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 백과사전인듯 칼럼인듯
의사가 날렵한 글솜씨로 풀어
읽다보면 지식 선물받는 기분
◇교양으로 읽는 우리 몸 사전/최현석 지음/784쪽·2만8000원·서해문집
이런저런 글을 쓰다 보니 인터넷 사전을 살펴볼 일이 많다. 그런데 인터넷 사전이 종이 사전에 비해 부족한 점이 한 가지 있다. 원하는 내용을 찾아서 검색해 읽다 보니 그냥 아무 내용이나 손 가는 대로 펼쳐서 읽어 보는 재미가 없다.
누가 궁금한 것도 없는데 괜히 사전을 아무 데나 펼쳐서 읽겠나 싶은가? 그렇지만 책을 좋아하던 어린 시절 심심해서 백과사전을 아무 곳이나 펼쳐 읽어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대단히 많을 것이다. 이상한 영어 단어를 익히게 되거나, ‘국어사전에서 가나다순으로 했을 때 맨 마지막에 나와 있는 단어는 무엇일까’ 같은 엉뚱한 지식이 궁금해져서 사전을 들춰 보게 될 때도 있다.
나는 이런 순간이 정말로 지식 그 자체의 재미를 즐기게 해 주는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익히게 되는 지식은 누가 공부하라고 시켜서 알게 되는 지식도 아니고, 내가 알아야 돈을 벌게 되기 때문에 찾아보는 지식도 아니다. 답답한 좁은 시각에서는 알게 될 기회도 없고 알 필요도 없다고 생각하는 완전히 새로운 지식이 나른한 오후에 백과사전 책장을 흐느적거리며 넘기는 가운데 갑작스럽게 뜻하지 않은 선물처럼 다가온다. 그 과정에서 예상하지 못한 새로운 세상을 알게 되며, 의외의 정보를 접하면서 창의성을 키울 기회가 같이 커진다. 자신이 알던 한계를 넘어서는 새로운 삶, 새로운 도전에 대한 힌트를 얻고 세상을 더 넓게 볼 수 있게 된다.
현직 의사가 쓴 ‘교양으로 읽는 우리 몸 사전’은 종이 백과사전을 읽는 즐거움을 제대로 되살려 줄 수 있는 책이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몸의 온갖 내장부터 뼈와 근육에 관한 이야기, 신체 곳곳에 대한 이야기를 분류해 넉넉히 서술해 놓았다. 그렇다고 정보 그 자체만을 전달하기 위한 의학 백과사전의 형태를 택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 대신 작가가 의사로서 신체 각 부위에서 재미있는 이야깃거리로 생각해 볼 만한 내용을 읽기 좋게 엮었다.
예를 들어 뇌에 대해 설명할 때는 사람이 어떻게 다른 동물에 비해 지능이 높은 생물로 진화할 수 있었는지를 풀어낸다. 코에 대해 설명하다 왜 어떤 사람은 코를 심하게 고는지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한다. 읽다 보면 신체 각 부위를 주제로 누구나 읽을 만한 칼럼이나 에세이를 사전 하나의 분량으로 모두 모아 놓은 책이라는 느낌이 든다.
이런 이야기들이 매끈한 글솜씨로 날렵하게 쌓여 있다는 건 특히 장점이다. 처음부터 읽어 나갈 필요 없이 오늘따라 한번 읽어 보고 싶은 항목부터 찾아서 읽어도 좋고, 그냥 눈을 감고 아무 페이지나 펼쳐서 나오는 내용을 봐도 좋다. 어느 장기가 탈이 나면 큰일난다고 겁을 주다가 결국에는 협찬사의 건강식품을 홍보하는 건강 프로그램이 질릴 때, 의학 지식, 생물학 지식을 얻고자 읽기에도 여전히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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