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연민 등 인간적인 유령 선보여
“두려움에 도망가고 싶었지만 해내”
샹들리에 등 1988년 제작 세트 공수
6월까지 부산, 7월엔 서울서 공연
배우 조승우가 연기한 유령은 사랑과 연민 앞에서 한없이 초라해지는 ‘인간적인’ 존재였다.
조승우는 지난달 30일 부산 남구 드림씨어터에서 개막한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에서 주인공 유령 역을 맡으며 거장 앤드루 로이드 웨버 작품을 처음 연기했다. 그는 “‘내겐 너무 큰 옷인가’ 하는 두려움과 편견 어린 시선에 도망가고 싶을 때도 많았지만 동료를 비롯한 많은 분들이 용기를 준 덕에 해낼 수 있었다”고 밝혔다.
‘오페라의 유령’은 1986년 영국 런던 웨스트엔드에서 초연된 후 세계 188개 도시에서 관객 1억4500만 명이 관람한 대작이다. 프랑스 작가 가스통 르루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작곡가 웨버가 뮤지컬로 재탄생시켰다.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에서는 1988년 첫선을 보인 뒤 사상 최장기간(35년) 공연됐다. 한국어 라이선스 공연은 2010년 이후 13년 만이다.
유령은 흉측한 얼굴을 가면으로 가린 채 오페라하우스 지하에 숨어 사는 천재 음악가다. 신인 여가수 크리스틴을 향한 깊은 사랑, 그리고 사랑이 이뤄지지 않자 분노와 연민을 표현하는 것이 관건. 1일 공연에서 1막 초반 욕망과 권위 의식으로 점철된 모습을 보여준 조승우는 2막 끝 장면에서 한껏 굽은 등으로 눈물을 쏟아내며 감정의 낙차를 극적으로 표현했다. 넘버 ‘그 밤의 노래(The Music of the Night)’를 부를 땐 입꼬리 모양과 숨소리까지 단어마다 냉탕과 온탕을 오가며 일그러진 사랑을 노래했다. 다만 광기 어린 면모는 ‘지킬 앤 하이드’에서의 연기가 연상됐다.
유령이 부르는 넘버엔 까다로운 강약 조절과 압도적 성량이 요구되는 만큼 조승우는 여러 전문가들을 만나며 최적의 목소리를 연구했다. 이번에 같은 배역을 맡은 김주택과 전동석, 서울 공연에서 합류하는 최재림은 성악을 전공했지만 조승우는 연기 전공자다. 신동원 에스앤코 프로듀서는 “조 배우는 자기만의 색이 담긴 유령을 찾아내고자 공연 확정 직후부터 개별적으로 발성법과 목 관리법을 바꿔보는 등 치열한 고민을 거듭했다”고 말했다. 조승우는 전반적인 보컬을 정비했음에도 일부 곡에서 고음 부분이 흔들리는 등 노래를 소화하는 것이 다소 버겁게 느껴졌다.
시시각각 바뀌는 웅장한 무대는 관객을 압도했다. 내한 공연과 달리 유령이 공중에서 천사상을 탄 채 노래하고, 무대 세트 꼭대기에 서서 괴로워하며 샹들리에 줄을 끊는 장면도 볼 수 있다. 유령이 관객 등 뒤에서, 옆에서 말하는 듯한 입체적 음향을 통해 ‘언제나 당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소름 끼치는 면모를 강조했다.
이번 공연을 위해 대형 컨테이너 20대 분량의 세트가 해외에서 운송됐다. 1막 하이라이트를 장식하는 화려한 샹들리에, 무대 천장에서부터 늘어뜨린 총 2230m 길이 장막을 비롯해 모두 1988년 제작된 오리지널 세트다. 백형근 기술감독은 “샹들리에가 기존보다 정교하고, 설치 지점이 높아 더욱 아찔하게 추락한다”고 했다.
이 작품은 오리지널 제작사가 캐스팅에 참여해 배우를 까다롭게 뽑기로 유명하다. 이번에 출연하는 배우들도 9개월간의 오디션 끝에 결정됐다. 라울 역은 송원근과 황건하가 돌아가며 연기한다. 크리스틴 역엔 신예 배우 손지수, 송은혜가 발탁됐다.
지혜원 뮤지컬 평론가는 “역대 유령들과 비교해 조승우는 ‘위대한 음악의 천사’이기에 앞서 외롭고 상처받은 영혼의 인간적 면모를 잘 풀어냈다”며 “웨버의 전성기를 이끈 작품인 만큼 시대를 뛰어넘는 견고함이 무대를 압도했다”고 말했다.
6월 18일까지 부산에서 공연된 뒤 7월 서울 송파구 샤롯데씨어터에서 공연을 이어간다. 부산 공연 7만∼19만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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