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김지하 시인(1941~2022)의 문학은 저항과 투쟁의 표상이었다. 반독재민주화 운동에 앞장선 김 시인은 한일회담 반대 시위, 민청학련 사건 같은 시국 사건으로 수차례 투옥되면서 옥중에서 유불선(儒佛仙), 동학사상·생태학 공부에 몰두했다. 1980년대 석방 후엔 생명사상가, 미학이론가로서 족적을 남겼다.
다음달 8일 고인의 1주기를 앞두고 최근 김 시인의 사상을 엿볼 수 있는 ‘김지하 마지막 대담’(도서출판작가)이 출간됐다. 20여 년간 김 시인을 연구해온 홍용희 경희사이버대 미디어문예창작과 교수(문학평론가)가 2003~2017년 고인과 8차례 대담한 내용을 쉽게 풀어 정리한 것이다. 김 시인의 시와 사상을 해설한 평론 2편도 함께 수록됐다.
홍 교수는 3일 전화통화에서 “2016년쯤 김지하 선생과 함께 그의 사상을 젊은 세대가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그간 대담한 내용을 정리하기로 했다”면서 “팬데믹 기간 만남이 차단된 데다 지난해 선생이 운명하시면서 2017년 대담이 마지막이 됐다”고 했다.
저자는 1995년 김 시인을 처음 만나 20년 넘게 교분을 나눴다. 그는 대담에서 김 시인이 정립해온 생명사상과 미학이론에 집중했다. 홍 교수는 “80년대 이후 선생께서는 생명이란 무엇이고, 어떻게 하면 생명의 세계가 구현될 수 있는지에 가장 관심을 두셨다”면서 “생명을 중시한 민족 고유사상인 동학사상(1860년 창시)은 김지하 생명사상의 바탕이 됐다”고 설명했다. “동학에서는 ‘님을 높여서 부모 모시듯 친구 삼는다’는 말이 있다. 높이긴 높이는데 친구고 친군데 높인다 이 말이야. 그래서 님이라고 하는거야. 미의식의 핵심 안에서 모심이라는 윤리적이면서 철학적 태도가 있다.”(김 시인)
김 시인의 미학 이론의 핵심인 ‘흰 그늘’은 책 전체를 관통한다. ‘흰 그늘’은 굴곡진 삶에서 한(恨)을 인내하며 생겨나는 깊은 ‘그늘’과 그 속에서 ‘흰’ 빛, 즉 신명이 피어난다는 이진법적 원리다.
대담에는 한류, 촛불시위, 남북관계 등 다양한 문화·정치적 현상에 대한 김 시인의 분석도 담겼다. 김 시인은 2002년 월드컵 당시 붉은 악마 응원이나 한류 열풍 등의 문화적 현상도 민족적 미학의 원형인 ‘흰 그늘’로 해석한다.
김 시인은 대담에서 한류 미학의 핵심에 대해 “이 컴컴한 질병과 죽음의 시대가 요구하는 치유의 예술, 치유의 약손”이라며 “‘흰 그늘’을 이에 대응하는 미학적, 문학적 담론의 원형으로 내세울 수 있다”고 말한다. “대혼돈 속에서 신음하는 인격과 비인격, 생명과 무생명 일체를 다같이 거룩한 우주공동체로 들어올리는 세계문화대혁명, 이를 위한 아시아 네오 르네상스의 미학이 요구된다는 것이지요.”(김 시인)
홍 교수는 김 시인의 사상은 기후위기 등 인류가 현재 직면한 위기에 대한 답을 제시한다고 강조한다. “16세기부터 서양을 중심으로 근대문명이 질주하면서 기후위기, 생명 가치 상실, 팬데믹 창궐 등이 심각해졌잖아요. 김 시인은 80년대 중반부터 이러한 위기에 대한 대안을 찾아나갔던 분입니다. 우리가 그를 더 깊이 공부하고 재평가해야 하는 이유죠. 오늘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김 시인의 사상이 출구를 제시하지 않을까요.”(홍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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