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천 발원지… 명승지로 꼽혀
모르몬교 소유 중… 매각 추진
“대표적 문화유산… 공원 조성을”
조선민족대동단 총재 동농 김가진 선생(1846∼1922)이 지내며 활동했던 서울 백운장(白雲莊) 터가 부동산 개발업자에게 팔릴 처지에 놓인 것으로 나타났다. 청계천 물길이 발원하는 곳으로 조선 시대부터 명승지로 꼽혔던 이 터를 공공이 나서 역사·생태 공원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 종로구 백운장 터는 인왕산 자락의 자하문터널 남쪽 입구 주변에 있다. 이 터를 소유한 예수그리스도 후기성도교회(모르몬교) 관계자에 따르면 교회는 수년 전부터 교회 건물 등이 있는 이 부지의 매각을 추진해왔다. 백운장 터는 총 3만2000여 ㎡로 교회가 약 1만4000㎡를, 서울시와 정부 등이 나머지를 각각 소유하고 있다. 최근에는 매각 협상이 구체적으로 진전됐고, 매수자 측은 연립주택을 지을 계획이었다고 한다. 모르몬교회 관계자는 “여러 이유로 매각을 보류하고 재검토 중이지만 여전히 팔 수도 있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백운장의 역사에는 우리 근현대사의 우여곡절이 그대로 담겨 있다. 고종의 대신이었던 김가진은 1890년대부터 이곳에 별서(별장) 터전을 잡은 것으로 보이며, 1904년 창덕궁 비원의 중수를 마친 뒤 고종의 권유로 백운장을 짓고 살게 됐다고 전한다. 그러나 1916년 집사가 인장을 도용하면서 백운장의 소유권은 헐값에 동양척식주식회사에 넘어갔다. 김가진은 소송을 벌이던 중 3·1운동을 맞았고, 대동단 총재로 추대돼 활동하다가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세워진 중국 상하이로 망명했다. 광복 후 후손들이 적산이 된 백운장을 불하받으려 했지만 박정희 정권 시절인 1962년 교회에 매각됐다. 김가진이 1903년 백운동천(白雲洞天·백운 계곡 하늘이 열린 곳)이라고 써서 새긴 바위가 여전히 터에 그대로 있다.
조선시대부터 명승지로 꼽힌 곳이기도 했다. 겸재 정선(1676∼1759)의 장동팔경첩 중 ‘인왕산 백운동’을 그린 그림이 유명하다. 풍수적으로는 한양 도성의 주산인 북악산과 서백호인 인왕산을 잇는 곳이다.
환경적 가치도 높다. 백운장 터에서 시작되는 백운동천(白雲洞川)은 청계천 수원(水源) 중 가장 길어 청계천의 발원지로 꼽힌다. 20세기 초 복개됐지만 여전히 도로 아래로 물이 흐른다. 서울시는 지난해 중학천과 함께 백운동천의 옛 물길을 복원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일단 개발되면 돌이키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한 만큼 서울시 등 공공이 나서 공간이 지닌 역사, 인문지리, 생태적 가치를 되살려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기덕 전 건국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는 “백운장은 경화사족(조선 후기 한양의 양반)의 별서(별장) 공간을 확인할 수 있는 대표적인 문화유산이고, 독립운동을 조명하는 장소로 활용될 수 있다”며 “역사공원으로 만들면 주변 문화자원과 연계해 서울시 문화벨트의 하나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마포 문화비축기지를 설계했던 허서구건축사사무소 허서구 대표(전 한양대 건축학과 교수)는 “서울시가 물길 복원과 연계해 백운장 터를 기부받거나 매입한 뒤 생태공원으로 조성하면 청계천의 자연 발원지가 회복되고, 물과 공존하는 도시로서 서울의 환경적 가치가 높아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공원을 통해 시민들이 인왕산에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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