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xury Car]
팬데믹 이후 럭셔리카 국내 판매량 급증
최근 벤틀리-람보르기니 CEO 등 방한
롤스로이스, 국내서 한정판 모델 판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타격을 입은 분야로 자동차 업계를 빼놓을 수 없다. 코로나19 외에도 반도체를 비롯한 부품 공급 문제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여파 등 자동차 업계에 부정적 영향을 끼친 이슈는 많다. 그러나 코로나19가 세계 경제에 가장 광범위하게 영향을 준 것만큼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전동화 전환의 속도가 빨라진 것이나 많은 업체가 수익성 위주로 제품 전략을 전환한 것, 온라인 판매와 서비스의 확대 등 자동차 생태계 전반의 변화를 자극했다.
그러나 코로나19 유행 초기를 제외하면 럭셔리 자동차 시장은 성장을 거듭해 지난해에는 럭셔리 자동차 브랜드 대부분이 유례없는 실적을 거뒀다. 특히 비교적 빠르게 코로나19 확산세가 둔해진 아시아 지역의 판매가 크게 늘었고 그 가운데에서도 우리나라에서의 성장세가 두드러졌다. 최근 판매 증가 덕분에 우리나라는 미국, 중국, 유럽, 중동 등 전통적 대형 시장을 제외하면 세계적으로도 손꼽을 만큼 럭셔리 승용차가 많이 팔리는 나라가 됐다.
대표적으로 지난해 롤스로이스는 전 세계에 6021대의 차를 판매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전년 대비 31.5% 늘어난 234대가 팔렸다. 벤틀리도 글로벌 판매량 1만5714대 가운데 우리나라에서 775대가 팔려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 벤틀리가 가장 많이 팔린 나라로 이름을 올렸다. 스포츠카 브랜드인 페라리와 람보르기니도 각각 302대와 403대를 팔아 아시아 태평양 지역 판매량으로는 상위권을 차지했다.
판매 증가에 힘입어 럭셔리 자동차 브랜드들의 우리나라 소비자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최근 들어 주요 럭셔리 자동차 브랜드들이 국내에서의 활동을 강화하는 한편 한국 소비자를 겨냥한 제품 출시와 마케팅에도 힘을 쏟고 있다. 취재 현장에서 만난 럭셔리 자동차 브랜드 임원들도 한국 소비자들에 대해 깊은 관심을 나타냈고 시장 분위기를 직접 느끼고 우리나라에 특화된 제품과 서비스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잇따라 우리나라를 찾고 있다. 세계 주요 럭셔리 브랜드 경영진의 잇따른 방문은 한국 시장의 중요성이 과거 어느 때보다 더 크다는 것을 보여준다.
지난달 8일 서울 청담동에 문을 연 세계 최초의 플래그십 리테일 전시장인 벤틀리 큐브 개설 행사에는 애드리안 홀마크 회장 겸 최고경영자를 비롯해 벤틀리 주요 임원이 참석하기도 했다. 벤틀리 CEO가 우리나라를 방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아울러 토스텐 뮐러 오트보 롤스로이스 CEO도 다시 한번 우리나라를 방문했고, 지난해 11월에는 스테판 윙켈만 람보르기니 CEO가 내한한 바 있다.
최근 들어 럭셔리 자동차 브랜드들이 국내에서 적극적으로 소개하고 있는 분야는 맞춤 제작 프로그램이다. 소비자 관점에서는 자신의 취향을 반영한 ‘나만의 차’를 만들어 희소성이 보장된 차를 손에 넣을 수 있다는 점이 매력이고, 업체 관점에서는 맞춤 제작 과정을 통해 소비자와의 유대감을 높이면서 일반 모델보다 높은 수익을 기대할 수 있다.
그런 점을 고려해 럭셔리 자동차 업체들은 깊이 있는 소통을 거쳐 차의 실내외 주요 구성 요소에 소비자의 취향을 반영하는 비스포크 프로그램을 운영하기도 하고, 코치빌딩 과정을 거쳐 완전히 다른 모습의 소량 한정 모델을 특별 제작하기도 한다. 럭셔리 자동차 브랜드 임원들은 아직까지는 우리나라 소비자들이 주로 세단 중심으로 보수적인 소비를 하고 있지만 자신을 적극적으로 표현하고 싶어 하는 젊은 소비자들이 늘어나면서 맞춤 제작 프로그램이 럭셔리 브랜드의 새로운 가치를 알릴 기회가 되리라는 기대를 하고 있다.
롤스로이스는 최근 서울의 활기차고 역동적인 밤 모습에서 영감을 얻어 화려한 차체색과 특별한 꾸밈새를 담은 블랙 배지 컬리넌 루시드 나이트 에디션을 선보였다. 서로 다른 색으로 세 대를 한정 생산해 우리나라에서만 판매한다. 벤틀리는 코치빌딩을 통해 특별히 제작해 전 세계에 18대만 판매되는 바투어를 아시아 처음으로 우리나라에서 공개했다. 맞춤 차체 제작 프로그램을 전담하는 뮬리너를 통해 만들어지는 바투어는 우리나라에서도 한 대가 판매됐다. 벤틀리는 올해부터 매년 뮬리너와 협업한 ‘벤틀리 코리안 에디션’ 모델들을 한정 판매할 계획이다.
맞춤 제작 프로그램은 무엇보다도 소비자 개개인의 취향을 반영한다는 의미가 크다. 그러나 더 넓은 시각으로 보면 소비자가 속한 지역의 문화와 정서를 반영하기도 한다. 즉, 우리나라 소비자를 대상으로 하는 맞춤 제작 프로그램을 통해 한국의 문화와 정서에 대한 자동차 업체의 이해를 높이고 제품 개발에 반영할 기회가 될 수도 있다. 과거 럭셔리 자동차 업계가 중동, 일본, 중국 시장의 성장에 발맞춰 그들의 문화와 정서를 반영한 제품들을 내놓은 사례를 보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이야기다.
한발 더 나아가 한국적 정서가 담긴 특별한 차를 통해 한국의 문화를 세계에 알릴 수 있는 협업도 기대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메르세데스-마이바흐는 미국 출신 디자이너로 세계적 명성을 얻은 고 버질 아블로와 협업해 최근 열린 2023 가을겨울 서울패션위크에 전시된 쇼카 ‘프로젝트 마이바흐’를 비롯해 여러 특별한 차를 만든 바 있다. 또한 마이바흐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그의 철학과 아이디어를 반영한 S 680 버질 아블로 에디션을 기획하기도 했는데 150대 한정 생산 물량 가운데 일부는 우리나라에도 곧 판매될 예정이다.
최근 K컬처로 불리는 우리나라 문화 콘텐츠가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만큼 그와 같은 협업이 우리나라 디자이너나 아티스트와도 이뤄져 글로벌 시장에 소개된다면 그 영향력은 더 커질 수 있다. 우리나라에 판매되는 모델로 한정되기는 하지만 벤틀리가 벤틀리 뮬리너 코리안 에디션 제작을 위해 우리나라 현대미술 작가인 하태임 씨와 협업하기로 한 것도 그와 같은 맥락에서 바람직한 시도로 보인다.
한국에 대한 세계인의 관심이 커지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까지 한국 문화는 중국이나 일본 문화만큼 깊이 파고들지는 못하고 있다. 럭셔리 자동차 시장에서 커지고 있는 영향력이 자동차 업계를 자극해 우리 정서와 문화의 영향력을 키우는 데도 훌륭한 밑거름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