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택 시인(75)은 요즘 매일 전북 임실군 진메마을 어귀에 서 있는 느티나무 아래를 걷는다. 나무 아래에서 비를 피하고, 나무 그늘에 숨어 흐르는 땀을 식힌다. 나무 곁에 서면 그네 타고, 씨름하고, 낮잠 자던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 고희(古稀)를 훌쩍 넘겨 세상의 이치를 다 깨달은 것처럼 우쭐하다가도, 평생 자신을 지켜본 나무 아래에서 그는 여전히 부족한 인간이란 사실을 깨닫는다. 김 시인은 나무에게 고해성사한다.
“이제 생각하니/ 나는 작고 못났다/ 그런데다가/ 성질도 못됐다/ 나무야/ 근데 내가 인자/ 어찌하면 좋을까”(시 ‘나무에게’에서)
김 시인이 이달 10일 14번째 시집 ‘모두가 첫날처럼’(문학동네)을 펴냈다. 그가 시집을 펴낸 건 ‘나비가 숨은 어린나무’(2021년·문학과지성사) 이후 2년 만이다. 22일 전화로 만난 그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탓에 외부 강연을 못 다녀 하루도 빠짐없이 산책했다. 2년 동안 쓴 글이 500편인데 이중 55편을 골라 신작에 담았다”고 너털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는 1948년 섬진강 변 진메마을에서 태어나 거의 평생을 살았다. 1969년부터 2008년까지 39년을 초등학교 교사로 일했는데, 이중 31년을 진메마을 덕치초에서 근무했다. 그는 시집 ‘섬진강’(1985년·창비) 산문집 ‘섬진강을 따라가 보라’(1994년·한양출판)로 알려진 ‘섬진강 시인’이지만, 젊은 시절엔 교사로 일하고 은퇴 후엔 시인으로 강연을 다니느라 섬진강과 가깝게 지내지 못하기도 했다.
“섬진강 변을 이렇게 자주 걸은 적이 어릴 적 빼고 언제 있었나 싶을 정도입니다. 코로나19가 저를 섬진강과 다시 가깝게 만든 거죠.”
신작엔 그가 섬진강에서 길어 올린 시로 가득하다. 그는 “아침 이슬을 달고 있는 산앵두꽃의/앙증맞은 저 집중은/나를 바꿀만하다/지금을”(시 ‘산앵두꽃’에서)이라고 자연에 감탄한다. 그는 또 “떨어진 꽃잎을/주우며 생각한다/누구나 다 견디지 못할/삶의 무게가 있다고”(시 ‘조금 더 간 생각’에서)라며 삶을 돌아본다.
“자연은 정체되지 않아요. 꽃은 피고 지고, 바람은 불다가도 멈추고, 새는 나무에 앉아있다가도 곧 날아가죠. 시집 제목을 ‘모두가 첫날처럼’이라 지은 것도 독자가 자연처럼 모든 걸 새롭게 받아들이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기 때문입니다. 세상 모든 일을 첫날처럼 생각하면 삶이 지루하지 않거든요.”
그는 나비를 바라보며 시인의 삶도 성찰한다. 그는 “나비는 날개를 펼 때/ 권력을 이용하지 않는다”(시 ‘시인’ 에서)라고 생각한다. 그는 또 “나비는 시에서 태어났다/ 말로 날개를 단 것들의 괴로움을 알고 있는 그 나비는/ 다시는 시에 앉지 않는다”(시 ‘다시는, 다시는’에서)라고 고백한다.
“나비는 바람(권력)을 타고 날기보단 스스로 바람을 만들며 살아가는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나비를 보며 시를 쓰지만, 나비는 제가 쓴 시(말)와 상관없이 날아다니기도 하고요.”
그는 낮엔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옛집을 개조한 진메마을 ‘임실 김용택 시인 문학관’에 머물며 글을 쓰고, 밤엔 문학관 뒤편 자택에서 잔다. 고향을 떠날 계획이 없냐고 묻자 이렇게 답했다.
“40년 가까이 학교 선생으로 살았어요. 그런데 지나고 보니 섬진강이 저의 선생이더라고요. 전 죽을 때까지 고향에서 글 쓰며 늙어가고 싶습니다. 그게 제 꿈이에요.”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