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 패권 놓고 총성 없는 전쟁… 경제적으로는 상호 의존 관계
어느 한쪽 승리 쉽게 장담 못해… 주변국들 현실적인 관계 맺어야
◇하버드대학 미-중 특강/마리아 에이들 캐러이 등 엮음 함규진 옮김/520쪽·2만3000원·미래의창
“우리와 중국의 관계는 필요할 때는 경쟁적이고, 가능할 때는 협력적이며, 불가피할 때는 적대적일 것입니다.”
2021년 3월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은 취임 후 공식석상에서 바이든 행정부의 대(對)중국 정책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미국 하버드대 중국사 교수 등 중국학 전문가들은 블링컨 장관의 말 속에 등장한 단어 ‘경쟁’에 주목한다. 당시부터 5년 전까지만 해도 중국이 미국과 어느 정도 맞먹는다는 평가는 일반적이지 않았다. 하지만 분위기가 바뀌었다. 안보와 경제, 군사개발 등을 둘러싼 미중 문제에 대한 세계적 석학 54명의 글을 엮은 이 책에서 필자들은 “미중 양국은 (이미) 경쟁 관계”라고 전제한다.
세계 안보 패권을 놓고 미중은 총성 없는 전쟁을 치르고 있다. 미국 연방수사국(FBI)에 따르면 중국의 첩보활동 사례 적발 건수는 10년 전에 비해 1300% 증가했다. 마이크로소프트(MS)는 2020년 대선 기간 한 중국 조직이 조 바이든 후보 측 관계자들의 e메일 계정을 해킹하려 했다고 밝혔다. 미국의 동맹국을 향한 중국의 경제 압박도 심해지고 있다. 한국에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를 배치하기로 결정하자 중국이 사실상 자국민의 한국 여행을 금하고 중국 내 한국 기업의 문을 닫게 만든 사례가 대표적이다. 중국은 미국 중심의 안보 체제에 균열을 내고 있다.
경제 측면에서의 변화도 감지되고 있다. 2020년 기준 미중 양국 간 상품 및 재화 무역액은 약 6600억 달러(약 884조 원). 미국과 중국은 경제적으로 상호 의존적인 관계다. 이 때문에 라이언 해스 미국 브루킹연구소 외교정책학 부장은 적대적인 미중 무역 전쟁이 오히려 미국을 위협할 거라고 지적한다. 트럼프 행정부의 대중 무역 전쟁으로 미국 내 일자리 24만5000개가 사라졌고, 2020년 중국의 대미 직접투자액은 2017년 대비 10%로 줄었다. 중국은 내수 시장을 기반으로 경제성장을 이끌어왔으며, 최근 대미 무역 비중을 줄이는 추세다. 미국의 대중 무역 제재가 잘 통하지 않는 배경이다.
앞으로 주변국들은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 미중 갈등이 어느 한쪽의 손쉬운 승리로 끝나진 않을 거라고 전문가들은 전망한다. 앨러스테어 존스턴 하버드대 교수는 “상호 간 위협이 증가하는 상황에서 필요한 것은 흑백 논리가 아니다. 미중의 이해관계를 서로 구분할 수 없는 복잡성의 관점에서 사고하는 것”이라고 했다. 유럽이 선택한 방식은 ‘줄타기 외교’다. 유럽연합(EU)은 “중국의 경제적 관행들에 대해 미국과 먼저 협의해 달라”는 미국 백악관 안보보좌관의 요청을 무시하고 2020년 중국과 포괄적 투자 협정을 체결했다. 그러면서도 EU는 2021년 중국이 위구르 소수민족을 탄압하던 시기 위구르 자치구를 책임지고 있던 중국 관료 4명에게 제재를 가했다.
래너 미터 영국 옥스퍼드대 정치국제관계학과 교수는 추천사에서 “우리는 지금 중국에 대해 더 많이 알아야 하며 이를 통해 보다 분명하고 현실적인 관계를 맺어야 한다”고 했다. 원제 ‘미중 관계에 대한 비판적 통찰력(Critical Insights Into US-China Relations)’.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