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수만 알아볼 수 있게 기교 은폐… 교묘한 방식으로 재능 과시 효과
정치, 범죄, 사랑 등 다양한 상황… 게임이론으로 흥미진진하게 풀어
◇살아 있는 것은 모두 게임을 한다/모시 호프먼, 에레즈 요엘리 지음·김태훈 옮김/456쪽·2만1000원·김영사
미국 추상미술의 거장 마크 로스코(1903∼1970)의 작품에는 비밀스러운 기교가 숨어 있다. 보존 전문가들이 로스코 사후에 작품의 성분을 분석한 결과, 미술가들이 보통 사용하는 재료 이상의 특별한 재료를 사용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로스코는 유화 물감의 특성을 조정해 자신이 원하는 흐르기와 마르는 시간, 색상을 확보했다는 것. 로스코가 생전 이 사실을 알렸다면 그의 명성은 더 높아졌을 수도 있다. 그런데 어째서 로스코는 자신만의 독창적인 물감을 만들고도 이를 알리지 않았을까. 겸손해서였을까.
미국 하버드대 경제학과에서 게임이론을 가르치는 두 저자에 따르면 그 이유는 정반대다. 예술가들은 때로 자신의 기교를 숨김으로써 자신의 재능을 과시한다는 해석이다. 기교를 감추는 것은 ‘자신이 보내는 신호를 일부 사람이 못 봐도 괜찮다’는 의미다. 다수가 알아볼 필요는 없다. 오히려 소수의 평론가와 예술가들이 진가를 알아챌 때 거장의 면모는 더 인정받는다. 이 같은 전략은 고액 기부자 소사이어티에 속한 부자들이 익명으로 기부하는 이유와 같다. 평범한 사람들까지 기부 사실을 알 필요는 없다. 같은 소사이어티에 속한 고액 기부자들만 알아주면 된다. 저자에 따르면 신호를 숨기는 전략은 조직 내 입지가 확고한 이들이 자신의 지위나 권위를 교묘하게 드러내는 데 효과적이다.
책은 두 저자가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경제학과와 하버드대 경제학과에서 선보인 강연에서 출발했다. 독과점과 정치, 경매, 범죄뿐 아니라 사랑에 빠진 연인이 ‘밀당’을 하는 이유까지 일상의 모든 행동을 게임이론으로 분석한 이들의 강연은 큰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책은 이들의 강연대로 일상 행동 패턴부터 조직의 결정 등 인간 행동의 이유를 게임이론으로 풀어냈다.
게임이론에 따르면 인간은 때론 살아남기 위해 이타적 존재가 된다. ‘독재자 게임’이 대표적이다. 이 이론은 익명의 실험 참가자에게 돈을 주고 다른 참가자와 나눠 가지는지를 확인한 행동경제학 실험에서 나왔다. A에게 20만 원을 주고 익명의 다른 참가자 B에게 자신이 원하는 몫만큼 나눠주도록 하는 실험이다. 이때 B는 A와 협상할 권한이 없다. A가 전액을 다 가져가도 B는 할 말이 없다. 그런데도 반대의 결과가 나왔다. 참가자의 70%가 주어진 돈의 25%가량을 B와 나눈 것. 서로의 신원이 알려진 경우에는 더 많은 돈을 나눈 경향도 나타났다. 이 실험은 타인과 더불어 살아가는 인간이 때로 손해를 보더라도 타인의 기대에 보답하려 한다는 경향성을 밝혀냈다.
게임이론을 실제 제도나 행정에 접목하면 많은 이들로부터 이타적인 행동을 이끌어낼 수도 있다. 한 호텔에서 투숙객들에게 수건 재사용을 권하며 ‘환경보호에 도움을 준다’는 안내메시지를 전했을 땐 참여가 저조했다. 하지만 ‘투숙객의 75%가 수건을 2회 이상 사용해 환경보호에 도움을 주고 있다’고 문구를 바꾸자 수건 재사용이 급증했다. 타인의 기대를 충족시키려는 동기를 이용하면 선의에 기댔을 때보다 더 높은 참여를 이끌어낼 수 있는 셈이다.
책은 외교나 군사 전략을 짤 때에만 게임이론이 적용되는 게 아니며, 일상이 곧 게임임을 흥미롭게 전한다. 연애도 마찬가지다. 이론에 따르면 ‘썸 타는’ 상대가 적극적인 신호를 보내지 않는 이유는 셋 중 하나일 가능성이 높다. 조급함을 느끼지 않을 정도로 연애 경험이 많거나 천천히 시간을 갖고 장기적인 관계로 발전하길 원하거나 신호를 보낼 다른 파트너가 많거나. 원제는 ‘Hidden Games(숨겨진 게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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