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박재민(40)에게는 열 개의 직업을 가졌다는 의미의 ‘십잡스’, 도전을 멈추지 않는다는 뜻의 ‘인간 나이키’ ‘프로챌린저’라는 별명이 붙습니다. 헤르미온느처럼 시간을 자유자재로 쓴다는 뜻에서 ‘재르미온느’라고도 불립니다. 정말 그에게만 하루에 48시간이 주어지는 걸까요? 그는 비보이, 배우, MC 등 방송인으로 활약하면서 스노보드 선수, 스노보드 해설위원, 스노보드 국제심판, 3X3농구 국내심판, 번역가라는 다수의 ‘부캐’를 만들어왔습니다. 현재 정화예술대 실용댄스전공 전임교수이자 ‘육아대디’입니다. 학사, 석사를 마친 서울대에서 글로벌스포츠매니지먼트학 박사과정도 밟는 중입니다. 얼마 전 생방송에서 코피가 났지만 의연하게 진행을 이어가는 모습이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주체할 수 없는 끼를 다방면에서 뿜어내는 ‘재능 금수저’일까요? 놀랍게도 그는 “어렸을 때 되고 싶은 게 없었다”고 말합니다. 무엇 하나 특출난 게 없는 ‘그림자’같은 존재, 집중력이 떨어지는 ‘산만한 아이’. 박재민을 바라보는 주변의 시선이었습니다. ‘되고 싶은 것’은 없었지만 ‘하고 싶은 것’은 많았습니다. 하루는 비보잉 연습실, 다음날은 농구코트에 있었습니다. 어떤 날은 도서관, 또 다른 날은 스키장이었습니다. 호기심이 많았던 그는 현장에 뛰어들어 직접 몸으로 부딪쳐야 직성이 풀렸습니다.
여러 곳에 기웃거렸지만 전부 애매했습니다. 그럼에도 중간에 멈추지 않았습니다. 멈추지 않을 수 있었던 원동력은 딱 한 가지입니다. “재밌으니까.” 나에게 재밌는 건 세상이 뭐라 하든 꾸준히 밀고나갔습니다. “하나만 진득하게 해”라는 세상의 비아냥에 꺾이지 않았던 ‘지구력’이 자신의 가장 큰 재능이라고 그는 말합니다. 2회 만에 하차한 드라마 ‘공주의 남자’(2011년) 속 조연은 11년 뒤 728만 명의 관객을 모은 영화 ‘한산’ 속 신스틸러를 연기했고, 초등학생도 출전한 스노보드 대회에서 170명 중 170등을 한 꼴찌는 동계올림픽 스노보드 해설위원으로 제2의 전성기를 맞았습니다.
방송과 라디오 고정출연, 대학 강의, 대학원 박사과정, 그리고 ‘딸 바보’ 아빠로 바쁜 삶을 살고 있는 그를 지난달 24일 서울 종로구 동아일보에서 만났습니다. 지구력을 바탕으로 실패를 결과가 아닌 과정으로 만들어온 박재민의 삶(https://www.youtube.com/watch?v=smyKgyqZ7Ws)과, 입학과 입사라는 목표를 이루고 꿈을 잃은 2말3초들이 삶의 ‘목표’를 설정할 수 있는 방법(https://youtu.be/WpxCkGpe_dY)을 동아일보 유튜브 ‘복수자들’에서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서울대 출신의 방송인이자 운동선수, 스포츠 해설위원, 번역가까지. ‘다재다능’의 대명사와도 같은 박재민은 어렸을 때 잘 하는 것이 없는 평범한 학생이었습니다. 수업시간에 ‘꿈’을 쓰라고 하면 다른 친구들처럼 의사, 판사, 대통령을 끄적였지만 정작 그는 속으로 ‘되고 싶은 게 없는데…’라는 생각을 했다고 합니다. 춤출 때 가장 행복했고, 운동하며 땀 흘리는 순간 살아있다고 느꼈던 박재민은 남들이 뭐라고 하든 좋아하는 것을 계속 했습니다.
―지난해 9월 이순재 선생님이 예술감독을 맡으신 연극 ‘위선자 따르뛰프’ 주연으로 연극 무대에 서셨어요. 근황이 궁금해요. 요즘도 십잡스로 바쁘게 살고 계신가요?
평일에는 아침 생방송이 있어서 오전 5시에 일어나요. 7시부터 9시까지 방송을 하고, 끝나면 집에 와서 딸 등원을 시켜요. 화, 목은 정화예술대 교수로 저녁까지 강의를 하고, 수요일은 서울대 박사과정 학생으로 학교에서 수업을 들어요. 여러 일을 하지만 요즘 제 삶에서 가장 중요한 건 육아에요. 저는 ‘십잡스’로 30대를 정말 치열하게 살았고, 다양한 경험들을 했어요. 30대는 욕심이 많았던 시기라면, 40대에 접어든 지금은 모든 선택의 기준이 아이가 됐어요. 더 이상 ‘나’라는 기준은 제 삶에서 중요하지 않아요. 나를 내려놓게 됐어요. 오롯이 아이를 위해 하루 24시간을 다 쓰는 삶이 보람차고 의미 있고 행복하다고 느껴요.
―육아까지 열정적으로 하시네요. 뭐 하나 허투루 하지 않는 ‘사기캐’ 다워요. 어렸을 때부터 많은 재능을 타고 나셨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출발선이 다르지 않았을까?’ 혹은 ‘어렸을 때부터 재능이 다양하지 않았을까?’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초, 중, 고등학교를 통틀어서 저는 단 한 번도 특출난 재능으로 튀는 학생이 아니었어요. 특별하게 잘하는 것도 없고 성적도 중위권인 ‘그림자’같은 존재였어요.
―재민님처럼 끼 많은 사람이 그림자 같은 존재였다니, 잘 상상이 안 가는데요. 학창시절 어떤 학생이었나요?
되고 싶은 것은 없었지만 하고 싶은 건 많았어요. 관심사가 정말 다양했어요. ADHD로 보일 정도로요. 대신 관심만 갖는 게 아니라 현장으로 뛰어드는 성격이었어요. 고등학생 때 비보잉에 관심이 생기자마자 프로팀을 무작정 찾아가서 연습실에서 살았어요. 스노보드가 너무 좋아서 선수 등록을 하고 시합을 나갔고요. 재능을 타고났다기보다 재능을 타고난 사람들 주변을 항상 기웃거리는 사람이었어요. 그러다 보니 산만하다는 얘길 많이 들었죠. 스키장, 비보잉 연습실, 체육관, 도서관을 드나들었으니까요.
―애매한 재능은 취미로 삼기 마련인데, 재민님은 어떻게 업으로 꾸준히 키우셨나요?
재밌으니까요. 재미가 제일 중요한 것 같아요. 진짜 좋아한다면 잘 못해도 계속 하잖아요. 게임에서 레벨이 가장 낮은 분들도 너무 재밌어서 밤을 새워 하잖아요.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것, 재밌어 하는 것은 실력과 무관하게 추진력과 동기부여를 얻게 되는 것 같아요.
―부모님이 공부하라고 혼내시진 않았나요?
부모님이 굉장히 엄하셨는데 삶의 방식에 대해서는 엄하셨을지언정 삶의 성과에 대해서는 엄하지 않으셨어요. 어떤 삶을 살 것인가, 어떤 가치관을 가질 것인가에 대해서는 굉장히 많이 혼내셨어요. 예의 없는 행동을 한다? 가차 없습니다. 그런데 성적에 대해 단 한 번도 혼내신 적이 없어요. ‘학원가라’ ‘과외 받아라’라는 말씀을 하신 적도 없고요. 제 관심사가 다양했기 때문에 좋아하는 것을 하면 잘 될 것이라는 믿음이 있으셨던 것 같아요.
애매한 재능을 쫓는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습니다. 10대를 쏟아 부었던 비보이는 어깨 탈골로 계속하기 어려워졌고, 학창시절 코치가 프로선수를 제안했을 정도로 농구 소질도 뛰어났지만 작은 키, 부모님의 만류로 농구선수의 꿈도 접었습니다. 방송인으로 한창 주가를 올리던 2012년 ‘짝 스타 애정촌’ 출연 이후 한 오보로 소속사와 계약해지를 당하고 출연하던 모든 프로그램에서 하차하는 아픔도 찾아왔습니다. 고통의 순간, 그가 늘 떠올렸던 한 문장이 있습니다. ‘실패를 결과로 만들지 말자’는 것이었습니다. 멈추면 실패는 결과가 되지만 앞으로 나아가면 실패는 과정이 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애매한 재능들을 따라가는 과정에서 실패의 쓴맛도 보셨어요. 프로농구 선수를 꿈꿨지만 작은 키와 부모님의 반대로 좌절됐고, 어깨 탈골로 비보잉도 지속하기 어려워졌어요.
뜻대로 안됐을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있어요. ‘실패가 결과가 되게 하지 말자’. 부모님이 운동선수는 힘든 길이라며 말리셨지만 그게 ‘농구 포기’라는 결과가 되면 안 되죠. ‘농구선수가 될 수 있는 다른 방법은 뭘까?’를 생각했어요. 농구를 놓지 않았기에 결국 대학에서 농구선수를 했어요. 어떻게든 대안을 찾아내서 결과물을 기어이 손에 넣고 마는 성격이에요. 제 뜻대로 안되는 것에 타협이 안 돼요. 끝까지 붙들고 늘어지죠. 남들은 승부욕이라고 하는데 전 지구력이라고 생각해요. 승부욕의 출처는 상대방이지만 지구력의 출처는 ‘나’에요. 남을 이기는 게 아니라, 내가 목표한 바를 이루는 것이 제겐 가장 중요해요.
―실패해도 좌절하지 않고, 그 실패를 과정으로 만드는 지구력은 어떻게 키우신 건가요?
저는 다 잘해본 적이 없어요. 비보이도 소속팀은 유명했지만 제 실력은 별로였고, 농구도 동네에서나 잘했고, 스노보드도 잘 하는 선수가 아니었고 공부도 중상위권이었거든요. 1등이 아니면 의미가 없다는 압박을 평생 받잖아요. 결과물이 중요한 사회에서 저는 좋은 성적을 내는 차분한 기질이 없었거든요. 뭔가 열심히 하고 싶고 욕구는 넘치는데 내 존재 의미를 찾을 수가 없는 거에요. 어디를 가도 주목받지 못하는 중간자이고, 산만하다는 얘길 들었죠. 그게 아니라는 걸 증명해보이고 싶었어요. 애매한 것 안에서 의미를 찾으려 노력하다보니 못해도 끈질기게 밀어붙이는 성향이 강해진 거죠. ‘2등들이 다 나가떨어져도 나는 끝까지 버텨보지 뭐’, 이렇게 생각했어요. 버티는 놈이 승자에요.
―스스로에게 너무 가혹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실패를 실패로 두지 않고 반드시 과정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압박일 수도 있잖아요.
압박이라기보다 제가 삶을 대하는 태도에요. ‘짝 스타 애정촌’ 출연 이후 한 오보로 인해 크게 상처받고, 넘어졌고, 멈췄어요. 이제와 돌이켜 보면 ‘별거 아니었구나, 극복 가능한 거였구나’라는 생각을 하죠. 다 내려놓을 수도 있었지만 당시 다이빙에 도전하면서 한계를 넘으려 했고, 절에 들어가 마음의 안정을 찾으면서 앞으로 나아가려 노력했어요. 그때 깨달은 것은 ‘멈추면 실패가 결과가 되지만 꾸준히 계속 가면 과정으로 바꿀 수 있다’는 거에요. 세상이 나를 어떻게 평가를 하더라도 내가 계속해서 나아간다면 평가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것도요.
―스트레스 관리는 어떻게 하세요?
아침에 명상을 해요. 샤워를 하면서 ‘나는 잘하고 있다. 나는 건강하다 나는 행복하다’ 이 세 문장을 계속 되뇌어요. 말만 하는 게 아니라 머릿속에 떠올려야 돼요. 웃고 있는 내 모습, 건강한 내 모습, 아이랑 행복한 내 모습. 이걸 머리에 한 번만 떠올리면 하루의 방향이 달라져요. 내비게이션 목적지를 설정해놓으면 어떻게든 경로를 재탐지해서 목적지로 가잖아요. 아침에 ‘피곤하고 짜증나’로 시작하면 아무리 좋은 일이 생겨도 목적지는 ‘짜증’인거에요.
실력은 애매하지만 나의 마음이 동하는 것을 꾸준히 쫓아온 박재민. 그는 대입과 취업의 문턱을 넘고 목표를 상실한 2말3초(20대 후반~30대 초반)에게 나에게 재밌는 ‘딴 짓’을 찾으라고 제안합니다. 당장 해야 하는 일을 제쳐둘 정도의 ‘딴 짓’이라면, 그게 바로 나의 적성일 수 있다는 겁니다. 그게 당장의 직업이 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그는 말합니다. “직업 하나라는 것으로 다 표현하기엔 우리의 삶이 너무 아름답잖아요.”
―한국의 청년들은 대부분 명문대 입학, 대기업 취업을 향해 달려가잖아요. 이후 삶의 목표가 사라졌다는 2말3초들이 정말 많아요. 새로운 적성을 찾는 방법은 뭘까요?
딴 짓을 많이 하세요. 딴 짓은 재밌어서 하는 거에요. 지금 해야 할 일이 있음에도 더 하고 싶고, 관심이 가는 일이 있다면 그게 여러분들이 좋아하는 거에요. 그 딴 짓을 희소성 있게 만들어야 돼요. 저는 스노보드라는 딴 짓이 좋아서 스노보드 심판 자격증을 땄고, 희소성을 살려서 해설위원을 했어요. 배우 중에 스노보드 심판 자격증 가진 사람이 몇이나 되겠어요? 제가 일궈 놓은 것과 제 딴 짓을 연결시켜서 희소성을 개발하면 업이 될 수도 있어요.
―보통 꿈이나 목표를 직업으로 삼는 사람들이 많잖아요. 직업에서 벗어난 삶을 살아온 재민님에게 꿈이란 무엇인가요?
세상이 잘못된 정보를 주고 있는 것 중 하나가 꿈이에요. 꿈이라는 게 이룰 수 있는 걸까요? 꿈은 내가 가고자 하는 이상향, 이루고자 하는 헛된 상상이에요. 그런데 강연을 가서 학생들에게 “넌 꿈이 뭐야?”라고 물으면 “의사요, 과학자요, 대통령이요”라고 답해요. ‘꿈=직업’이 된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에요. 그러다보니 직업을 가진 이후의 삶에 대해 제대로 가르쳐주는 이가 없어요. 꿈을 재설정하는 게 2말 3초분들에게 중요한 것 같아요.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그 삶을 살기 위해 어떤 것이 필요한지 생각해야 해요.
―한 가지 직업만 더 갖는다면 뭘 고르시겠어요?
전 더 이상 갖고 싶은 직업은 없어요. 꿈이 있다면 좋은 아빠가 되는 것, 그리고 가족들과 행복하게 사는 것이에요. 가족을 떠올렸을 때 아이들이 따뜻하다, 돌아가고 싶다, 행복하다고 느꼈으면 좋겠고,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으면 좋겠어요. 제가 사라지고 난다면 인류 역사에 어떤 의미가 남겠어요? 별거 아닌 것에 목숨을 걸고 싸울 필요가 없어요. 그럼 이 세상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은 뭔가? 우리 가족이 조금 더 나은 삶을 살도록 최선을 다 하는 거죠. 제게 직업은 가족을 지키기 위한 공격수단이자 방어수단이에요.
―삶의 목표를 잃어 힘든 이들에게 한 마디 해 주신다면?
“무슨 일 하는 사람이야?”라는 말, 정말 많이 하잖아요. 그런데 직업 하나로 표현하기에는 우리 삶이 너무 아름다운 것 같아요. 현대사회에서 직업이라는 게 너무 중요하지만 그것만이 내 삶의 전부 다 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내 삶은 그것보다 훨씬 다양하고 다채로워요. 항상 내 본질이 무엇인지, 내가 누군지를 잊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복수자들
영화 ‘올드보이’ 속 오대수가 15년 간 군만두만 먹으며 칼을 갈았던 복수? 아닙니다. ‘킬빌’의 블랙맘바가 자신을 죽이려 한 보스를 처단하는 복수? 그것도 아닙니다. ‘복수자들’은 복수(複數)의 직업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한 가지 일만 하고 살기엔 지루하다고요? 새로운 일을 시작하고 싶지만 방법을 모르겠다고요? 본캐와 부캐, 양쪽을 오가는 복수자들이 직접 도전과 병행의 노하우를 전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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