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재즈 보컬리스트 윤희정의 친구들
안미려 한국메이크업전문가직업교류협회 회장-변연배 딜리버리 N 대표-사라 김 패션디자이너
깐부. 국어사전에는 ‘같은 편’, 나아가 ‘어떤 경우라도 모든 것을 나눌 수 있는 사이’라는 보충 설명이 달려 있습니다. 제아무리 모든 것을 갖춘 인생도 건전한 교감을 나누는 평생의 벗이 없다면 잘 살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미국 하버드 의대 로버트 월딩어 교수는 동아일보 신년 인터뷰에서 “행복을 결정하는 결정적 요인은 부도, 명예도, 학벌도 아닌 사람들과 따뜻하게 의지할 수 있는 관계”라고 했습니다. 좋은 인간관계는 건강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고 합니다. 깐부들 사이에 피어나는 ‘같이의 가치’를 소개합니다.
“나쁘게 말하면 오지랖인데 저는 사람들을 대할 때 보자기를 잘 안 싸요. 어떻게든 보자기를 풀어서 뭔가 해줘야 직성이 풀려요.”
국내 최정상 재즈 아티스트 윤희정(70)은 보기만 해도 즐거움을 준다. 어색함을 무너뜨리는 ‘사이다 멘트’와 폭풍 칭찬으로 사람들에게 먼저 다가간다. 그러면서도 잡히는 대로 뭔가를 준다. 자발적 ‘흥부자’인데 퍼줘야 본인 속이 후련하고 안심이 되는 스타일이다.
‘재즈 대모’로 불리는 거장이지만 거리감이 없다. 길거리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즉석 노래 요청에 무반주 생라이브로 재즈 한 소절을 기가 막히게 뽑아주는 뮤지션이다. 그야말로 남을 위한 ‘정리의 달인’이다. 몸에 뱄다. 사람 정리, 관리는 도가 텄다. 많이 도와줘야 할 사람, 더 많이 도움이 필요한 사람, 아예 24시간 챙겨야 할 사람이 딱 구분돼 있다. 밥상, 식탁 정리도 예술이다. 음식을 즐기는 그는 남들이 준비해준 음식을 매우 소중히 여긴다. 박수를 치며 온 감각을 동원해 맛있게 먹고 표현한다. 남은 음식도 끝까지 관찰해 포장하든, 어떻게든 정리한다.
● 늘 보자기 푸는 여장부… ‘우리들의 빅마마’
음식도 그가 보자기에서 푸는 정이다. 최근 기자와 인터뷰를 하는 자리에서도 손수 집에서 깎아온 참외를 기자의 입에 무작정 밀어넣는다. 크기가 예사롭지 않다. 참외 반쪽이 씨와 함께 훅 들어온다. 5분 후 하나가 더 들어오고 또 곧바로 2~3개 참외가 쓰나미처럼 밀려온다. 음식의 주고받음으로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채고 그에 맞게 도우려 한다. 영락없는 우리들의 ‘빅마마’다.
재즈 정리도 듣는 입장 위주로 자신을 낮춘다. 화자정리가 아니라 청자정리다. 배려 차원에서 재주 가수인데 도대체 재즈 안에 갇히려 하지 않는다. 누가 옆에서 트로트를 불러도 박수를 치고, 발라드를 불러도 환호를 지른다. 그러면서 어떻게든 재즈와 연결지으려 하고 본인이 변화무쌍한 퓨전 재즈를 구사한다.
“이미 20년 전에 트로트를 재즈로 부른 사람이에요, 내가.”
그런 재즈를 사람들에게 늘 선물하려 한다. 그리고 실제 그렇게 했다. 25년 넘게. 박자, 리듬을 아주 쉽게(?) 무시하는 ‘음치’, ‘박치’들이 윤희정 재즈 무대에 올라 능력자가 됐다. 그들 삶의 방향을 바꿔놓았다. 노래를 시키면 숨을 곳부터 찾았던 사람들이 윤희정의 재즈 선물을 받고 어디서도 마이크를 놓지 않는다.
사람과 관계를 맺는 방식이 재즈관과 비슷하다. ‘사람=재즈’라고 봐도 무방하다. 사람의 다양성이 그의 재즈 세계로 들어가면 예상치 못한 스펙트럼을 낸다. 재즈를 부르는 실력은 어설퍼도 눈물나게 감동적인 게 나온다.
윤희정이 사람과 사람을 엮는 재즈를 시작한 건 1997년 무렵이다. 당시 정동극장으로부터 1년 공연을 제안받았는데 두려움을 오기로 바꿔 새로운 트렌드의 재즈 공연을 시작했다.
“200곡 정도 재즈를 연습하고 있는데 제안을 받고 무서워서 도망을 갔어요. 그때 스승이신 이판근 선생님(한국 재즈 연구의 선구자로 불림)이 ‘너 호랑이를 그려야 되는데 고양이부터 그렸니’라고 야단을 치셨는데 뭐에 머리를 크게 맞은 것 같더라고요. 정신이 번쩍 드는 거예요. 그래서 한 달 만에 돌아가서 공연을 하겠다고 말하고 이 선생님 앞에서 재즈 연습을 한 뒤 숙제 검사를 받았죠. 다달이. 그때가 저의 전성기가 아닌가 싶어요. 그런데 관객석 500석을 어떻게 채울지가 또 고민이었죠.”
-어떻게 하셨어요? “촉이 살아있었는지 ‘I’m a Jazz singer’라는 말이 떠오르는 거야. 재즈를 모르는 유명인, 연예인과 각계 각층 일반인들을 가르쳐서 무대에 함께 올라가기로 한 거죠. 그게 ‘윤희정 & 프랜즈’의 시작입니다. 1회가 남경주였고 박상원, 이은미, 신애라, 송일국, 이하늬, 옥주현 등 스타들이 법조인, 정치인, 일반인들과 함께 연이어 재즈 무대에 나섰죠. 두고두고 제가 제일 잘한 일이죠. 여기에 나온 분들, 그리고 그때의 히스토리가 저의 재산이 됐어요. 천하의 김건모도 부들부들 떨면서 공연을 했다니깐요. 하하.”
재즈 불모지에서 그 어렵다던 재즈의 대중화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윤희정 & 프랜즈’는 회당 2차례 매진 공연을 하면서 2011년 100회째 공연을 끝으로 마무리했다. 윤희정은 100회 공연을 통해 250명과 인연을 맺었다. 이 중 50명을 추려 에세이집을 냈다.
책 제목은 ‘이 노래 아세요?’ 였다. 제목까지 보는 사람을 배려했다.
● ‘온리 원’ 재즈 불러준 내 친구 안미려
1년을 쉬고 2013년부터 재즈 힐링을 테마로 ‘윤희정의 재즈 프렌즈 파티’를 시작했다. 1기를 시작으로 현재 14기가 맹연습 중이다. ‘윤희정 & 프렌즈’는 교육적 차원의 퍼포먼스가 강했다면 프렌즈 파티는 재즈를 가르치면서 윤희정 본인도 사람들과 얘기를 하며 그들의 인생 모토를 배우고 싶다는 마음에서 작용-반작용 교감이 오가는 장으로 시작했다. 윤희정과 14기 6명이 함께 만들어내는 공연은 내달 9일 용산아트홀에서 열린다.
프렌즈 파티를 통해 윤희정은 ‘평생 윤희정을 떠나지 않으려는’ 친구들을 만났다. 그는 3명을 주저 없이 평생 깐부로 꼽는다. 윤희정은 “내 재즈를 더 풍부하게, 풍성하게 해 준 은인”이라고 말했다.
메이크업 아티스트인 안미려 (사)한국메이크업전문가직업교류협회 회장(예술학 박사)은 윤희정의 평생 ‘눈물받이’다. 우람한 풍체의 당당한 여장부 윤희정이 남들 눈치 안 보고 편하게 속 깊은 감정을 털어내고 마음을 정화하고 싶을 때 늘 옆에 있는 사람이다. 동갑내기다. 20여년 전 패션계 셀럽들이 모이는 자리에서 조금씩 안면을 트다 서로 ‘원 픽(One Pick)’ 이 됐다.
“그냥 워너비(갖고 싶은 것)에요, 안 회장은. 힘들 때마다 만나고, 둘이 교회를 가면 그렇게 똑같이 울어요. 말이 필요 없지.” (윤희정)
“저는 수줍음도 많고, 규격화된 사람이에요. 게다가 윤 선생님은 제가 없는 것들을 너무 많이 갖고 계신데 왠지 삶의 궤적이 비슷할 것 같은 느낌을 처음부터 받았어요. 아들 하나 딸 하나 있는 것도 그렇고….”(안미려)
설명이 부족했는지 윤희정은 “밤 12시에 매일 전화하는 사이다. 좋은 얘기하고 울고, 또 자연요리를 하는 김호순 선생을 찾아가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을 서로가 최고의 낙이라고 여긴다. 이렇게 피곤이 쌓일 정도로 만날 수 있나 싶다(웃음). 항상 겸손해지고 내려놓고 살자고 말해주는 유일한 사이”라고 했다.
당연히 안 회장도 윤희정의 재즈 세계로 들어왔다. ‘윤희정의 재즈 프렌즈 파티’ 2기 멤버로 무대에 섰다.
“재즈 연습을 할 때는 ‘내가 야단을 이렇게 맞으면서까지 해야 되나’는 생각도 했어요. 덜덜 떨고 노래 부른 기억밖에 안 나요. 가사를 안 잊어버린 것만으로도 감사한데 지금 돌이켜보면 내가 재즈를 불렀다는 게 너무 신기하죠. 그 후로 인생이 달라졌어요. 기회가 되면 한 번 더 하고 싶어요.”
윤희정은 안미려 친구를 재즈 무대에 올리고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오묘한 감정을 느꼈다고 했다. 가르치면서 배운다는 게 이런 것이구나 무릎을 쳤다고.
“1935년에 나온 ‘ I’m in the mood for love’라는 노래를 딱 정해주고 하라고 시켰어요. 지금 이 순간 사랑하고 싶다, 이런 노래거든. 어려워해서 그냥 패티김 노래라 생각하라고 했죠. 무대에서 발라드 풍으로 부르는데 안 회장 본인의 인생이 녹아 나오더라고. 내가 선물한 드레스도 너무 잘 어울리고. 내가 아는 안 회장은 머리끈 딱 묶고 죽자살자 살아온 사람이거든요. 무대에서 그 모습이 겹치는데 눈물이 나더라고. 인생 그림이 나와서 정말 기뻤어요. 잘 부르고 못 부르고를 떠나 그 사람의 캐릭터를 발견하게 되더라고요.”
윤희정은 과거 재즈의 지향점에 대해 고민이 많았다. 대중성을 추구하느냐, 재즈 본연을 유지하느냐 사이의 기로에 많이 섰었다.
“재즈 원곡을 살리다보니 대중이 나를 싫어하고, 대중적인 재즈를 하니 재즈가 울더라고요. 음악은 두 가지라고 봐요. 듣기 좋거나 싫은 것. 나는 듣기 좋은 음악을 지향하겠다고 결심했죠. 물론 바탕은 재즈지만. 어렵게 불러서 청중들의 약을 올리는 건 아니다 싶었어요. 그리고 2010년 정도 되니까 스승님이 ‘동백아가씨든 뭐든 아무렇게나 해라. 다 재즈다’라고 하시는거에요. 재즈는 ‘넘버 원’이 아니라 ‘온리 원(only one)’이었던 거죠. 이것을 다시 안 회장이 일깨워줬어요. 안 회장이 내 인생 안에 미리 존재하고 있었던 플랜이 아니었을까요?”
윤희정의 재즈를 재즈 입문자인 안 회장이 풍성하게 만들어준 셈이다.
“재즈는 사랑과 연민(불쌍하게 가련하게 여김), 분노 등의 감정에서 깨닫는 건데 ‘나도 조금밖에 몰랐구나’는 생각이 들게 한 안 회장의 무대가 잊혀지지 않아요.”
오랜 친구는 아닌데 특별한 친구를 만났다. 변연배 딜리버리 N 대표다. 변 대표는 국내 HR(인적 자원 관리) 분야의 최고 전문가다. IBM, 나이키, 모토로라, DHL 등 굴지의 글로벌 기업에서 HR 임원을 지냈고, 쿠팡과 우아한 형제들(배달의 민족) 부사장을 지냈다. 최근 글로벌 다국적 기업과 일류 기업의 HR 성공 사례를 분석한 ‘The HR’을 펴내 업계에서 화제가 됐다.
변 대표는 자타공인 와인 전문가이기도 하다. 미국 체류 때 와인을 자주 접한 경험을 바탕으로 현재 뉴스통신사에서 와인 컬럼니스트로 ‘이야기가 있는 와인’ 칼럼을 4년째 연재하고 있다. 코로나 19가 확신되기 직전인 2018년 초까지 13년간 와인바도 운영했다. 마라톤 42.195km를 38회 뛰고(최고 기록 3시간 18분 14초), 헬스 잡지에 표지 모델로 나온 운동 마니아이기도 하다.
2년 전 두 사람은 우연한 자리에서 만나 재즈와 와인을 서로의 인생에 집어 넣었다. 술을 못하는 윤희정은 변 대표의 제안으로 와인을 조금씩 즐기게 됐다.
“나는 술이 안 맞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변 대표의 와인 스토리를 들으며 와인을 마시니 맞더라고요. 변 대표 때문에 내 버킷리스트에 ‘와인 앤 재즈 콘서트’가 추가 됐어요.”
변 대표도 바로 재즈 제자가 됐다. ‘윤희정의 재즈 프렌즈 파티’ 13기로 지난해 6월 스승과 함께 재즈 공연 무대에 섰다. 변 대표는 “선생님께 재즈를 배우면서 사람과 일에 대한 경건한 태도를 배우게 됐다. 프로페셔널한 것을 요구하면서도 저의 감성과 가치관에 맞게 노력이 드러나도록 해주셨다. 재즈를 배우면서 ‘재즈는 골프처럼 안 되는구나’하고 좌절감을 느꼈지만 저만의 히스토리를 새로 쓴 것에 무척 만족한다”고 말했다.
변 대표는 무대에서 나훈아의 ‘영영’을 재즈풍으로 편곡해 불렀다.
“선생님께 애창곡이 ‘영영’이라고 했는데 ‘그거 해요’라며 바로 오케이를 하셨어요. 프렌즈 무대에 선 분들은 예외 없이 자기 전문 분야에서 성공을 거뒀더라고요. 도전하는 사람들은 자기 분야에서도 성취도가 높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됐습니다. 물리학의 결정론에서 만날 사람은 만나고,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고 하잖아요. 윤희정 선생님과 재즈와의 만남이 바로 그겁니다.”
● 재즈는 공공재, 이것의 의미를 알려준 사라 김 선생님
“여운이 남는 사람이라고 할까요. 나를 꼼짝 못 하게 만드는 힘이 있는 분이에요. 생각도 같고요.”
윤희정이 꼽는 마지막 인생 깐부는 국내 1세대 패션디자이너인 사라 김(김정숙) 카포레 대표다. 26년 전 처음 인연을 맺은 김 디자이너는 존경의 대상과 동시에 든든한 자신의 후원자다.
김 디자이너는 경기도 양평에 복합문화공간 ‘카포레’를 세워 운영하고 있다. 패션 갤러리이면서 대중들과 문화와 예술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 이미 양평의 명소로 자리 잡았다. 김 디자이너는 “디자이너로 40여년 일한 시간을 하나의 아카이브에 담는다는 의미로 갤러리, 콘서트장, 가페, 게스트하우스 등을 건축가와 함께 설계해 구현했다”고 말했다. 이달 26일 윤희정은 ‘카포레, 재즈 데이트’ 공연을 한다. 이날 공연에는 윤희정의 딸인 가수, 보컬트레이너 쏘머즈(김수연)도 무대에 선다.
2003년 버블시스터즈로 데뷔한 쏘머즈는 발라드, 재즈, 힙합, 랩 등에서부터 작곡까지 두루 재능있는 전천 후 크로스오버 뮤지션이다. 어려서부터 엄마로부터 물려 받은 음악적 재능이 엿보였는데, 윤희정은 처음부터 노래 부를 기회를 주지 않고 코러스만 2년을 시키면서 롱런의 기반을 만들어줬다. 대중들과 소통할 수 있는 유니크한 음악 세계를 꿈꾸고 있어 다양한 재즈 대중화 실험을 하고 있는 엄마와도 선의의 경쟁을 벌이는 중이다.
윤희정은 김 디자이너의 추진력에서 동기 부여를 많이 받는다고 했다. 윤희정은 “한다면 한다는 분이다. 사적으로 실수가 없고 언행일치를 하는 분”이라고 했다. ‘카포레’를 사적인 용도의 공간으로 만들지 않은 의도와 실천을 특히 존경스러워한다. 김 디자이너는 “ ‘유사 퍼플릭’의 공간이다. 새로운 공간을 사람들과 공유하는 건 옷을 업으로 살아온 사람으로 멋진 마침표를 찍는 일”이라고 했다.
윤희정에게 재즈는 나만의 것이 아니다. 김 디자이너를 통해 재즈의 광범위한 확장에 대한 신념이 더 강해진다.
“사람들에게 재즈를 가르칠 때 그 사람의 ‘탑 보이스’에 맞춰 노래를 재구성해줘요. 자기 톤에 맞춰 부르면 그게 기가 막힌 재즈예요. 고로 ‘너의 것을 찾는 거야’가 재즈입니다.”
그러다 보니 새로운 윤희정도 찾았다. 사람들의 재즈를 찾아주다가 본인의 재즈를 계속 발견 중이다.
“내가 일반 재즈 가수였다면 매력이 있었을까요. 모든 장르의 음악을 ‘어게인 앤 어게인(다시 또다시)’ 하면서 사람들에게 ‘듣고 또 들어봐라’ 라고 하며 다가섰기 때문에 저를 좋아해 주시지 않나 싶어요.”
깐부들의 존재로 가르치면서 배우는 삶이 즐거워졌다. “재즈는 내 인생 최고의 선택”이라는 말이 예전보다 더 잘 나온다고 했다. 삶의 허무가 느껴져 가장 좋아하게 됐다는 재즈곡 ‘I’m a fool to want you(당신을 원하는 나는 바보입니다)’ 대신 ‘Over the rainbow’가 요즘 윤희정에게 최애곡으로 비집고 들어왔다고 한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