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소재 韓유물 연구 박남수 연구원
“日학계 명칭 무조건 따르지 말고
역사성 드러나게 새 이름 붙여야”
“유물의 명칭은 유물의 역사를 이해하는 첩경입니다. 일본 학계가 명명한 것을 무비판적으로 따를 게 아니라 연구를 통해 알맞는 새 이름을 붙여야 합니다.”
일본 소재 한국의 고대 유물 7건을 분석한 ‘일본 소재 한국 고대 문자자료’(주류성)를 최근 출간한 박남수 동국대 동국역사문화연구소 전임연구원(66·사진)은 22일 전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박 연구원은 “일본 소재 한국 고대 유물에 대한 연구를 일본 학자들이 주도했고, 한국 학계는 수동적인 입장만 취해 왔다는 자성에서 출발한 책”이라고 했다.
박 연구원은 책에서 일본 학계가 명명한 유물의 이름을 한국 고대사에 비춰 새롭게 명명했다. 일본 쇼소인(正倉院)에 소장돼 있는 ‘좌파리가반(佐波理加盤) 부속문서’를 ‘신라 내성(內省) 문서’로 바꿔 부르는 식이다. 이 문서는 1930년대 쇼소인 남쪽 창고에서 유기그릇의 일종인 좌파리가반을 정리하던 중 포개진 사발 사이에서 꼬깃꼬깃 접힌 채로 발견됐다. 학계에서는 8세기 전반 신라에서 수공업을 담당하는 관청인 공장부 등에서 만들어진 사발이 일본에 수출되면서, 사발을 보호하기 위해 이 문서로 감싼 것으로 보고 있다. 이 문서에 공물(貢物)과 관리 급여인 녹봉(祿俸)에 대한 내용이 기록돼 있어 신라 궁궐의 사무를 총괄하던 내성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박 연구원은 “일본과 국내 학계 모두 이 문서가 신라에서 만들어져 일본으로 건너갔다는 사실을 인정하지만, 일본 학계가 정한 명칭에는 이 문서가 어디서 왔는지 전혀 드러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 문서에 8세기 무렵 고대 한일 양국의 문화교류사가 담겨 있는 만큼, 신라 내성에서 만들어져 일본까지 건너왔다는 사실이 문서의 명칭에 담겨야 이 사료의 역사성이 자세히 드러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그는 또 일본 국보 ‘스다하치만신사 인물화상경(人物畵像鏡)’은 ‘백제 동성왕 인물화상경’이라고 불러야 한다고 했다. 박 연구원은 이 청동 거울의 제작 시기를 491년으로 보면서 “5세기 후반 일본에서 기거하다 귀국한 백제 왕은 동성왕이 유일하다는 점으로 미뤄 명문 속 ‘대왕(大王)’은 곧 동성왕을 가리킨다”며 “491년 백제 동성왕이 전쟁과 수재를 겪고 난 뒤 제례용으로 제작한 거울일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박 연구원은 “일본 학자들이 정한 명칭에서는 우리 역사와 관련된 티끌만 한 실마리도 찾을 수 없다”며 “이번 책은 유물의 역사를 제대로 들여다보려는 시도”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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