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수저’ 세라믹 아티스트, 산티아고 순례길 8번 걸은 이유는?[복수자들]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5월 6일 15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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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라믹 아티스트이자 산티아고 순례길 여행가 김소영 씨. 김소영 씨 제공
세라믹 아티스트이자 산티아고 순례길 여행가 김소영 씨. 김소영 씨 제공
시들지 않는 꽃을 빚는 여자가 있습니다. 세라믹 아티스트인 도화 김소영(36)은 2011년부터 12년째 도자기로 빚은 카네이션 브로치를 만들고 있습니다. 배고픔을 숙명처럼 지고 가는 예술가에게 도자기 카네이션은 생계수단이었고, 포기할 뻔한 순간 한 걸음을 더 떼게 만든 원동력이었습니다. 절박했기에 안주하지 않았습니다. 매년 다른 디자인을 개발했고, ‘도자기=그릇’이라는 고정관념을 깨기 위해 머리와 드레스에 도자기 카네이션을 잔뜩 붙이고 거리를 활보하는 퍼포먼스를 선보이기도 했습니다.

영감은 배고픔에서 나오나봅니다. 도자기 카네이션은 돈이 아쉬웠을 때 나온 아이디어였습니다. 졸업 후 일하던 쇼핑몰이 폐업 조짐을 보여 퇴사하면서 수개월 간 실직상태에 놓였던 그는 유년시절 로망이었던 ‘산티아고 순례길’을 떠올렸습니다. 당시 수중의 돈은 100만 원 남짓. 산티아고를 가는데 필요한 돈을 마련하기 위해 방법을 고민하다 떠올린 것이 도자기 카네이션이었습니다. 하룻밤 사이 60개의 도자기 카네이션을 만들었고, 300만 원을 마련해 산티아고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습니다. 산티아고가 주는 자유와 평온의 감각에 눈 뜬 그는 지금까지 8번 산티아고를 갔고, 서울과 부산을 8번 왕복한 거리인 5479km를 걸었습니다.

개인전을 열고, 틈만 나면 산티아고로 훌쩍 그에게는 ‘금수저’라는 의혹(?)도 따라다닙니다. 하지만 그는 도예를 시작한 지 10년이 지난 30대 초반까지도 모아둔 돈이 하나도 없었다고 합니다. 서울의 작업실을 빌릴 여력이 안돼 4년 간 귀촌을 하기도 했습니다. “도예를 계속 할지 고민 된다”는 후배가 찾아오면 그는 단호하게 말합니다. “거지같이 밥 못 먹어도 하고 싶으면 하고, 아니면 그만 두라”고 말입니다. 그가 10년 간 스스로에게 해 온 말이기도 합니다.

그에게 ‘꿈’의 또 다른 말은 ‘절박함’입니다. 재고 따진다면 그만큼 절박한 게 아니라는 것이 그의 지론입니다. “정말 하고 싶은 걸 이루기 위해선, 안되는 이유 대신 어떻게든 되게 만드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는 마음가짐으로 도예도, 산티아고도 놓지 않았습니다. 간절함이 길을 만든다는 그를 지난달 18일 서울 도봉구 작업실에서 ‘복수자들’이 만났습니다. ‘흙수저 아티스트’로 살아남은 방법(https://www.youtube.com/watch?v=vfHPEB_QCh0)과, 산티아고에서 5479km를 걸은 이유(https://youtu.be/qFSrZbmYEGg)를 동아일보 유튜브 ‘기웃기웃’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동아일보 유튜브 ‘복수자들’ 캡처
―12년 간 인기를 끌고 있는 ‘도자기 카네이션’을 판매하시고 얼마 전 개인전도 여셨어요. 그런데 세라믹 아티스트가 원래 꿈이 아니었다고요?

미대에 진학해서 도예를 처음 접했는데 너무 어려웠어요. 원래 섬유 전공을 희망했는데 경쟁에서 밀려서 도예 전공을 하게 됐어요. 제 마음대로 모양이 안 나오면 도자실을 폭발시켜버리고 싶을 정도로 싫었어요.도자실 앞에서 엉엉 울기도 했죠. 그런데 제 성향이 현실에 만족을 못해도 그 생각을 바꾸려고 해요. 도예가 싫었지만 어쨌든 해야 하잖아요. 이왕 이렇게 된 거, 학교에선 최고가 돼 보자고 마음을 잡았어요.

김소영 씨가 2011년부터 12년 째 만들고 있는 도자기 카네이션. 김소영 씨 제공
김소영 씨가 2011년부터 12년 째 만들고 있는 도자기 카네이션. 김소영 씨 제공
―‘도자기 카네이션’을 12년 째 만들고 계세요. 도자기 카네이션은 어떻게 시작하셨나요?

졸업 후에는 ‘도자기로 먹고 살 수 있을까?’라는 생각에 카페 알바도 하고 쇼핑몰에서도 일했는데 쇼핑몰 사세가 기울어서 퇴사를 했어요. 이후 4개월 동안 실직 상태였는데 그때 산티아고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2006년 쯤 파올로 코엘료의 ‘오 자히르’라는 책에서 산티아고 순례길을 처음 접한 뒤에 꼭 가 보고 싶었거든요. 산티아고를 갈 돈을 벌 방법을 궁리하다가 도자기 카네이션을 떠올렸어요. 그 때 수중에 100만 원 밖에 없었거든요. 밤을 새서 하루만에 60개를 만들고, 트위터를 통해서 판매를 해서 300만 원 남짓을 모았어요. 그 돈을 다 털어서 무작정 산티아고로 떠났죠.

―여행경비 마련을 위해 졸업 후 눈을 돌렸던 도예가 업이 된 거네요.

맞아요. 산티아고를 가기 위해 도자기 카네이션을 개발했고. 그걸 판매도 해 보면서 ‘도자기로도 돈을 벌 수 있구나’라는 용기가 생겼어요. 이 길을 계속 가보자는 결론이 났죠. 산티아고를 다녀와서 2012년부터 도자기 카네이션 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했어요. 6개월 동안 4000개를 만들고 버리는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맘에 드는 디자인을 완성시켰어요. 첫 해였던 2011년 판매량보다 10배 더 많은 600개를 판매했어요.

―도예는 돈 벌기 힘든 예술이라는 시선이 있잖아요. 경제적 어려움은 없으셨나요? 도자기 카네이션으로 안정적인 수익을 내신 건지 궁금해요.

30대 초반까지 모아놓은 돈이 하나도 없었어요. 버는 족족 작업실 임대료와 재료비로 다 나갔거든요. 월에 기본 500만 원은 들었어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였죠. 버는 돈은 많아도 그만큼 나가니까 모을 수가 없는 상황이었어요. 남들보다 몇 배는 더 일하는데 돈은 안벌리니 ‘내가 이걸 왜 하고 있지’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그런 생각을 하다가도 막상 작업을 시작하면 너무 재밌으니까 그만두질 못한 거죠.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그만둘 뻔한 순간은 없었나요?

2018년 무렵에 돈이 한 푼도 없었어요. 원래 일하던 작업실이 철거를 하면서 새로운 작업실을 구해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서울에서 작업실을 구할 여력이 안돼서 귀촌을 택했어요. 작업실을 알아보던 중 수도원에서 빈 공간을 무료로 빌려주신다고 해서 강원도 홍천, 정선에서 4년 간 살았어요. 그곳에서 사람도 안 만나고 도자기만 만들면서 악착같이 2년 동안 1억 원을 모았어요.

동아일보 유튜브 ‘복수자들’ 캡처
―예술을 업으로 삼는 사람 중에서는 소위 ‘금수저’도 많잖아요. 경제적 압박 없이 작품활동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박탈감이 들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재력이 있었다면 더 빨리 성장할 수 있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죠. 돈으로 쉽게 해결되는 것들을 하나하나 직접 하려다보니 너무 돌아가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그런데 제가 인정이 빠른 편이에요. 돈이 많았으면 좋겠다는 건 제 이상일 뿐이잖아요. 돈이 없는 상태에서 제 스스로 해나가야 한다는 건 저에게 주어진 현실이고, 그 현실에서 제가 택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을 가요. 그 길에서 얻는 것도 있어요. 배고픈 상황에서 어떻게든 악착같이 살아남은 과정이 피가 되고 살이 됐어요. 어떤 상황에 처하더라도 헤쳐나갈 자신이 있어요. 돌아왔던 시간들이 부끄럽지 않고요.

―지금은 안정적인 수익이 있으신가요?

12년 동안 도자기 카네이션을 판매하고, 도예와 마케팅 강의도 하면서 안정적으로 돈을 벌었어요. 이제 어느 정도 안정권에 접어들긴 했는데, 안정을 포기하고 새로운 도전을 하려고 하는 시점이에요.

―어떤 시도인가요?

도자기 카네이션이나 액세서리같은 작은 작업들만 하는 게 답답하게 느껴지더라고요. 파인아트 작가로 더 큰 규모의 작업을 하고 싶다는 욕구가 생겼어요. 제 세계관을 담은 작품들이요. 어렸을 때부터 우주와 별을 좋아했거든요. 제 작품에 우주와 별을 담고 싶어요. 그래서 문화센터, 방과 후 교실 다 그만 뒀고, 도자기 카네이션 비중도 줄여나가려고 해요. 제 신념은 ‘하나를 포기해야 하나를 얻을 수 있다’는 거에요. 이 문이 닫혀야 반대쪽 문이 열리죠. 1년 정도 거지같이 살면서 제 미래에 투자하려고요. 전 그래서 10년을 봐요. 10년 뒤에는 ‘지금의 선택을 내리길 잘 했다’고 생각할 거 같아요.

동아일보 유튜브 ‘복수자들’ 캡처
“성공한 예술가의 95%는 ‘금수저’라는 속설이 있다. 나머지 5%가 나다.”

소영 씨의 말입니다. 예쁜 옷, 비싼 가방을 못 사서 아쉬운 적은 단언컨대 한 번도 없었습니다. 더 넓은 작업실에서 재료비 걱정 없이 원하는 작업을 하는 것. 그 꿈에 다가가는데 돈이 걸림돌이 될 때 그는 답답함을 느꼈습니다. 그럴 때마다 숨통을 틔워준 건 산티아고였습니다. 현실이 팍팍하게 느껴질 때 산티아고에서 만나는 낯선 이의 미소와 따뜻한 인사가 ‘산소호흡기’와 같은 역할을 했습니다. 이 순례길은 예수의 열두제자 중 한 명인 야고보의 무덤이 있는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 가는 길입니다.

―산티아고를 8번이나 가셨다면서요. 그곳의 가장 큰 매력이 뭔가요?

그 곳의 모든 사람들이 웃으며 서로 인사를 해요. ‘부엔 까미노’라는 인사말인데 ‘좋은 길 되세요’라는 뜻이에요. 서로 웃으며 부엔 까미노를 나누면 힘들었던 순간들이 씻겨 내려가는 기분이 들어요. 그래서 그 후론 현실이 힘들 때마다 산티아고를 찾았어요. 지금까지 총 8번, 다 합쳐 5479km를 걸었네요.

산티아고에서의 김소영 씨. 김소영 씨 제공
산티아고에서의 김소영 씨. 김소영 씨 제공
―8번이나 이유가 뭔가요?

산티아고는 저에게 산소호흡기같은 존재예요. 사람이 살아가려면 숨을 돌릴 시점이 필요하잖아요. 도자기는 저를 너무 힘들게 한 적이 많아요. 그 힘듦을 씻어내고 에너지를 다시 채워주는 존재가 산티아고였어요. 제가 다시 달릴 힘을 주는 존재이자 제 고향같은 곳이라 매년 찾아요. 제 심장을 둘로 나눈다면 하나는 도자기, 다른 하나는 산티아고예요.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이 있나요?

산티아고를 처음 갔을 때 제대로 운동을 안 하고 가서 제대로 걷지도 못했어요. 너무 고통스러워하는 저를 보고 한 스페인 커플이 짐을 들어주겠다고 다가왔어요. 커플이었는데, 여자분도 힘들어서 짐을 남자가 들고 있는 상황이었거든요. 그런데 그 여자분이 10kg이 넘는 제 백팩을 들어줬어요. 제 가방을 매고 걸어가는 여자분 뒷모습은 12년이 지나도 안 잊혀요.

동아일보 유튜브 ‘복수자들’ 캡처
―세라믹 아티스트로서의 꿈은 뭔가요?

저는 세계적인 아티스트가 되고 싶어요. 세계에 제 ‘우주별 도자기’를 알리는 게 꿈이에요. 도자기가 단순히 액세서리나 식기뿐만 아니라 하나의 작품으로 온전히 사랑받는 날을 꿈꿉니다. 내년에 미국 뉴욕에서 전시를 여는 게 목표에요. 일단 9월 뉴욕행 티켓을 끊었어요. 전시 공간을 물색하려고요. 맨땅에 헤딩이죠. 믿을 건 제 몸뚱아리 하나 밖에 없어요. 10년 뒤의 제 모습을 기대해주세요.


김재희기자 jetti@donga.com
이지훈기자 easyh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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