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인 父-재일교포 3세 母 둔 바이올리니스트 구스비
22일 내한 리사이틀… 연주로 아프리카계 정체성 탐구
“어머니는 내 가장 큰 영감의 원천이자 원동력이죠. 나를 있게 해준 나라에서 연주하는 일이 각별하게 느껴집니다.”
랜들 구스비(27)는 세계 바이올린계서 새로운 영역을 개척해온 바이올리니스트다. 흑인 미국인 아버지와 재일교포 3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2018년 영 콘서트 아티스트 국제 오디션에서 우승한 뒤 2020년 명문 음반레이블 데카와 전속계약을 맺었다. 이듬해 데뷔 음반 ‘뿌리(Roots)’에서 여성 작곡가 플로렌스 프라이스 등 잘 알려지지 않았던 흑인 작곡가들을 다뤄 각별한 조명을 받았다. 그가 22일 어머니의 나라 한국에서 첫 리사이틀을 갖는다. 줄리어드 음악원 재학 시절부터 호흡을 맞춘 피아니스트 주 왕과 함께 서울 송파구 롯데콘서트홀 무대에 선다.
19일 서울 한남동 리움미술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구스비는 “미국 흑인음악 뿐 아니라 한국이나 일본 작곡가의 곡 등 클래식 사회가 낯설게 여겨 온 음악들에 계속 관심을 가질 것”이라고 밝혔다.
첫 내한 리사이틀 프로그램 구성에서도 그는 ‘흑인의 정체성’을 중시했다. “라벨 소나타에 이어 흑인 작곡가 윌리엄 그랜트 스틸의 모음곡을 연주하는데, 라벨 곡의 2악장에는 미국 음악에서 영향 받은 블루스가 담겼죠. 그랜트 스틸의 작품은 더 명확한 블루스의 색깔을 표현합니다.” 메인 곡인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9번 ‘크로이처’는 베토벤이 흑인 바이올리니스트 브리지타워를 위해 썼지만 사이가 나빠져 다른 바이올리니스트 크로이처에게 헌정한 곡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구스비는 “흑인 작곡가들의 작품은 연주되지 않아온 경우가 많아 독창성을 발휘하기 좋다. 한국이나 일본 작곡가들의 작품으로는 현재의 내 삶과 연관된 작품들을 찾아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 콘서트에서는 올해 1월 삼성문화재단으로부터 후원받은 ‘스트라디바리 엑스 스트라우스’ 악기를 사용한다. 이름은 타이거 우즈에서 딴 ‘타이거’라고 지었다. “제가 골프를 좋아하거든요.(웃음) 골프 클럽도 챙겨왔어요.” 이전에 쓰던 ‘과르네리 델 게수’ 바이올린과 달리 밝으면서도 풍성하고 초컬릿 같은 질감을 가진 악기라고 그는 설명했다. “처음엔 현의 장력이 세서 소리가 약간 날카로웠어요. 브리지(현을 받치는 나무 부품) 같은 작은 부분들을 바꿔서 소리를 파스텔 색감처럼 풍성하게 만들었죠.”
그의 스승은 미국 바이올린계의 전설 이츠하크 펄만이다. “제가 기교적인 부분에 대한 질문만 계속 했는데, 어느 날 ‘너는 이 음악이 갖는 의미가 뭐라고 생각하니?’ 하시더군요. 음악적으로 뭘 얘기할지 모르면 테크닉은 의미가 없다는 걸 깨우쳐주셨어요.”
어머니에게서 받은 영향을 묻자 “저를 연습하게 해 주셨죠”라고 말해 폭소가 터졌다. “처음엔 바이올린을 좋아서 했는데 16살 쯤 되자 연습하기 싫어지더군요. 그때 어머니께서 타이머를 갖다놓고 연습 마치지 못하면 나오지 못하게 하셨죠. 하지만 다른 부분에 대해서는 충분한 자율권을 주셨습니다.”
구스비는 아홉 살 때 처음 오케스트라와 협연했고 열세 살 때는 뉴욕 링컨센터에서 열린 청소년 음악회에서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호흡을 맞췄다. 줄리어드 음악원을 졸업한 뒤 이 학교 최고연주자 과정에 다니고 있다. 2022년 유망한 젊은 연주자에게 주는 ‘에이버리 피셔 커리어 그랜트’를 수상했다. 관람료는 5만~9만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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