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과 맞닿은 야생화 탐방길, 천상의화원 곰배령[전승훈의 아트로드]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5월 20일 14시 00분


설악산 남쪽 점봉산(1424m)에 있는 곰배령은 봄, 여름, 가을까지 수많은 야생화가 피고 지는 ‘천상의 화원’이다.  곰이 배를 하늘을 향하고 누워 있는 모양의 곰배령은 사전 예약을 통해  방문할 수 있다.
설악산 남쪽 점봉산(1424m)에 있는 곰배령은 봄, 여름, 가을까지 수많은 야생화가 피고 지는 ‘천상의 화원’이다. 곰이 배를 하늘을 향하고 누워 있는 모양의 곰배령은 사전 예약을 통해 방문할 수 있다.
‘바람마저 길을 잃으면 하늘에 닿는다/점봉산 마루 산새들도 쉬어가는 곳…하늘고개 곰배령아~.’(곰배령)

강원 인제군 설악산의 오월은 생명력 넘치는 푸른 신록의 잔치다. 곰배령과 백담사 계곡에는 도시에서는 벌써 진 야생화와 철쭉이 아직도 그대로 피어 있어 가장 늦게까지 봄을 즐길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곰배령 정상부에 홀아비바람꽃과 피나물이 별처럼 가득하다.
곰배령 정상부에 홀아비바람꽃과 피나물이 별처럼 가득하다.


● 하얀 별처럼 흐드러지게 핀 바람꽃

2011년 12월 종합편성채널 채널A가 개국하면서 가장 처음으로 만든 드라마는 ‘천상의 화원 곰배령’이었다. 아버지(최불암)와 딸(유호정)을 중심으로 서울과 곰배령을 오가며 펼쳐지는 사랑과 갈등, 오해, 미움, 화해로 이어지는 사람 냄새 물씬 풍기는 착한 드라마였다. 만일 시즌제로 계속 방영됐다면 ‘전원일기’나 ‘대추나무 사랑 걸렸네’와 같이 농촌이나 전원생활의 향수를 담은 드라마로 장수했을지도 모른다.


드라마는 종영됐지만 배경이 됐던 곰배령의 인기는 해마다 더해 가고 있다. 설악산 남쪽 점봉산(1424m)에 있는 곰배령은 봄, 여름, 가을까지 수많은 야생화가 피고 지는 ‘천상의 화원’이다. 점봉산은 한반도 전체 식물 종의 5분의 1에 이르는 854종이 자생할 정도로 생물다양성이 높아 설악산국립공원(1970년),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1982년), 산립유전자원보호구역(1987년)에다 백두대간보호지역(2005년)까지 겹쳐 철통처럼 보호된다. 그래서 점봉산은 1987년부터 현재까지 입산 금지구역인데, 이 산 남쪽 자락을 생태 탐방 목적으로 2009년 7월부터 사전 예약을 받아 개방한 구간이 바로 곰배령(1164m)이다.


지난주 곰배령 등산로 입구에서 등록명부를 QR코드로 확인한 후 들어가니 우렁찬 계곡의 물소리가 방문객을 맞는다. 최근에 내린 봄비로 계곡에 가득한 물소리가 시원하다. 왕복 10km 정도의 곰배령은 계곡 주변의 숲길을 따라 넓고 평탄하게 걸어가는 길이라 남녀노소 모두 쉽게 트레킹할 수 있다.

국립공원공단 설악산생태탐사원 이호 운영관리부장

곰배령은 야생화 관찰의 명소이기 때문에 전문가용 DSLR 카메라에 접사렌즈까지 장착한 탐방객이 많다. 키 작은 야생화를 찍기 위해 모두 땅바닥에 주저앉아 휴대전화를 들이댄다. 야생화 탐방 경험이 많은 사람들은 희귀식물을 만날 때마다 감탄하며 반갑게 소리친다. 이들은 꽃 이름을 서로 묻고, 가르쳐주며 자연을 즐긴다.

벌깨덩굴
미나리아재비(버터컵)
미나리아재비(버터컵)
얼레지
산괴불주머니
산괴불주머니
붉은병꽃
쥐오줌풀
이날 함께 산행을 한 국립공원공단 설악산생태탐방원 이호 운영관리부장은 “곰배령이 야생화의 명소가 된 이유는 계곡 골짜기마다 작은 물골 수백, 수천 개가 흐르며 연결돼 있는 풍부한 수량 덕분”이라고 말했다. 물가와 습지에서 잘 자라는 야생화가 어떤 곳보다도 다양한 종을 이루게 됐다는 설명이다. 또한 무분별하게 희귀식물을 채취하는 사람의 접근을 제한하는 것도 생물종 다양성을 보존하는 데 큰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홀아비바람꽃
홀아비바람꽃
5월 현재 곰배령에 가장 무성하게 피어 있는 주인공은 ‘홀아비바람꽃’. 한 개체에서 하나의 꽃대만 올라와 꽃 한송이를 피운다. 그래서 이름이 홀아비바람꽃이다. 곰배령 정상부 근처 숲속에는 별처럼 하얀 홀아비바람꽃이 보랏빛 얼레지, 푸르스름한 현호색, 노란색 피나물과 동의나물꽃, 산괴불주머니와 함께 흐드러지게 피어 장관을 이룬다.

곰배령 정상부에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홀아비바람꽃.
곰배령 정상부에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홀아비바람꽃.


● 옥빛 백담계곡에서 ‘Love Yourself’
설악산을 찾을 때는 국립공원공단 설악산생태탐방원을 이용하면 좋다. 산림청이 관리하는 숲에 휴양림이 있다면 북한산, 지리산, 설악산, 한려수도 등 전국의 산과 바다에 있는 국립공원에는 생태탐방원이 있다. 매월 초 국립공원공단 예약사이트에서는 숙소를 잡기 위한 예약 전쟁이 벌어진다.

국립공원공단 설악산생태탐방원
국립공원공단 설악산생태탐방원
국립공원 생태탐방원을 예약하면 자연 속에서 펼쳐지는 다양한 힐링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다. 설악산의 경우 곰배령 야생화 탐방, 백담사 계곡 트레킹과 명상 치유, 노르딕 워킹 배우기, 산양 복원 프로젝트 견학, 밤하늘 별자리 관찰, 소원등 만들기 등 자연과 생태를 즐기며 힐링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많다.

눈잣나무가 새겨진 친환경 나무조각을 이용한 소원등 만들기.
눈잣나무가 새겨진 친환경 나무조각을 이용한 소원등 만들기.
특히 저녁 식사를 마치고 칠흑 같은 어둠이 내린 설악산 밤하늘의 별을 바라본 경험은 잊을 수 없다. 설악산의 깃대종(특정 지역을 상징하는 보호가 필요한 야생 동식물)인 눈잣나무가 새겨진 나무조각으로 ‘소원등’을 직접 만들고, 앞마당에 나가 해먹에 누웠다. 마당에 있는 조명을 끄니 갑자기 설악산 밤하늘의 별들이 쏟아진다.

휴대폰으로 찍은 봄밤 설악산 별 사진. (갤럭시노트23 울트라)
휴대폰으로 찍은 봄밤 설악산 별 사진. (갤럭시노트23 울트라)
가장 먼저 머리 바로 위에 있는 국자 모양의 북두칠성이 또렷하다. 북극성과 샛별(금성)뿐만 아니라 국자 손잡이를 그대로 이어간 곳에 있는 밝은 별로 ‘봄의 대삼각형’ 별자리를 찾다 보면 밤이 깊어져 간다. 생태해설사가 이적, 아이유, BTS 등 인기 가수들이 부른 우주와 별에 관한 최신 가요를 배경으로 낭독해주는 명상의 글은 청소년과 젊은이들에게도 인기 있다.

백담사 수렴동 계곡길에서 체험하는 노르딕 워킹.
백담사 수렴동 계곡길에서 체험하는 노르딕 워킹.
이곳에서는 구조 작업 중 힘든 일을 겪은 소방관들의 마음 치유를 위한 단체 프로그램도 진행해 오고 있다. 그중 하나는 인제 백담사 계곡에서 펼쳐지는 치유 프로그램이다. 에메랄드빛 물이 흐르는 계곡길에서 노르딕 워킹을 배우기도 하고, 백담사 템플스테이를 운영하고 있는 광일 스님과 함께 명상과 차담을 해보기도 한다.

5월의 신록이 상큼한 향기를 내뿜고 있는 백담사에서 수렴동 계곡으로 올라가는 길을 광일 스님과 함께 걸었다. 산책로에서 살짝 벗어나 계곡으로 내려가니 조용한 모래톱이 나온다. 이곳의 바위에 앉아 물소리와 새소리, 바람 소리를 들으며 명상을 한다. 코로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며 온몸을 자연에 맡긴다. 명상이 끝난 후 광일 스님은 한 명씩 일으켜 세워 맞은편 봉우리를 향해 자기 이름을 부르며 ‘○○야 사랑해!’라고 외쳐 보라고 했다.

배에 힘을 주고 내 이름을 외치니, 저 멀리 봉우리에 부딪친 메아리가 다시 ‘승훈아, 사랑해!’라는 말을 되돌려 준다. 누군가에게 ‘사랑해’라는 소리를 들어본 지가 얼마나 됐던가. 비록 내가 혼자 스스로 소리를 지르고, 메아리가 나에게 해준 말이었지만 ‘사랑해’란 말에 감동하고 말았다. BTS의 ‘Love yourself’처럼 스스로를 사랑하고 위로해주는 것. 참 고마운 메아리다.

광일 스님은 “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비관적이고, 소극적이고, 의욕이 없고, 아프기 때문에 남도 사랑할 수 없다”며 “남을 사랑하기 위해서라도, 먼저 나를 사랑해야 한다”고 말했다.

백담사 계곡
백담사 계곡
●가볼 만한 곳=인제와 양양을 잇는 국도 44호선을 넘어가는 고개 정상에 있는 ‘한계령 휴게소’는 드라이브 하다가 꼭 한 번 들를 만한 곳이다. 뾰족한 기암괴석이 이어지는 설악산 칠형제봉이 한눈에 들어오는 유리창의 뷰를 즐기며 먹는 황태해장국이 별미다. 또 16가지 한약재를 달여 만드는 약차는 한계령휴게소에서만 마실 수 있는 명물.

건축가 김수근이 설계한 한계령휴게소.

이 휴게소는 ‘올림픽 주경기장’ ‘공간사옥’ ‘남산 타워호텔’을 설계한 한국 현대 건축 1세대 건축가 김수근(1931~1986)이 1981년에 지은 건축물이다. 설악산의 능선을 따라 그대로 이어진 지붕선이 자연의 풍경에 그대로 녹아들고, 철골조의 구조체에 목재로 마감해 폭설과 강풍, 추위에 견딜 수 있도록 했다. 내부에서는 단차를 이용해 카페와 식당, 기념품숍으로 이어지는 공간을 구획하고, 외부의 넓은 테라스는 한계령의 장엄한 풍경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가 된다.

한계령휴게소 테라스에서 바라본 설악산 칠형제봉 능선.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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