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속활자장 전승교육사 임규헌씨
아버지 뒤이어 ‘활자 장인의 길’
“역사를 지켜내는 일에 미쳐야죠”
주변 온도가 40도가 넘는 후덥지근한 가마 앞이 임규헌 씨(31)의 어릴 적 놀이터였다. 임 씨는 어린 시절 아버지 임인호 국가무형문화재 금속활자장 보유자(59)를 따라 충북 괴산에 있는 작업실에서 온종일을 보냈다. 지난해 8월 국가무형문화재 전승교육사로 인정받은 임 씨는 전승교육사 총 248명 중 가장 젊다.
열여섯 살 때부터 전수생으로 아버지를 따르던 그가 본격적으로 금속활자의 세계에 들어선 건 스무 살 무렵. 1200도가 넘는 쇳물을 다루고, 조각칼로 나무판과 밀랍에 일일이 글자를 새기는 위험천만한 일을 하려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임 씨는 “이러다가는 금속활자를 만드는 전통이 끊어질 거란 생각에 아버지의 뒤를 이어야겠다고 결심했다”고 말했다.
13일 전화로 만난 임 씨는 “아버지 밑에서 이수자로 지낸 5년 동안 돈은 한 푼도 벌지 못했다”며 “첫 월급을 받아 부모님께 용돈을 드리는 또래 친구들을 보면서 내가 과연 옳은 길을 가는지 고민할 때도 있었지만 그때마다 ‘돈보다 명예가 더 중요하다’는 아버지의 말씀을 되새겼다”고 했다.
임 씨는 2011년부터 5년 동안 아버지와 함께 현존 세계 최고(最古)의 금속활자본 ‘직지심체요절(直指心體要節·직지)’의 활자 3만여 자를 복원하면서 “장인으로서의 아버지를 진심으로 존경하게 됐다”고 했다. 상·하권을 합해 78장, 총 3만여 자에 달하는 직지의 금속활자를 손수 제작하는 동안 부자는 하루에 3시간만 자고 주말도 없이 밤낮으로 작업실에서 살았다고 했다. 직지 상권은 국내에 있는 목판본을, 하권은 금속활자본 영인본을 보고 활자를 각각 만들었다. 프랑스국립도서관이 소유한 금속활자본 하권은 12일(현지 시간) 현지 전시를 통해 50년 만에 공개됐다.
임 씨는 “당시 열아홉 살이었던 저는 어떻게든 작업실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아버지 몰래 도망치기도 했다. 그런데 아버지는 복원을 마치고 하반신 마비 증세가 올 정도로 온종일 앉아서 활자를 만드는 데만 몰두했다”고 회고했다. 2015년 마침내 3만여 자를 모두 복원하던 날, 아버지는 말없이 작업실에 놓인 활자들을 바라봤다고 한다.
“아버지는 제게 ‘일에 미치라’고 말씀하셨어요. 여기서 ‘미’는 한자로 아름다울 ‘미(美)’라고, 우리가 하는 일이 그런 일이라고 하셨죠. 그제야 그 뜻을 깨달았어요. 우리가 역사를 지켜내는 아름다운 일을 하고 있다는 걸요.”
임 씨의 목표는 최초의 한글 금속활자 인쇄본인 국보 ‘월인천강지곡(月印千江之曲)’의 활자를 복원해내는 것. 지난해 1년간 이 책의 첫 장에 나오는 금속활자를 복원했다. 그는 “‘하나의 달이 천 개의 강을 비춘다’는 책의 제목에 매료됐다”며 “아버지처럼 수년, 수십 년이 걸리더라도 꼭 복원해 내겠다”고 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