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체불명의 물건을 관리하는 ‘수상한 연구소’에 근무하는 직원들에겐 특별한 규칙이 있다. 정해진 시간표에 따라 밤마다 연구소를 순찰해야 한다는 것이다. 순찰하다 모르는 사람을 만나도 아무것도 묻지 않아야 한다. 누군가 “여기 들어오시면 안 된다”고 하면 다른 길로 가야 한다. 또 순찰할 땐 휴대전화 전원을 꼭 꺼야 한다. ‘보안상 이유’냐고 묻는 신입 직원에게 선배 직원은 이렇게 답한다. “아뇨. 귀신이 통신기기를 좋아하거든요. 전원 꺼놔도 전화 오는 일이 가끔 있어요.”(단편소설 ‘여기 들어오시면 안 됩니다’)
신간은 단편소설집 ‘저주토끼’(2017년·래빗홀)로 지난해 영국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최종 후보에 오른 정보라의 연작소설집이다. 공포 소설에 강점을 지닌 저자답게 여름밤 더위를 싹 가시게 하는 오싹한 괴담 7편을 담았다.
직원들은 연구소의 소장품을 훔쳤다 기괴한 일을 겪고(‘저주 양’), 왜 자신을 죽였냐고 묻는 고양이를 만난다(‘고양이는 왜’). 저주에 얽힌 운동화(‘양의 침묵’), 복수가 담긴 손수건(‘푸른 새’)처럼 물건에 공포를 심은 건 저주에 걸린 토끼 인형이 등장하는 단편소설 ‘저주토끼’를 생각나게 한다.
심지어 ‘작가의 말’도 무섭다. “글이 나오지 않을 때 최후의 방책으로 나는 귀신 얘기를 쓴다. 어디서 귀신이 나오면 제일 무서울지 궁리하다 보면 어떻게든 글이 풀린다. 쓰면서 정말 재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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