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말리게 시끄럽고, 참을 수 없이 웃긴 철학책/스콧 허쇼비츠 지음·안진이 옮김/552쪽·2만2000원·어크로스
“내가 평생 꿈을 꾸고 있는 건 아닐까?”
만 5세 아이가 문득 이런 질문을 던진다. 언뜻 뚱딴지같은 소리로 들리지만 아이는 진지하다. 내가 보고 듣는 게 현실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 그런 첫째 아이의 마음을 읽어 아버지는 철학 대화로 이어간다. “뭔가를 안다는 건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렉스?” 부자는 그렇게 프랑스 철학자 데카르트의 ‘방법적 회의’에 대해 얘기한다. 데카르트는 모든 것을 의심해도 ‘내가 생각한다’는 것은 의심할 수 없고, 이 같은 생각을 하는 ‘내가 존재한다’는 것도 알 수 있다고 했다. 방법적 회의의 출발점인 기본 명제, 라틴어로 ‘코키토 에르고 숨(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이다.
저자는 고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미국 대법관의 법률서기로 일했고, 지금은 미시간대 법학 및 철학과 교수다. 렉스(지금은 다섯 살보다 나이가 많다)와 행크 두 아이의 아버지인 저자는 딱딱할 수 있는 철학의 주제를 아이들과의 대화를 통해 쉽게 풀어 간다. 저자 자신도 어렸을 때 어머니에게 ‘엄마가 보는 빨간색과 내가 보는 빨간색이 어떻게 같은지 알아?’라고 질문을 던졌던 터라 아이들이 무심코 건네는 질문을 놓치지 않는다. 책은 인식론 등 기존의 철학적 담론의 주제보다 권리, 복수, 처벌, 권위, 젠더, 인종 등 독자들이 일상생활에서 떠올릴 수 있는 주제로 구성됐다.
이를테면 ‘신발을 신기 싫은데 아빠가 신으라고 하면 신어야 하는지’ 같은 질문을 통해 권위는 어디에서 오는지 다룬다. 남자가 여자보다 느리게 뛰면 창피한 건지, 자신의 세대에서 저지르지 않은 흑인 차별의 책임을 똑같이 져야 하는지 등에 관해서도 대화를 나눈다.
좋은 육아 지침서이기도 하다. 저자에게 철학은 생각하는 기술이다. 철학의 목표는 전문 철학자를 키우는 게 아니라 명료하고 신중하게 사색하는 인간, 스스로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을 키워 내는 것이다. 제일 좋은 방법은 대화를 하며 질문을 하는 것. 저자와 아이들의 대화 대부분이 그대로 옮겨진 덕에 책장을 넘겨 가며 대화의 기술을 배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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