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용엔 ‘발레 블랑’(하얀 발레)으로 불리는 작품들이 있다. 무용수들이 흰옷을 입고 통일성 있는 군무를 펼치는 작품들이다. 백조들의 군무가 펼쳐지는 ‘백조의 호수’, 망령들의 군무가 펼쳐지는 ‘라 바야데르’, 처녀 귀신들이 시시각각 대열을 바꾸며 군무를 추는 ‘지젤’이 대표적이다.
그런데 ‘하얀 발레’에 출연할 때마다 분가루를 뒤집어쓴 발레리나가 있다. 흑인인 그는 “피부색 때문에 하얀 발레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 매번 흰 파운데이션을 얼굴과 팔에 덕지덕지 발랐다. 군무가 펼쳐지는 2막을 부르는 ‘하얀 막’에서 배제된 적도 있지만 이를 악물고 버텼다. 그리고 마침내 ‘백조의 호수’ 흑인 주연을 따냈다. 세계적 발레단인 미국 아메리칸발레시어터(ABT)에서 발레단 설립 75년 만인 2015년 처음으로 흑인 수석 무용수가 된 미스티 코플랜드(40)다.
그가 쓴 에세이에는 어린 시절부터 수석 무용수에 오르기까지의 삶이 담겼다. 처음 그가 발레를 시작한 건 13세 때다. 학교 댄스 동아리에서 취미로 춤을 추던 그는 발레 선생님으로부터 “완벽한 체격 조건을 타고났다. 발레를 배워 보라”는 제안을 받는다. 그는 당황했다. 발레를 본 적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도 없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그는 토슈즈(발레 신발)를 살 돈이 없을 정도로 가난했다. 레오타드(발레복)가 없다는 그의 말에 선생님은 이렇게 말했다. “걱정하지 마. 그냥 체육복 입어도 돼. 난 소외 계층 아이들에게 발레를 가르쳐주고 있단다.”
보통 발레리나는 유치원 무렵부터 발레를 배운다. 코플랜드는 뒤늦게 발레를 시작했지만 타고난 재능 덕에 빠르게 성장했다. 첫 수업 때 기본 동작을 대부분 습득했다. 보통 신입은 1년이 걸리는 ‘앙 뿌엥뜨’(토슈즈를 신고 발끝으로 서는 동작)를 8주 만에 성공했다. 15세에 처음 참가한 발레 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으며 그는 신동으로 떠올랐다. 18세 땐 ABT가 훈련 비용을 전액 지원하는 장학생으로 선발됐다.
그렇다고 저자의 삶이 마냥 승승장구했던 건 아니다. 어린 시절 그는 4번의 결혼과 4번의 이혼을 한 홀어머니 아래에서 자랐다. 넉넉지 않은 가정 형편 탓에 무료 급식소에서 밥을 먹었고, 모텔방을 전전하며 지냈다. 청소년기에 들어서선 흑인 특유의 굴곡진 몸 때문에 “발레에 어울리지 않는 체형”이란 비난을 받았다. 허리 부상으로 1년간 발레를 못 했고, 백인이 가득한 발레계에서 흑인이란 이유로 ‘보이지 않는 차별’을 당했다.
그는 그럴 때마다 흑인으로서 처음 대형 발레단에서 활동했으나 백인우월주의 단체 큐클럭스클랜(KKK)을 피해 해외로 이주했던 레이븐 윌킨슨(1935~2018)을 생각하며 버텼다. 완벽한 발레 동작은 없다고 믿으며 연습 시간을 끝없이 늘렸다. 무대에선 오로지 발끝으로 서고, 쏜살같이 움직이며, 허공을 가르며 높이 뛰어오르는 것에만 집중했다. 2015년 미국 타임지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이 됐지만, 그는 요즘도 토슈즈를 고쳐 신으며 이렇게 다짐한다고 한다.
“마침내 빛나는 순간이 왔다. 나를 증명할 순간, 가장 높은 위치에 오른 흑인 발레리나를 대표할 순간이. 이것은 갈색 피부의 작은 소녀들을 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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