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맞이하는 봄은 여느 때보다 특별하다. 단순히 따스한 날씨가 시작되는 시즌이 아닌 2년 5개월 만에 마스크로부터 해방돼 싱그러운 자연의 향기를 마음껏 즐길 수 있는 때가 도래했기 때문이다. 많은 뷰티 업계 관계자가 ‘노 마스크’로 인해 립 메이크업 또는 풀 메이크업의 부흥에 초점을 두고 있다. 그러나 립 제품 못지않게 중요한 카테고리를 뽑자면 단연 ‘향수’다.
향수가 백화점 Beauty Zone의 지형도 바꿔
코로나를 겪으며 화장품 시장은 지각변동을 크게 겪었다. 화장품 시장의 트렌드를 견인했던 색조 카테고리는 각종 방역 규제로 어려움을 겪었던 데 반해 향수의 경우 코로나 속에서도 가파른 성장세를 보였다. 이러한 트렌드는 백화점 매장에도 반영돼 있다. 10년 전만 해도 한국의 주요 대형 백화점 1층에 향수 브랜드 매장은 약 5∼8개 정도 볼 수 있는 수준이었다. 대개 패션하우스 퍼퓸 편집숍 2∼3개와 니치 향수 3∼5개 정도로 구성됐다.
그러나 2023년인 지금은 다르다. 한 점포에 니치 향수만 10개가 넘는 것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심지어 국내 백화점 중 최대 규모의 뷰티관을 자랑하는 롯데백화점 본점의 경우 무려 20개가 넘는 향수 브랜드를 만날 수 있다. 변화는 향수 전문 브랜드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샤넬, 디올 등 기존 럭셔리 뷰티 브랜드 매장에서도 향수 영역을 명확히 구분해 더욱 확대시키고 있다. 향수뿐 아니라 핸드크림, 헤어 미스트, 캔들, 룸 디퓨저, 차량용 방향제 등으로 향의 영역이 넓어지고 있다.
“올해도 향수가 성장할까요?”
향수 매장 수가 빠른 속도로 증가하면서 이러한 질문을 꽤나 받았다. 급격하게 성장한 만큼 언제든 니치 향수 열풍이 꺼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제법 있기 때문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당연히, 더 성장합니다”이다. 한국의 향수 시장은 본격적으로 규모를 키우며 성장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2020년부터라고 볼 수 있는데 고작 3년 차다. 세계 향수 시장이 2013년부터 고공성장하며 향수 성숙기를 향할 때 한국 향수 시장은 고성장은 하고 있었으나 그 구성비가 매우 낮았다. 기본적으로 동양인의 체취가 서양인에 비해 강하지 않기 때문에 향에 대한 관심도가 매우 낮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코르가슴(코+오르가슴)’이라는 신조어가 생겼을 정도로 향수에 대한 관심은 정점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이제 향수는 단순 사치품을 넘어 개개인의 개성과 취향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렇게 향수에 대한 인식이 달라진 상황에서 방역 규제까지 완화돼 향을 맡기도 더 편해진 지금이다. 올해도 향수의 성장은 확고하다고 자신한다.
나를 대변해 줄 향수 찾기
이전에는 향수를 고를 때 샤넬, 디올, 조 말론 런던, 딥티크 등의 유명 브랜드에서 대표 제품을 몇 개 뿌려 보고 마음에 드는 것을 고르면 됐지만 지금은 브랜드도 향의 종류도 다양해져 고르기가 꽤나 어려워졌다.
특히 니치 향수도 대중화됨에 따라 같은 향수를 쓰는 것에 불편함을 느끼고 오히려 너무 유명한 제품을 꺼리는 사람들도 생겼다.
사실 향수를 고르는 방법은 간단한다. 다양한 향을 직접 시향해보며 이 향을 뿌린 나 자신의 모습에 대한 만족도가 높은지에 대해 고민해보면 된다. ‘너무 유명한 향수라서’ 혹은 ‘남들이 많이 뿌리는 것 같아서’ 등의 고민은 필요 없다. 같은 향이라도 개인의 채취에 따라 향은 다양하게 표현되며, 여러 향수를 혼합해 사용하는 레이어링을 통해 나만의 향기를 만들 수 있다. 꼭 그렇지 않더라도 인기가 많은 향수는 반드시 그 이유가 있기 때문에 패션 향수든, 니치 향수든, 유명한 향수든 기피할 이유는 전혀 없다. 오직 향기가 더해져 완성되는 내 모습에 집중해 향을 찾으면 된다. 한 향수를 기피할 이유는 전혀 없다. 오직, 오늘의 나의 모습에 만족감을 상승시켜줄 향을 찾으면 된다.
독보적인 개성 ‘르 라보(LE LABO)’
개인적으로 올해 가장 기대되는 브랜드다. 독보적인 향조를 가졌으나 아직은 대중화되지 않은 브랜드이기 때문이다. 2006년 뉴욕에서 시작한 르 라보는 향수 마니아들이 사랑하는 퍼퓸 하우스로 프랑스어로 연구실이라는 뜻이다. 모든 향수를 매장에서 연구하고 수작업으로 만들며 시작한 브랜드를 의미한다. ‘와비사비’라는 일본의 미학 개념인 ‘부족하지만 그 내면의 깊이가 충만함’을 철학으로 삼아 간결하고 여백의 미가 있는 심플함을 추구하고 있다. 이 철학은 르 라보의 어떤 상품에서도 느낄 수가 있다. 무엇을 하든 남들과는 다른 자신들의 철학을 지켜나가며 운영되고 있는 브랜드로 창업 8년 만에 2014년 에스티로더컴퍼니에 인수되며 새로운 개성으로 글로벌 향수 업계를 긴장시키고 있는 니치 향수다. 이러한 르 라보의 독보적인 개성을 가진 두 가지 향수를 소개하려 한다.
3년간 417회 시향을 거친 ‘상탈 33’
말보로 맨에서 영감을 받아 탄생한 향이다. 남성적인 야성미와 자유를 표방하는 미국 서부시대 정신을 담은 이미지인데 가죽 재킷을 입고 불멍하는 듯한 스모키한 향으로 시작해 따뜻한 우디향으로 은은하게 퍼지는 반전 매력이 넘치는 향이다. 이 향은 르 라보의 대표 향수로 3년간 417회의 시향 테스트를 거쳐 시간별로 잔향이 어떻게 남는지를 확인하며 만들어진 향수이다. 따라서 섬세한 향조를 느낄 수 있는 베스트셀러다.
날카로움과 달콤함의 만남 ‘어나더 13’
2010년 어나더 매거진과 협업을 진행하면서 만들어진 향수다. 500개 한정으로 만들어진 어나더 13은 중독적인 향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한정 수량이 다 판매된 후 계속되는 팬들의 원성에 르 라보 클래식 컬렉션으로 합류하게 돼 지금까지도 엄청난 사랑을 받고 있는 향이다. 쇠에서 날 법한 날카로운 향이 이상하게도 달콤하게 느껴지며, 계속 ‘킁킁’ 하게 되는 매력적인 향이다. 호불호가 제법 있는 향수에 속하지만 시간의 흐름에 따라 부드럽게 변해가는 이 향에 많은 사람이 빠져 있다. 필자도 그중 하나다.
이탈리아 라이프스타일 ‘아쿠아 디 파르마(ACQUA DI PARMA)’
봄, 여름 향수에 집중돼 있는 니치 향수 브랜드가 몇 있다. 그중 이탈리아 니치 향수 브랜드로 이탈리아 파르마 지방의 물이라는 의미의 아쿠아 디 파르마는 1916년에 설립된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다. 이탈리아의 전통적인 미학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상품들을 만들고 있으며 특히 감각적이고 고급스러운 패키지가 특징이다. 향 관련 상품이 뷰티를 넘어 인테리어에까지 합류된 요즘 트렌드에 딱 맞는 브랜드다.
더불어 시트러스 향의 대표 브랜드로 향에 대한 관심이 정점을 향하고 있는 올해 봄, 여름에 잘 어울리는 브랜드 중 하나다. 2001년 LVMH그룹에 합류했고, 해외 기업 간 향수 경쟁이 지속 강렬해지고 있는 지금, 향수에 더욱 총력을 다할 것으로 보인다. 글로벌 시장에서의 활약에 대한 기대감도 크다.
휴양지가 떠오르는 향기 ‘미르토 디 파나레아’
이탈리아 파나레아섬에서의 휴식을 떠올리며 만든 향으로 아쿠아 디 파르마의 No.1 베스트셀러 향수다. 파나레아섬은 깨끗한 푸른 해변과 미르토 나무의 아름다움이 특징인 곳으로 청량한 날에 부는 바람과 바닷가처럼 평화로운 숨결이 느껴지는 행복한 향기다. 이 향은 시트러스 계열로 특히 여름철에 가장 잘 어울리는 향이지만 밀려왔던 여행을 하나둘 떠나고 있는 지금의 ‘봄’에도 잘 어울리는 상쾌하고 경쾌한 느낌의 향이다.
시트러스와 플로럴의 동행 ‘매그놀리아 인피니타’
매그놀리아 인피니타는 지난 10월에 출시된 신상품이다. 태양 빛을 가득 머금고 끝없는 경이로움을 지닌 꽃인 목련의 우아하고 세련된 향을 담아 갓 피어난 꽃봉오리 같은 투명한 향이 느껴지는 향수다. 플로럴한 향 속에서도 시트러스함을 느낄 수 있어 유니크하다고 할 수 있다. 특히 향이 전체적으로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은 향이라 봄에 적합하며 아직 많이 알려져 있지 않은 향이라는 점에서도 매력적인 제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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