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파우스트’ 29일까지 공연
박해수, 5년만에 연극무대 컴백
메피스토역 맡아 광기 드러내
유인촌은 노년의 파우스트 열연
악마 메피스토는 다섯 손가락을 미끄러지듯 오므렸다 펴고 혀를 날름거렸다. 턱 끝을 휘휘 젓던 그는 “인간들이 자기 자신에게 어떻게 고통을 주는지가 내 관심사”라고 말하며 기괴한 웃음으로 낄낄거렸다. 서울 강서구 LG아트센터 서울에서 공연 중인 연극 ‘파우스트’에서 메피스토 역을 맡은 배우 박해수(42)는 살아 있는 뱀과 같았다.
독일 문호 괴테의 동명 희곡을 원작으로 한 연극 ‘파우스트’는 평생을 학문에 바친 지식인 파우스트가 악마 메피스토와 계약을 맺으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다. 삶에 회의를 느낀 파우스트는 메피스토의 힘을 빌려 인생의 쾌락을 맛보지만 그로 인해 자신의 영혼을 상실하면서 괴로워한다.
박해수는 ‘악’의 무게감과 경박함을 매끄럽게 오가며 광기를 드러냈다. 그가 연극 무대에 오른 건 ‘2018 이타주의자’ 이후 5년 만이다. 첫 등장부터 방대한 대사를 속사포처럼 쏟아낸다. 그는 또렷한 발성과 발음으로 막힘없이 소화했다.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게임’ ‘수리남’을 통해 글로벌 배우로 거듭난 그는 음흉하고 탐욕스러운 눈빛으로 메피스토를 그려내며 무대를 압도했다.
노년의 파우스트 역은 올해 데뷔 50주년을 맞은 배우 유인촌(72)이 맡았다. 그는 선과 악이 공존하는 인간적 감정을 풍부하게 담아낸 것은 물론이고, ‘쾌락과 욕정, 선조들의 지식’ 중 무엇도 끝내 손에 쥐지 못한 파우스트가 느끼는 무력감을 대사에 응축시켜 카리스마 있게 표현해냈다. 메피스토를 만났을 때의 환희와 두려움을 찰나에 교차하는 눈빛으로 담아낸 점도 인상적이었다. 젊어지는 묘약을 먹고 청년이 된 2막의 파우스트는 드라마 ‘펜트하우스’에서 로건 리 역으로 입지를 다진 배우 박은석(39)이 연기했다.
양정웅 연출가는 변화무쌍한 무대 연출로 딱딱한 고전을 넘어 관객 몰입도를 끌어올렸다. 대형 발광다이오드(LED) 패널로 투사되는 무대 배경은 신비로운 천상 세계에서 해골 가득한 마녀의 부엌 등으로 옮겨가며 초현실적인 감각을 선사했다. 타락과 혼돈이 절정에 달하는 장면에선 새빨간 조명을 사방에서 쏘고 천장에 달린 12개의 팬(fan)이 돌아가며 아수라장을 극적으로 표현했다. 일부 장면에선 배우들이 객석 통로에 깜짝 등장해 관객의 주의를 환기시켰다. 4월 29일까지. 4만4000∼9만9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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