 축적해온 더 넓은 차원의 역사라는 것이다.

르네상스 과학혁명은 유럽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당대 오스만제국은 유럽과 과학 문물을 활발히 교류했을 뿐 아니라 들여온 문물을 자체적으로 활용하기도 했다. 16세기 말 오스만제국 궁정의 최고 천문학자 타키 알딘이 이스탄불 천문대에서 관측하고 있는 모습을 그린 세밀화에는 14세기 말 유럽에서 발명된 기계식 시계가 그려져 있다. 어린 시절 로마에 머물며 르네상스 과학 문화를 접한 타키 알딘은 기계식 시계로 항성이나 행성이 밤하늘을 가로지르는 데 걸리는 시간을 정확히 측정했다. 저자는 “기계식 시계를 처음 발명한 건 유럽이지만 이 시계를 천문대에 최초로 설치한 건 오스만제국”이라고 강조한다.

저자에 따르면 과학혁명이 서구의 산물로 인식되기 시작한 건 20세기 냉전을 거치면서다.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간 대립이 국제 정치를 지배하면서 영국과 미국 역사학자들을 중심으로 근대과학의 발원지를 유럽으로 규정했다는 것. 이 과정에서 유럽과 미국을 제외한 소련과 아시아, 아프리카, 남미 대륙의 과학사는 누락됐다.

저자는 반쪽짜리 과학사를 완전하게 복원하려는 이유에 대해 “오늘날 과학계의 축이 바뀌고 있다”며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더 잘 반영하는 새로운 과학사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오늘날 아랍에미리트(UAE)의 화성 탐사선 프로젝트를 이끄는 교육·첨단과학기술장관은 36세 여성 과학자 사라 알 아미리다. 21세기 과학의 중심이 서구 백인 남성에 있지 않듯 과거에도 그랬다는 얘기다.

책에는 서구 중심의 과학사가 놓쳤던 과학혁명의 주역들이 빼곡히 담겨 있다. 이들의 면면은 국적뿐 아니라 성별, 인종, 종교 등 여러 면에서 다채롭다. 원제(‘Horizons’)는 근현대 과학사의 지평을 넓힌다는 뜻을 담았다.

#과학혁명#지동설 뿌리#과학의 반쪽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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