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호승문학관 대구 수성구에 개관
정 시인 유년기-학창시절 보낸 곳
육필원고-시집 등 100여 점 전시
60년 전 대구 범어천은 논밭이던 도심을 가로질러 흘렀다. 겨울이면 물이 말라 자갈밭이 됐다. 당시 중학생으로 등하굣길 자갈을 밟으며 사색했던 정호승 시인(73)은 이때부터 시를 썼다고 한다. ‘나는 왜 세상에 오게 됐나’ ‘나는 왜 공부를 못할까’ ‘우리 집은 어째서 이토록 가난할까’…. 사춘기 소년은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며 시와 만났다. 지난달 31일 대구에서 만난 정 시인은 “범어천은 나의 시적 사유의 근원이 되는 ‘모태(母胎)’와 같다”고 했다.
범어천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곳에 이날 정호승문학관이 문을 열었다. 정 시인이 자란 수성구 들안로 옛 범어3동의 행정복지센터 자리다. 복지센터가 이전하며 공실이 된 건물이 정 시인의 문학 세계를 품은 복합문화공간으로 재탄생한 것이다. 지하 1층, 지상 2층에 연면적 454.76㎡(약 136평) 규모다.
문학관의 한쪽 벽면은 그가 유년기와 학창 시절 살았던 기와집 터를, 또 다른 한쪽 벽면은 범어천을 마주하고 있다. 외벽은 정 시인의 어린 시절 여름마다 범어천 둑 위로 흘러 넘쳤던 황톳물처럼 진한 붉은색으로 칠했다.
문학관 2층엔 한국의 대표 서정시인으로 꼽히는 정 시인의 발자취가 담겼다. 정 시인이 지난해 8월 수성구(구청장 김대권)에 기증한 육필원고와 시집, 사진, 소장품 등 100여 점이 전시됐다. 그는 “가장 소중한 전시품을 꼽자면 1970년에 쓴 초기작의 육필원고”라고 했다. “할머님 눈물로 첨성대가 되었다”로 시작하는 ‘첨성대’(瞻星臺·1973년)는 정 시인의 등단작이다. 그는 창비에서 처음 출간한 시집 ‘슬픔이 기쁨에게’(1979년)에서 “나는 이제 너에게도 슬픔을 주겠다/사랑보다 소중한 슬픔을 주겠다…”고 썼다. 모두 슬픔과 고통의 정서를 다뤘다.
정 시인은 “삶의 본질은 고통을 느끼는 것”이라고 했다. 남궁산 판화가가 2005년 제작한 정 시인의 장서표(藏書票·소유자를 나타내기 위해 책에 붙이는 표)에는 낙타 문양이 있다. 문학관에도 낙타 그림이나 공예품들이 전시됐다. 정 시인은 “광막한 사막 속 낙타를 보면 인생이라는 광야에서 마주하는 고통을 승화시키기 위해 시를 쓰는 나를 보는 듯하다”며 “시는 영혼의 양식”이라고 했다.
모든 전시물에 대한 설명은 정 시인이 쓰고, 다듬었다. 노래로 만들어진 정 시인의 시 약 80편을 감상하는 공간도 문학관에 마련됐다. 북카페인 1층에는 국내 다양한 시인들의 시집이 전시됐다. 지하는 강연, 콘서트 등을 할 수 있는 다목적 공간으로 활용된다.
정 시인은 등단 50주년을 맞아 지난해 열네 번째 시집 ‘슬픔이 택배로 왔다’(창비)를 펴냈다. 올해는 시에 얽힌 이야기를 풀어내는 ‘정호승의 시가 있는 산문집’(비채)을 출간한다.
“신작 시집이 나오고 6개월이 지난 요즘 ‘내가 다시 시를 쓸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며 삽니다. 그러나 배고프면 밥을 먹듯, 시인은 시를 써야 살아있다고 말할 수 있죠. 인생은 고통과 함께 사는 것이지만 우리는 시를 통해 위안을 받고, 안식을 얻을 수 있습니다. 문학관에 오시는 분들이 그렇게 쉬다 가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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