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 펴낸 이난영 前관장
“아이들 위한 내 생의 마지막 책
박물관 더 많이 찾아준다면 성공”
“여태까지 책을 10여 권 썼는데, 전부 전문가를 위한 학술 책이었어요. 내 생의 마지막 책은 관장이 아닌 유물을 사랑하는 할머니로서 아이들을 위해 쓰고 싶었어요.”
국내 최초의 여성 학예연구사, 최초의 여성 학예연구관, 최초의 여성 국립경주박물관장…. 1957년부터 국립박물관에서 근무하며 잇달아 ‘최초’ 기록을 썼던 이난영 전 국립경주박물관장(89)은 6일 전화 인터뷰 내내 ‘마지막’이라는 말을 자주 꺼냈다.
서울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단국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이 전 관장은 최근 펴낸 ‘박물관에서 속닥속닥’(진인진·사진)에 대해 “내 생의 마지막이자 은퇴 이후 30년을 정리한 책”이라고 했다. 2012년 출간한 ‘한국 고대의 금속공예’(서울대학교출판부) 이후 11년 만에 펴낸 이 책에는 그가 1986년 국립경주박물관장으로 일하기 시작하며 마주한 유물에 얽힌 추억이 담겼다.
책은 유물 이야기를 전하다가도 자꾸 샛길로 샌다. ‘경주 분황사 모전석탑 사리장엄구’를 소개하다가 고등학교 수학여행 때 경주박물관에서 이 유물을 처음 본 순간을 들려주는 식이다. 이 전 관장은 “일부러 그렇게 썼다”며 “돌이켜 보니 내가 경주와 경주박물관을 사랑했던 건 그곳에서의 추억 때문인 것 같다”고 했다. 수학여행 당시 전시장에는 분황사 모전석탑 사리장엄구에서 나온 가위, 동전, 집게, 은합 등이 함께 전시돼 있었다. 그의 눈에 띈 유물은 그중 가장 작고 가느다란 ‘금·은제바늘’이었다고 한다. 훗날 학예연구사로 이 유물을 재조사한 인연을 덧붙이며 그는 “오랜 시간 녹슬지 않고 완형을 유지한 이 유물은 당대 신라의 바늘 제작 기법이 얼마나 완벽했는지를 대변한다”고 예찬했다.
이 전 관장은 신라 유물 가운데 토우(土偶·흙으로 만든 사람이나 동물상)를 “성덕대왕신종보다도 더 사랑한다”고 했다. 이 전 관장은 “발굴 조사를 나가면 나 혼자 여자라 방을 차지한다고, 힘을 쓰지 못한다고 늘 현장 작업에서 소외되곤 했다”며 “‘그냥 학교 선생님을 할걸’ 하고 후회하던 때 나름대로 박물관에서 살길을 찾았다. 그 길이 바로 유물 창고 관리였고, 그때 창고에서 만난 유물이 신라의 토우였다”고 회고했다. 이 전 관장은 2000년 ‘신라의 토우’(세종대왕기념사업회), 2006년 ‘토우’(대원사) 등 자신의 토우 연구 성과를 담은 저서를 냈다.
2020년 초 이번 책 출간을 준비하면서도 틈틈이 토우와 관련된 신간 초고를 집필해 왔지만 마무리를 하지 못했다. 지난해 7월 낙상 사고로 거동이 어려워진 탓이다. 이 때문에 ‘박물관에서 속닥속닥’을 펴내는 데에도 3년이 넘게 걸렸다. 이 전 관장은 “몸이 아파 더는 책을 못 쓰겠다 싶을 때마다 경주박물관 직원과 제자들이 나를 찾아와 도판을 내밀며 글을 계속 쓸 수 있게 도왔다. 아직도 나를 관장이라고 불러주는 후배들 덕분에 마지막 힘을 쥐어짜 냈다”고 했다. 이 전 관장은 “내 책을 읽고 더 많은 이들이 박물관을 찾아준다면 그걸로 내 할 일은 다 한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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