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영·정조 때를 ‘조선의 르네상스’라고 불러왔습니다. 하지만 영조와 정조는 제왕으로서의 권력을 강화했을 뿐 조선을 새롭게 바꾸진 못했습니다. 이들과 함께 정치 개혁을 꿈꿨던 이들의 눈에 비친 조선은 여전히 낡고 병든 나라 아니었을까요.”
조선 정조 때 실권자 홍국영(1748~1781)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소설 ‘의리주인’(북레시피)을 지난달 17일 출간한 강희찬 작가는 최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민간 싱크탱크 국가경영전략연구원(NSI) 기획조정실장이자 국제정치학 박사인 강 작가는 “조선의 흥망은 이미 18세기 결정된 것이나 다름없다”며 “조선은 어째서 개혁에 실패했는지, 이 과정에서 어떤 새로운 사상이 꿈틀거렸고 어떤 꿈이 결국 좌절됐는지 이 소설 속에 담아내고 싶었다”고 했다.
강 작가는 기존 ‘세도정치가’로 그려져 왔던 홍국영을 ‘개혁가’로 새롭게 재해석했다. 홍국영은 당대 유력했던 풍산 홍씨 가문 출신으로, 할아버지는 관찰사를 지냈지만 그의 아버지는 벼슬길에 오르지 못했다. ‘승정원일기’와 ‘조선왕조실록’ 등에서 홍국영과 관련된 사료를 찾던 그는 “홍국영 집안이 도성 밖에 있었다”는 기록에서 이 소설이 시작됐다고 했다. ‘어쩌면 홍국영의 고향은 도성이 아닌 무수히 많은 상인과 물품들이 오가는 시장이 아니었을까. 구습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시장통에서 홍국영은 어떤 조선을 목격했을까.’
그는 “도성 밖 출생이라는 홍국영의 태생이 그에게 새로운 세상을 꿈꾸게 했을 것이라는 상상에서 출발한 소설”이라며 “누구나 자유롭게 돈을 벌 수 있는 시장에서 성별과 신분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고, 시장에서 자라난 홍국영은 더 자유로운 조선을 꿈꿨을 것이라고 상상했다”고 했다.
그렇게 강 작가가 빚어낸 소설 속 홍국영은 서학과 시장 논리에 밝은 개혁적 인물로 그려진다. 벼슬에 오르지 못한 아버지를 대신해 홍국영의 어머니가 시장에서 장사하며 생계를 이끌었다는 설정도 흥미롭다. 조선의 낡은 관습들이 조금씩 깨지고 있는 현실을 목격한 소설 속 홍국영이 동궁(정조)에게 “사람들의 생각이 변하고 있습니다. 조선의 생각은 낡았고 새로운 생각이 필요합니다”라고 직언하는 대목은 그가 꿈꿨던 새로운 조선을 보여준다.
‘의리주인’은 홍국영의 도움으로 동궁이 왕위를 물려받는 데서 끝나지만, 강 작가는 “그 이후의 이야기가 더 남아 있다”고 했다. 역사가 말해주듯, 홍국영은 자신의 여동생을 정조의 후궁으로 들이며 권력의 중심에 다가서다가 1780년 효의왕후를 독살하려던 계획이 발각돼 축출당한 뒤 33세에 병사했다.
강 작가는 “‘의리주인’ 후속편에서는 근본적인 태생이 달랐던 정조와 홍국영의 사상 대립을 다룰 것”이라며 “소설 속에서 조선을 개혁하려 했던 홍국영의 꿈은 끝내 실현되지 못하지만, 나는 이것이 홍국영 개인의 실패가 아닌 조선의 실패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강 작가는 “실패할 줄 알면서도 조선 개혁에 뛰어든 홍국영의 꿈과 욕망을 후속 작품에 담아내고 싶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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