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안 감독의 영화 ‘음식남녀’(1995년)에서 요리사인 주 선생은 딸들에게 먹일 저녁 메뉴로 만두를 준비한다. 조선시대 시골 선비 이응희(1579∼1651)는 며느리가 빚은 만두로 아침을 먹고 다음과 같이 읊었다.
시인이 쓴 280수에 달하는 연작시 ‘만물편(萬物篇)’ 음식류(飮食類) 중의 한 수로, 만두에 초점을 맞춘 독특한 작품이다. 시인은 만물을 총 25종으로 분류하여 읊었는데, 연작시 전편은 시로 쓴 백과사전이라 할 수 있다.(이종묵) 솜씨 좋은 며느리에 대한 칭찬으로 시작돼 만두 재료를 준비하고 빚는 과정과 먹는 방법이 상세히 묘사돼 있다.
‘예기(禮記)’에선 “음식과 남녀 간의 일에는 사람의 큰 욕구가 존재한다(飮食男女, 人之大欲存焉)”고 했다.(‘禮運’) 영화 ‘음식남녀’의 제목은 이 구절에서 온 것이다. 영화에서도 주 선생이 밀가루 반죽을 치대 피를 만들고 다양한 재료를 다져 소를 준비한 뒤 만두를 빚는 장면이 나온다. 영화 속 만두는 장성한 딸들과 거리가 생긴 주 선생처럼 외면당하거나 버려지기도 한다. 하지만 주 선생이 남몰래 마음에 둔 딸 친구와의 사랑을 암시하는 음식이기도 하다. 영화가 욕망의 측면에서 음식과 남녀 문제를 병렬시킨다면, 시는 순수한 식욕 측면에서 만두 자체에 집중했다. 시인은 며느리가 정성껏 빚은 만두의 맛을 음미하며 한 그릇 비운 뒤 포만감을 드러냈다.
시는 영화와 달리 특별한 주제 의식이나 메타포 없이 객관적인 묘사만 한다. 하지만 한시의 역사에서 만두라는 음식 자체가 제재로 선택받은 적이 드물기에, 그것 자체로 색다른 느낌을 준다. 이를 당시 생활상이나 풍속에 대한 흥미로운 기록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겠지만, 눈길을 더 끄는 건 조리된 만두를 한 사발 후딱 먹는 모습이다. 독자 역시 더는 먹지 못할 정도로 만두로 배를 채운 시인의 포만감을 함께 느낀다. 한시로 쓴 ‘먹방’이랄까.
일반적으로 음식을 만들고 먹는다는 것만으론 시적 감성을 충족시키기 어렵다. 하지만 이 시는 의도적으로 먹는 행위에 방점을 찍어 한시의 주제와 표현 방식에서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었다고 평가할 만하다. 먹는다는 것이 주는 원초적 마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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