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아 카잔 감독의 영화 ‘워터프론트’(1954년)에서 주인공 테리(말런 브랜도)는 악랄한 부두 노조 지도자의 ‘오른팔’인 형 때문에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을 받는다. 조선 시대 문신 심의(1475∼?)도 세상 사람들이 손가락질하는 형으로 인해 고초를 겪었다. 다음은 시인이 형을 추모하며 쓴 시다.
어느 밤 관사에서 잠을 이루지 못하던 시인은 갑자기 영문 모를 눈물을 흘린다. 애끓는 기러기 울음을 핑계 삼지만 실제론 죽은 형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었다. 시인의 형 심정은 남곤과 함께 기묘사화를 일으켜 조광조 등 선비들을 참소해 죽음에 이르게 한 인물이었다. 말과 행동이 교활하고 권모술수에 능하여 당시 사람들이 꾀주머니(智囊)라고 불렀다(‘己卯黨籍補’). 시인은 형이 잘못될까 항상 걱정했지만 형은 말을 듣지 않았다.
영화 속 테리는 노조 지도자의 범죄를 감추기 위해 자신을 회유하려는 형 찰리의 제안을 거절하면서, 한때 전도유망한 권투 선수였던 자신을 범죄 세계로 끌어들인 형을 원망한다. 찰리는 지난 잘못을 회개라도 하듯 테리에게 총을 넘긴 뒤 노조 지도자 일당에게 죽음을 맞는다. 형제가 차 뒷자리에서 마지막 나눈 말은 혈육의 정을 드러내는 대사로,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의 ‘분노의 주먹’(1980년)을 비롯해 훗날 다른 영화에도 인용된다.
시인과 형도 생각이 달랐지만 우애는 깊었다. 형이 살아있을 때 시인은 형의 집에 갔다가 쥐구멍을 보고 “이것은 형이 훗날 나가고 싶어도 찾지 못할 구멍이니, 오늘 시험 삼아 한번 나가 보는 게 어떻소”라고 농담한 적이 있다. 그 뒤 형이 사사(賜死)되자 시인은 울면서 “쥐구멍이 저기 있건만 형은 어디 갔는가”라고 슬퍼했다(‘寄齋雜記’).
시인은 형과 반목했다는 세평으로 인해 형의 죄에 연루되진 않았지만, 형에 대한 그리움을 종종 시에 드러냈다. 형제간 추억이 시인의 마음을 저리게 해서 형이 심은 나무만 봐도 눈물이 났다(‘到政丞兄家, 拭淚偶吟’).
옛사람들은 형제란 몸만 나누어졌지 기운은 서로 연결된 사이라고 생각했다. 세상이 증오하는 악인일지라도 형에 대한 안타까움마저 거둘 수는 없었다. 시에서 말한 까닭 없는 눈물이란 공자가 한 말에서 연유한 것이다(禮記 ‘檀弓上’). 슬퍼할 뿐 어떤 도움도 줄 수 없던 자신에 대한 자책감이 드러난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