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 혐의로 붙잡힌 피의자가 2명 있다. 정상적인 정신상태가 아닐 가능성이 있어 2명 모두 정신감정을 받기로 했다. 한 명은 정상적으로 면담을 하다가 갑자기 허공에 소리를 버럭 지른다. 다른 한 명은 면담 내내 조용한 말투로 중얼거린다. 누가 진짜 심신미약자일 가능성이 높을까.
범죄를 저지를 당시 범인의 판단 능력이 미약했는지는 정신감정을 통해 가려진다. 국립병무병원(치료감호소) 근무 시절 5년 동안 230건 넘게 정신감정을 했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가 감정 사례를 통해 정신감정에 대한 독자들의 궁금증에 답하고, 정신감정 제도의 필요성도 설명한다. 저자에 따르면 환자마다 다르지만 조현병 환자의 경우 혼자 있을 때 누군가와 이야기하듯 중얼거리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술을 마시고 저지른 범죄는 온전한 정신상태가 아니었다는 이유로 감형을 받을 수 있을까. 범죄를 저질러 놓고 술을 핑계로 책임을 면해 보려는 사례가 적잖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하지만 음주는 정신감정을 해도 대부분 ‘정상’ 판정을 받는다. 조현병 등 정상적인 정신상태가 아닌 것으로 감정 결과가 나와도 그 상태로 인해 일어난 범죄가 아니면 감형을 받을 수 없다.
근래에는 법 제도도 변화가 생겼다. 2008년 조두순이 미성년자를 성폭행하고도 술을 먹었다는 이유로 감형을 받은 것을 계기로 성폭력특별법에 아동 성폭력 범죄의 경우 음주나 약물에 따른 심신미약에 대해 형을 감경하지 않도록 부칙이 생겼다. 2018년 서울 강서구 PC방 살인사건 이후엔 심신미약자에게는 형을 줄이도록 한 형법 규정도 ‘감경할 수 있다’로 바뀌어 감형 여부를 엄격하게 판단한다.
정신감정을 악용하려는 사람도 있지만 저자는 정신감정 제도가 ‘나쁜 사람과 아픈 사람을 구분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시작점’이라고 강조한다. 이 제도를 통해 치료받을 기회를 얻지 못했던 사람이 건강해질 수 있다면 이는 사회 안전망을 좀 더 탄탄하게 구축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