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과 폐지로 상처 입은 청년들 마음은 누가 달래주나요”[정양환의 요즘 (젊은) 것들]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4월 15일 14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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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명지대 바둑학과 ‘17학번 복학생’ 고영훈 씨 (하)

“사회변화로 인한 기성세대와 신세대의 갈등에서 기성세대가 자주 사용하는 말.”
나무위키에 실린 ‘요즘 젊은 것들’ 정의입니다. 폄하의 뉘앙스가 짙지만, 사실 다들 한때는 그런 말을 듣지 않았나요. “누구나 처음엔 어린이였지. 허나 그걸 기억하는 어른은 별로 없어.”(생텍쥐페리 ‘어린 왕자’에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청년들 목소리를 담아보려 합니다. 그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에서 어쩌면 인생이란 타래의 실마리를 찾게 될지도 모르니까요. 살짝 여지를 남기고자 (젊은)엔 괄호를 쳤습니다. 나이가 어디쯤 와있건, 우린 모두 ‘요즘 것들’ 아닌가요.
명지대 바둑학과 4학년 고영훈 씨는 아직 20대 중반이지만 줄곧 바둑과 함께 인생을 살아왔다. 흔히들 그렇듯 산만함이나 고칠 겸 엄마 손에 이끌려 바둑돌을 처음 잡아본 꼬마아이는, 바둑의 깊고 오묘한 세계에 빠져 꾸준히 그 길을 걸어가고 있다. 사진제공 고영훈 씨


*상편(www.donga.com/news/Society/article/all/20230408/118742260/1)에서 이어집니다.

“아무것도 없는 빈 바둑판에 돌이 하나하나 추가되면, 다 내 것 같던 넓은 땅이 쑥쑥 줄어든다. 경계가 흐릿해 다 내 것 같다가, 경계가 드러나며 내 땅인지 네 땅인지 알게 된다.”(윤태호 작가의 만화 ‘미생’에서)

바둑은 어찌 보면 참 간명하다. 희고 검은 돌을 나눠 잡고 승부를 가린다. 5000년 역사를 지녔다는데, 예나 지금이나 땅(집)을 더 차지해야 이기는 건 변함없다. 그래서 바둑은 더 오묘하기도 하다. 수천 년 같은 방식인데 둘 때마다 천변만화한다. 이젠 인공지능이 인간보다 낫다지만, 그건 계산의 영역이지 본질이 바뀐 건 아니다. 여전히 바둑판 위에선 삶의 묘리가 살아 숨 쉰다.

명지대 자연캠퍼스에서 만난 고영훈 씨(25)도 그런 ‘반상(盤上)의 법칙’을 깨쳐가는 청년이다. 현재 아마 5단인 그는 7살 무렵 돌을 잡은 뒤 바둑고등학교를 나와 2017년 바둑학과에 입학했다. 현역으로 전역한 뒤에도 19줄 바둑판은 영훈 씨의 과거이자 현재이자 미래였다. 하지만 지금, 그의 터전이 흔들리고 있다. 지난해 말 명지대가 바둑학과 폐지안을 통과시키며 자신이 몸담은 과가 사라지는 걸 목도해야 하기 때문이다. 아직 최종확정은 아니고 재학생들의 졸업도 보장된다지만, 이미 “가슴이 뻥 뚫린” 쓰디쓴 상처는 누가 메워줄까.

-폐과 소식을 처음 들은 건 언제인가요.

“지난해 10월쯤이었어요. 밤 10시쯤인가, 갑자기 예술체육대학 학생회장단 단톡방이 시끄러웠어요. 다들 ‘에타(대학생 커뮤니티)’ 봤냐며. 누군가 학교 통합안을 몰래 올렸는데, 뭔가 좀 이상하다는 거예요. 내용이 복잡했는데, 간단하게 말하면 바둑학과가 다른 단과대로 옮기고 일반 학생을 받지 않는다는 내용이었어요. 이게 뭔가 싶어 교수님들께 여쭤보니 이건 폐과나 마찬가지라고 설명해주시더군요.”

지난해 말 명지대 바둑학과 학생들이 학교 측의 학과 폐지안에 반대하고 나선 모습. 사진제공 고영훈 씨
-학교 측에 확인해볼 필요가 있었겠네요.

“네, 당연하죠. 바로 공식적으로 문의했습니다. 그랬더니 면담 자리에서 ‘단순한 초안이 누출된 거다. 최종안은 학생들 의견 다 수렴해서 만든다. 우려할 정도의 개편은 없을 테니 걱정마라’고 하더군요. 근데 저도 그렇고, 만나고 나온 학생들이 다들 고개를 갸우뚱거렸어요. 왠지 일단 무마하려고 둘러댄다는 느낌이 강했거든요. 아니나 다를까, 얼마 지나지 않아 갑작스레 공청회라는 걸 열었는데, 의견을 들어주거나 상의하는 분위기가 아니었어요. 뭔가 이미 다 결정됐고 그저 통보하는 식이었죠. 그리고 아시다시피 12월에 학교 측 통합추진위원회라는 게 열렸는데, 거기서 바둑학과 폐지가 통과됐죠.”

-학생들이 충격을 많이 받았겠습니다.

“솔직히 처음엔 너무 황당해서 화도 안 났어요. 뭔가 착오가 있는 게 아닌가 싶기도 했어요. 1997년 창설해 25년이 넘은 학과가 이렇게 쉽게 없어진다는 게 이해가 안 갔습니다. 바둑학과는 한국 바둑계의 산실 같은 곳이고, 입학 경쟁률도 지난해 3 대 1 정도로 나쁘지 않았거든요. 아니 백번 양보하더라도, 학생들 교수들하고 논의는 해야 하는 거잖아요. 문제가 있다면 함께 해결하려고 노력은 해본 뒤에 결론 내도 늦지 않은 거 아닌가요.”

-소통이 부족했다고 느끼는 거군요.

“네, 그게 가장 아쉬워요. 학교 측도 사정이 있을 테죠. 시스템을 바꾸는 일인데 고민도 많았겠죠. 요즘 대학들이 갈수록 힘들단 얘기도 많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상황에 대한 설명이나 양해도 구하지 않는 건, 학생들을 학교의 구성원으로 대해주지 않은 거라고 봐요. 물론 저희는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당연히 폐과에 찬성하지 않았을 거예요. 하지만 그러니까 더 대화했어야 하는 거잖아요. 서로 합의점을 찾으려고 더 열심히 노력했어야죠. 힘을 가졌다고 권한이 있다고 일방적으로 결정한다면, 그걸 보고 학생들이 뭘 배울 수 있을까요.”

고영훈 씨가 사진 촬영을 위해 바둑학과 강의실에서 잠시 홀로 바둑을 두는 포즈를 취했다. 인터뷰 내내 환한 미소를 잃지 않았던 영훈 씨는 바둑알을 잡자 사람이 돌변한 듯 강하고 진중한 품새로 바뀌었다. 용인=정양환 기자 ray@donga.com
-학생회장이 아닌, 개인적으로도 상심이 컸겠어요.

“평소 바둑 말고도 여러 분야에 관심이 많은 편이었어요. 실제로 회장을 맡기 전엔 다른 일을 해보고 싶단 생각도 있었어요. 그런데 일이 터지니까 알겠더라고요. 저도 뼛속까지 ‘바둑인’이었어요. 바둑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얼마나 소중한지를 깨달았어요. 어떤 분들은 바둑학과가 왜 필요하냐고 하시기도 해요. 그런데 우리 과는 그저 프로기사만 배출하는 곳이 아니에요. 바둑 전문 TV 등 관련 산업 전반으로 진출하고, 해외 바둑 보급에 힘쓰는 선배들도 많아요. 한국 바둑 문화에 기여하는 바가 적지 않다고 자신합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국내는 물론 해외 바둑계에서도 이렇게 한목소리로 페과에 반대하지 않았겠죠.”

-앞으로 어떻게 될 거 같나요.

“솔직히, 잘 모르겠어요. 이미 결정된 사안이 쉽사리 바뀌진 않겠죠. 하지만 저를 포함해 대다수 학생들은 할 수 있는 건 다해보고 싶단 마음이에요. 몇몇은 계란으로 바위치기라고 하기도 해요. 벌써 전과나 편입을 고민하는 친구들도 있고요. 그들 마음도 충분히 이해해요. 학생들은 아무래도 을의 입장이고, 이번 일로 더욱 약자라는 걸 많이 느꼈으니까요. 하지만 그냥 주저앉아 포기한다고 해결되는 건 없잖아요. 다행히 바둑을 사랑하는 많은 분들이 도와주시겠다는 연락을 많이 주세요. 쉽게 지치지 않아야 할 거 같아요.”

-이번 학기 휴학했던데, 이번 사건 때문입니까.

“음…(한참 망설이더니), 꼭 그것 때문은 아닌데 아예 없다고도 못하겠네요. 다만 먼저 말씀드리고 싶은 건, 휴학은 했어도 과를 위해 할 수 있는 건 적극적으로 할 거예요. 학생회장 임기는 끝났지만, 후배한테 떠넘기고 떠났다는 얘긴 듣고 싶지 않거든요. 다만 이번 일로 ‘세계관’이 좀 바뀌었어요. 그전까진 어떤 일이든 바둑 관련해서, 일단 취직을 염두에 뒀었거든요. 그런데 학교도 구조조정을 이유로 과를 내쫓는데, 사회에서 회사는 더 심하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 식으로 내 인생이 누군가의 결정에 좌지우지된다는 게 너무 속상한 일이잖아요. 그래서 취직보단 제가 스스로 개척할 수 있는 분야를 찾아보고 싶어요.”

고영훈 씨가 대학교 2학년 때 유럽 여행을 떠났을 당시 스페인에서 찍은 사진. 요즘 한국에선 보기 드문, 쨍하게 푸른 하늘이 인상적이다. 그와 바둑학과 학생들의 미래도 이처럼 맑기를 기원해본다. 사진제공 고영훈 씨
-뭔가 삶의 방향이 바뀌어버린 거네요.

“진짜 세상의 어려움을 감내하는 어른들에 비하면 그리 대단한 게 아니었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저로선 큰 갈림길에 선 기분이 들어요. 그냥 다들 가는, 기존에 있는 길을 찾아갈 수도 있겠죠. 근데 그랬다가 또 이런 일이 반복되지 말란 법이 없지 않을까요. 아직 구체적으로 말씀드리긴 어렵지만, 바둑계에 보탬이 되는 일을 하되 어디에 묶여있고 싶진 않아요. 예를 들어 창업 같은 걸 하더라도, 나만의 콘텐츠로 승부해야 한단 생각이 들어서 그런 준비를 하려고 합니다.”

-쉬운 길아닐 텐데요.

“사실 지금 바둑계가 전체적으로 막 흥하는 분위기는 아니잖아요. 갈수록 바둑 인구도 줄고 있고, 사양산업이란 소리도 듣고 있죠. 바둑계도 반성할 부분이 많다고 봐요. 진입장벽도 높은 편이고, 대중에게 친숙하게 다가서질 못했으니까요. 어쩌면 바둑으로 ‘먹고 살겠다’고 한 순간부터, 이런 어려움은 어떤 식으로건 닥쳤을 거 같아요. 바둑학과 폐지 논란도 그런 상황의 연장선일 수도 있고요. 하지만 아까도 말했지만, 그렇다고 손 놓고 있을 순 없잖아요. 전 이미 바둑과 연을 맺은 사람이니 끝까지 함께 가야죠.”

-바둑학과 나왔다고 바둑 관련 일만 하는 건 아니잖아요.

“맞아요. 그런데 제가 그러고 싶은 거죠. 평생 바둑을 둬왔으니 이쪽 일을 하겠다가 아니라, 지금도 앞으로도 바둑이 좋으니 계속하겠다는 겁니다. 여전히 바둑으로 하고 싶은 게 무궁무진하거든요. 그거 아세요? 이번 큰일을 겪으면서도 단 한 번도 ‘왜 하필 바둑을 선택했지’란 생각은 해본 적이 없어요. 흔히들 바둑에는 인생이 들어있다고 하잖아요. 전 아직 그런 경지는 아니지만, 바둑은 언제나 제게 말을 걸어주는 존재였어요. 아직 전 바둑과 해야 할 얘기가 많이 남아있습니다.”

고영훈 씨와 인터뷰를 마친 뒤 가장 사진 찍고 싶은 장소가 어딘지 물어봤다. 영훈 씨는 잠시 생각하더니 바둑학과 간판과 여러 상패들이 진열된 공간으로 안내했다. 그는 “우리 과 선후배들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 자랑스러운 곳”이라고 소개했다. 용인=정양환 기자 ray@donga.com
명지대 홈페이지에는 여러 소속 학과에 대한 친절한 소개 글들이 실려 있다. 바둑학과도 마찬가지인데, 상세한 설명 중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1997년 사상 최초로 창설된 바둑학과는 바둑을 학문적으로 연구하는 데 목적이 있다. 바둑은 귀중한 문화의 하나로 간주돼 왔음에도 불구하고, 전통적으로 너무 기술적인 측면에 치우침으로써 과학적인 접근법에 의한 연구가 이뤄지지 않았다. (…) 바둑학과는 새로운 패러다임에 기초한 다양한 지식을 제공함으로써 바둑문화의 발전에 공헌하려 한다.”

영훈 씨가 학문적 성취를 얼마나 쌓았는지는 모르겠다. 바둑학과가 사라지는 게 ‘바둑문화의 발전’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도 가늠하기 어렵다. 허나 이번 사태로 바둑을 사랑한 한 청년은 자신의 인생이 나아갈 선로를 틀려 하고 있다. 또한 바둑학과를 꿈꾸던 고교생들은 당장의 진학을 걱정해야 할 처지가 됐다. 어떤 일에도 대가는 따른다지만, 막 날갯짓하는 젊은 꿈에 생채기 내는 결과를 낳진 말길. 그게 어른들의 몫 아닐까.

[나의 옛날이야기] ‘요즘 (젊은) 것들’은 연재 글마다 청년들이 직접 고른 옛 사진들을 싣고자 합니다. 자신의 얘기를 들려주며 그 시절을 들춰보는 ‘코너 속의 코너’입니다. 고영훈 씨가 보내준 두 번째 사진은 초등학교 시절 한 바둑대회에 참가했을 때 찍은 것이라고 합니다. 총기도 자신감도 넘치는 표정이 두고두고 마음에 남네요. 사진제공 고영훈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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