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장가 허민수 씨 미국인 며느리 “귀한 작품들 시아버지 고향에”
국립광주박물관에 4건 기증
“귀한 묵매도 소중히 해라” 화평 등 조선후기 화첩 석농화원에 수록돼
‘추사 제자’ 허련 작품 등 실체 확인
“돈은 필요 없습니다. 이 작품들을 물려주신 시아버지의 이름으로, 시아버지의 고향과 가장 가까운 박물관에 기증해 주세요.”
조선 후기 최대 서화 컬렉션 ‘석농화원(石農畵苑)’에 수록됐다고 기록만 전해지던 ‘묵매도(墨梅圖)’ 등 조선 후기 귀중 회화 4건이 미국에서 돌아왔다. 이 작품들을 소장해온 고 허민수 씨(1897∼1972)의 미국인 며느리 게일 허 여사(84)가 국립광주박물관에 기증한 것. 한국은행 초대 부총재를 지낸 허 씨는 전남 진도 출신으로, 조선 말기 남종화의 대가 소치(小痴) 허련(1808∼1893)의 후손이다.
국립광주박물관에 따르면 기증 작품은 ‘송도 대련(松圖 對聯)’과 ‘천강산수도(淺絳山水圖)병풍’ 등 허련의 작품 2건과 ‘묵매도’, ‘동파입극도(東坡笠屐圖)’를 비롯한 총 4건이다.
기증 작품 중 조선 후기 문인 김진규(1658∼1716)가 그린 묵매도는 매화 나뭇가지에 앉은 새를 수묵으로 담백하게 그려낸 수작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조선 후기 서화 수장가 김광국(1727∼1797)이 단원 김홍도(1745∼?)의 작품 등 일생 동안 모은 그림을 9권으로 엮은 화첩 석농화원에 포함됐던 것이다.
석농화원은 현재는 파첩(破帖)돼 낱장으로 흩어져 있다. 2013년 고서 경매를 통해 확인된 ‘석농화원 필사본 권1’에는 화첩에 수록된 그림 267점의 제목과 화평 등이 남아 있는데, 이 가운데 실체가 확인된 작품은 묵매도를 포함해 58점뿐이다. 석농화원 필사본에는 김광국이 묵매도에 대해 ‘귀한 그림이니 소중히 아끼라’고 쓴 화평이 기록돼 있다. 최장열 국립광주박물관 학예연구실장은 “기록으로만 전해지던 묵매도가 발견됐다는 점에서 회화사적 가치가 크다”고 설명했다.
힘차게 뻗은 소나무를 그려낸 ‘송도 대련’과 8폭으로 된 ‘천강산수도병풍’은 허련 특유의 건필(健筆)과 호방한 작품 세계를 보여주는 수작으로 꼽힌다. 송도 대련에는 허련의 호를 새긴 낙관과 함께 시가 적혀 있다. 허련은 추사 김정희의 제자다. 천강산수도병풍 뒷면에는 허련의 뒤를 이어 남종화의 대를 이은 서화가 허백련(1891∼1977)이 쓴 표제가 남아 있다. 허백련은 이 작품을 소장해온 허 씨와 친척으로 평소 친분이 두터웠다고 한다.
또 다른 기증 작품 ‘동파입극도’는 조선 말기 문인 화가 신명연(1808∼1886)의 그림으로, 중국 북송대 문인 동파 소식(1037∼1101)이 귀양 시절 삿갓과 나막신 차림으로 비를 피하는 모습을 그린 인물화다. 산수화나 화훼도로 유명한 신명연이 그린 희귀한 인물화란 점에서 회화사적 가치가 있다는 평가다.
허 여사는 지난해 5월 미국 워싱턴 한국문화원을 통해 “여생이 얼마 남지 않아 시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작품을 정리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작품을 감정하러 허 여사 자택을 찾아간 김상엽 국외소재문화재재단 특임연구관이 “조선 회화사의 공백을 채워줄 미공개 작품들로 가치가 높다”며 매입 의사를 전하자 “돈은 필요 없다”며 선뜻 기증을 결정했다고 한다. 워싱턴 옛 주미 대한제국공사관에서 지난달 28일(현지 시간) 열린 기증서 전달식에 참석한 허 여사는 “소중한 작품들이 그 작품을 가장 잘 즐길 수 있는 고향으로 돌아가게 돼 기쁘다”고 말했다. 국립광주박물관은 올해 9월 기증받은 작품들을 전시로 선보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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