챗GPT-3대 AI번역기 활용해, 유명 문학작품 일부 번역해보니
파파고-구글-딥엘 문학표현 못살려… 추가요청 가능 챗GPT가 수준 높아
“AI번역기 거부하기보다는, 인간 번역가와 공생방안 찾아야”
“훗날, 대극장을 설계한 건축가에 의해 처음 그 존재가 알려져 세상에 흔히 ‘붉은 벽돌의 여왕’으로 소개된 그 여자 벽돌공의 이름은 춘희(春姬)이다.”
올해 영국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최종 후보에 오른 장편소설 ‘고래’(2004년)의 첫 문장이다. 이를 대화형 인공지능(AI) 챗GPT에게 ‘천명관 작가(59)의 문체를 반영해 영어로 번역해 달라’고 요청했다. 챗GPT는 이렇게 번역했다.
“In the days to come, it was the architect, the mastermind behind the grand theater, who unveiled her existence, introducing her to the world as the oft-revered ‘Queen of Crimson Bricks.’ Her name, resonating with a whisper of enchantment, is Chunhee(春姬).”
번역문에는 천 작가 특유의 능청스러움이 묻어난다. 원문의 ‘붉은’은 색깔 ‘진홍색’뿐 아니라 ‘피비린내’라는 뜻을 함께 지닌 ‘Crimson’으로 번역됐다. ‘이름은 춘희이다’를 번역할 땐 원문에 없던 ‘황홀하게 울려 퍼지는’(resonating with a whisper of enchantment)이란 수식을 더했다. 이름을 번역할 때 한자 ‘春姬’를 병기한 점도 눈길이 간다. ‘고래’의 번역자인 김지영 번역가(42)가 춘희의 뜻인 ‘봄의 여자’(girl of spring)를 병기한 것만은 못하지만, 고유명사를 고려했다.
최근 출판계에서 문학 번역가를 AI가 대체할 수 있는지가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한국문학번역원이 이달 26일 관련 심포지엄을 열 정도다. 본보는 번역가들 사이에서 종종 쓰인다고 알려진 3대 AI 번역기와 챗GPT를 활용해 유명 문학 작품 일부를 번역해 봤다.
한국의 ‘파파고’, 미국의 ‘구글번역기’, 독일의 ‘딥엘’을 사용한 결과 직역은 나쁘지 않았지만, 문학적 표현은 살리진 못했다. 이민진 작가(55)의 장편소설 ‘파친코’의 첫 문장(“History has failed us, but no matter”)에서 ‘fail’은 2018년 문학사상 판에선 ‘망쳐 놓다’, 2022년 인플루엔셜 판에선 ‘저버리다’(역사는 우리를 저버렸지만 그래도 상관없다)로 번역됐을 정도로 함축적인 문맥을 담은 표현이다. 하지만 구글번역기 등 AI 번역기 3개는 ‘실망’ ‘실패’ 같은 직역을 내놓는 것에 머물렀다.
챗GPT의 번역 수준은 개중 높아 보였다. 번역할 때 추가적인 요청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최종 후보에 오른 단편소설집 ‘저주토끼’(2017년·래빗홀)에 실린 단편 ‘저주토끼’의 첫 문장을 정보라 작가(47)의 문체로 번역해 달라고 요청하자 챗GPT는 ‘더’(The more)를 2차례 사용하며 대구법을 썼다. “저주에 쓰이는 물건일수록 예쁘게 만들어야 하는 법이다”(원문)가 “The more cursed an object, the more beautifully it should be crafted”(챗GPT)로 번역된 것. 챗GPT는 ‘파친코’의 첫 문장에서 ‘fail’을 ‘배신’이라고 그럴듯하게 번역하기도 했다.
정과리 문학평론가(연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AI를 거부하기보단 인간 번역가와 AI 번역기가 공생하는 방안을 찾는 것이 우선”이라며 “다만 AI의 저작권과 역할을 어디까지 인정할지는 논의할 과제”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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