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명관 작가(59)를 보면 장편소설 ‘돈키호테’를 쓴 스페인 문학의 거장 미겔 데 세르반테스(1547~1616)가 생각납니다.”
지난달 18일(현지 시간) 장편소설 ‘고래’(2004년)를 영국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최종 후보에 선정한 심사위원회는 최근 동아일보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천 작가를 이렇게 평가했다. 심사위원회는 “풍부한 상상력으로 소설을 능청스럽게 풀어나가는 천 작가의 서술 방식에 매료됐다”며 “‘고래’는 훌륭한 피카레스크 소설(악당소설)이라는 점에서 러시아 극작가이자 소설가인 니콜라이 고골(1809∼1852)의 장편소설 ‘죽은 혼’(1842년)처럼 느껴졌다”고 설명했다.
부커상은 노벨 문학상, 프랑스 공쿠르상과 함께 세계 3대 문학상으로 꼽힌다.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은 5명이 심사한다. 영어로 작품을 써 2012년 부커상 최종 후보에 오른 말레이시아 작가 탄 트왕 엥(51), 영국 유니버시티칼리지런던(UCL) 동유럽문학과 교수인 영국 번역가 우일람 블레이크(43)가 인터내셔널 부문 심사위원회를 대표해 답변을 보내왔다.
심사위원회는 ‘고래’를 최종 후보로 고른 이유에 대해 “기괴한 등장인물, 기이한 음모, 마법적인 요소가 뒤섞인 롤러코스터 같은 작품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또 “노파, 춘희, 금복 등 다양한 등장인물이 각자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며 “우린 왜곡되고 뒤틀리고 불안해하는 인물의 모습에서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고 칭찬했다.
“소설을 읽으며 한국의 역사와 풍경을 마주했어요. 예를 들어 소설엔 옛 한국의 어촌과 마을 풍경이 자세히 묘사됩니다. 또 현대화된 한국 도시 모습도 담겨있죠. ‘고래’를 읽는 건 한국의 문학적, 역사적, 정서적 지형을 관통하는 광범위한 여행을 떠나는 것만 같은 특별한 경험이었습니다.”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은 2016년 한강 연작소설집 ‘채식주의자’(2007년·창비)가 수상했다. 지난해 정보라 단편소설집 ‘저주토끼’(2017년·래빗홀)가 최종 후보에 올랐던 만큼 올해 출판계의 기대는 낮았다. 그런데 ‘고래’가 최종 후보에 선정되면서 처음으로 한국 작가의 작품이 2년 연속 최종 후보에 오른 이례적 상황이 벌어졌다.
이에 대해 심사위원회는 “한국 문화가 전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끌면서 사람들이 음악 영화 드라마는 물론 문학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며 “특히 유럽의 젊은 독자들은 한국 영화 드라마를 보다가 문학 작품을 읽게 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영화 ‘기생충’,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게임’, 그룹 방탄소년단(BTS) 등 대중문화의 인기가 한국 문학의 세계화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평가다.
심사위원회는 또 “최근 영어로 번역되는 한국 소설이 많아졌다. 그 덕에 더 많은 한국 작품을 읽을 수 있게 됐다”고 양적 성장을 지적했다.
“‘고래’는 한국에선 19년 전 처음 출판됐어요. 그러나 해외 독자들은 이제야 영어로 ‘고래’를 읽을 수 있게 됐습니다. 번역이 세계에 한국 문학을 알리는 데 얼마나 중요한지 알아야 합니다.”
부커상 수상자는 23일(현지 시간) 영국에서 발표된다. 6편의 최종 후보엔 노벨 문학상 유력 수상 후보로 꼽히는 프랑스 소설가 마리즈 콩데의 작품이 포함되는 등 경쟁작이 쟁쟁하다. 수상 가능성을 묻자 조심스러운 답변이 돌아왔다.
“수상 가능성은 최종 후보에 오른 다른 5권의 소설들과 마찬가지입니다. 확률은 6분의 1이죠. 다만 ‘고래’ 수상 여부와 별개로 최종 후보에 오른 작품들에 한국 독자들이 많은 관심을 기울여주길 바랍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