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2000년 전 한반도와 동북아시아 지역에서 숲의 감소가 나타났고, 그 원인은 국가 권력의 형성과 그로 인한 농지 개간, 촌역의 구획 등이라는 연구가 나왔다.
서민수 한국생태환경사연구소 연구원은 이달 8일 개최된 한국고대사학회에서 ‘국가형성기 숲의 생태환경과 경관 변화’를 주제로 이 같은 내용을 발표했다. 국가형성기 동북아시아 권역별로 숲이 얼마나 뒤덮여 있었는지 등 생태환경을 보여주는 화분학(花粉學) 자료와 삼국지, 삼국사기에 나오는 숲의 경관에 대한 기록을 교차시켜 분석한 것이다.
서 연구원에 따르면 중국 중북부 지역에서는 기원전 40세기 경 일찍부터 농경이 시작되면서 숲의 조밀도가 뚜렷이 감소한다. 한반도 지역은 약 2000년 전 서해안 저지대와 남해안부터 부분적으로 숲이 사라졌다. 농지개간이 쉬운 저지대 위주로 숲 경관의 변화가 나타난 것이다. 실제 이 시기 한반도 남·서해안과 호남지역에 비(非)수목 화분이 뚜렷이 증가한다.
이 시대 숲 경관의 변화 요인은 삼국지와 삼국사기를 통해 확인된다. “2월 영을 내려 나라 남쪽의 주·군에 처음으로 논을 만들게 하였다”(삼국사기 권23 중) 서 연구원은 “지배층이 농업에 매진하도록 강제하면서 미개척지 농토의 전환은 속도가 붙었을 것”이라며 “한반도 중남부 지역 숲의 피복(被覆)이 뚜렷이 감소한 것은 삼한 각 지역에서 형성된 국가권력의 등장과 관련이 있다”고 주장했다.
3세기 중엽 고구려가 입지한 만주 남부의 산간지대는 여전히 개간되지 않은 숲이 많았던 것으로 나타난다. “산골짜기에 의거해 살며, 산골의 물을 마신다. 좋은 농토가 없어 부지런히 농사지어도 먹기에 부족하다.”(삼국지 권30 중) 서 연구원은 “험준한 산지가 많은 고구려 지역은 좋은 농토를 마련하기 불리했다”면서 “중국 동북지역의 숲이 기원전후경까지도 높은 피복(被覆)을 유지하는데 기여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삼국지에는 고구려에서 담비가죽과 호마(체구가 작아 산을 오르기 편한 말)를 황제에게 바쳤다는 기록도 나온다. 이에 대해 서 연구원은 “고구려 지역에 농경 확산이 더뎌 모피 생산·유통망을 확보했을 가능성이 있다”면서 “농지 개간이 어려운 생태환경에서 생산되기에 적합한 물품이었던 셈”이라고 분석했다.
한반도 북부 고산지대는 인간의 손길이 덜 닿아 숲 경관의 변화가 미미한 수준이었을 것이라는 추정도 나왔다. 서 연구원은 “고조선의 중심지이자 한나라 무제가 낙랑군을 설치했던 평양 일대는 숲의 개간이 원활했지만 인구가 적은 현에서 숲의 개방은 미미한 수준으로 추정된다”며 “한반도 북부에 넓게 분포한 고산지대에서 수목 화분과 비수목 화분의 관계 변화는 1550년 이후에 확인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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