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를 통해 세상을 보려 합니다. 1965년 비틀즈 싱글 곡 ‘데이트리퍼(Day tripper)’는 “당일치기 여행자”를 일컫습니다. 만화를 본다는 건 잠깐 일상을 벗어나는 여행이니까요. 브라질 그래픽노블 ‘데이트리퍼’도 영감을 줬습니다. 이 만화엔 삶을 담는 소설가를 평생 꿈꾸지만, 실상은 죽음을 알리는 부고(訃告) 담당기자가 나옵니다. 현실과 이상의 괴리. 우리네 인생과 무척 닮지 않았나요.
줄거리는 예상 가능. 설정도 마무리도 뻔뻔할 정도로 뻔하다. 근데 왜 상큼한 박하사탕마냥 입안에 착 감길까.
유니버설 픽쳐스와 닌텐도가 선보인 애니메이션 영화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가 함박웃음을 짓고 있다. 4월 26일 국내 개봉해 누적 관객 수가 약 232만 명(2일 기준)으로 준수한 편. 해외 성적은 훨씬 흐뭇하다. 전 세계에서 지금까지 12억8800만 달러(약 1조6820억 원)를 거둬들였다. 미국 뉴욕에 사는 배관공 형제가 왕가의 공주 자매(겨울왕국 1편 12억8400만 달러)보다 돈을 더 벌다니. 역시 자본주의는 위대하다.
드디어 브루클린의 이탈리아계 이민자 가정이라는 게 확실히 밝혀진 마리오와 루이지(이전까진 이런 배경이 다소 애매하게 넘어갔다). 그간의 경력을 발판 삼아 나름 창업에 나섰지만 그다지 여건이 만만치 않은 상황. 허나 마법인지 게임인지 다른 세계로 뜬금없이 넘어가며 마리오 형제의 근사한 모험이 펼쳐진다. 기대대로 그곳엔, 피치 공주와 쿠파와 동키콩이 있다.
영화 ‘슈퍼마리오…’는 정말이지 기존 게임에서 한 치의 벗어남도 없는 작품이다. 이야기 흐름은 둘째 치고, 캐릭터들의 성격도 전혀 변주가 없다. (심지어 피치 공주는 표정도 잘 안 바뀐다.) 그나마 다양한 면모를 보여주는 거의 유일한 인물은 쿠파뿐. 근데 그 역시 ‘괴물이니 이래도 돼’ 식으로 마구 왔다 갔다 한다. 사정이 이러니 작품은 복합적인 플롯은커녕 얄팍한 구성 장치도 변변치 않다. 그냥 일직선으로 뻥 뚫린 고속도로를 쌩하고 달려간다.
한데 이런 경주마식 전개야말로 ‘슈퍼 마리오…’가 가진 최고의 강점으로 작용한다. 생각해보면 당연하지 않나. 신장 155cm의 멜빵바지 입은 콧수염 아저씨(닌텐도는 20대 중반이라 우기지만)가 갑자기 트렌치코트를 걸치고 하드보일드 탐정이 될 순 없는 노릇 아닌가. 마리오에 대한 관객의 기대는 단순하고 명쾌하다. 무지개다리 위에서 바나나 던져가며 카트 타고 신나게 달려주길 바란다. 맥락이고 뭐고 상관없이.
(※마리오의 트레이드마크인 차림새는 1981년 데뷔 때 그래픽 성능의 한계 때문으로 전해진다. 입 그리기 어려워 수염을 달았고, 머리카락 표현이 힘들어 모자를 씌웠다. 빨강 파랑 상하의는 팔다리 구별이 잘 되도록. 당시엔 그의 이름이 ‘점프맨’이었다.)
유니버설과 닌텐도에겐 축제와 같은 마리오의 이번 선전에 내심 복통을 호소하는 곳도 있다고 한다. 픽사와 마블을 거느린 애니메이션의 절대강자 디즈니다. 몇몇 외신은 “마리오가 디즈니의 악몽(nightmare)이 됐다”고까지 설레발쳤다. 지난해 야심작 ‘버즈 라이트이어(국내 관객 34만 명)’와 ‘스트레인지 월드’(11만 명)가 줄초상을 치른 상황이니 강력한 라이벌의 등장이 편치 않을지도. 다만 닌텐도는 은근슬쩍 “이제 슈퍼마리오는 미키 마우스와 동급”(무비픽쳐스)이라 여기고 싶은 눈치이나…, 그건 좀 더 지켜봐야겠다.
일단은 그런 입방아는, 아마도 지금쯤이면 제작이 확실해졌을 마리오 시리즈의 차기작들이 제대로 불쏘시개 역할을 해줄 터. 이번 작품에 쿠키영상을 배치한 것도(딱히 신선하진 않았지만) 선전포고의 출사표인지 모른다. 하지만 과연 2편도 3편도 이런 ‘단무지(단순 무식 지X)’ 스타일이 먹힐지는 쉽사리 가늠하기 어렵다. 처음에야 ‘테이크 온 미(Take on me·1985년 아하 곡으로 이번 영화에 삽입됐다)’ 전략이 추억팔이 효과도 짭짤하게 거뒀지만, 그게 이어지리란 보장은 없으니까. 그렇다고 갑작스레 마리오의 절절한 번뇌를 보고 싶지도 않다.
뜬금없지만, 이제 마리오는 이탈리아계 미국인을 대표하는 상징이 되고 있다. 실제로 2008년 한 조사에서 미 응답자의 93%가 “슈퍼마리오를 잘 안다”고 대답했을 정도다. 이젠 야구선수 조 디마지오나 돈 콜레오네(영화 ‘대부’ 주인공)보다 유명세가 높다. 일본에서 창조한 브루클린 배관공이 이토록 엄청난 슈퍼스타가 될 줄이야. 영화판마저 “잇츠 미, 마리오!(It‘s a me, Mario·슈퍼마리오 최고 유행어)”로 접수해버릴 기세다.
하지만 1981년생이니 마흔 살이 넘은 마리오는 이제 지금쯤이면 모자 속 머리숱이 꽤나 빠지진 않았을까. 여전히 대가족 셋방살이 신세를 못 면한 채 쉼 없이 뛰고 달리는 걸 떠올리면, 어쩌면 그 콧수염이 가린 입가엔 삶의 고단함이 숨겨진 게 아닐지 망상의 나래를 펼쳐본다. 미 배관공의 평균 연봉이 6만 달러쯤 된다니 그리 쪼들리는 삶은 아닐지라도, 왠지 뼈 빠지게 일하는데 남 좋은 일만 시킨 우리네 가장들이 떠오르는 건 왜일까. “아아,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난다. 그대, 나의 사랑아.”(조용필의 ‘그 겨울의 찻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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