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가 신는 타래버선과 꽃신에서 풍요를 기원하던 화조도, 태양왕의 권위를 뽐내는 태피스트리와 삶의 덧없음을 나타낸 사진까지. 탐스럽고 아름답지만 언젠가는 시들어 없어지기에 더 매력적인 꽃은 예술에서 다양한 도상으로 활용되어 왔다.
흔히 ‘꽃 그림’이라고 하면 시장에서 쉽게 팔기 위한 게으르고 상투적인 도상이라는 오해도 받지만, 그만큼 눈길과 사랑을 받는 것이 꽃이다. 이런 꽃을 전남 지역의 문화재부터 프랑스의 가장 화려한 시절 태피스트리까지 여러 작품을 통해 만날 수 있는 전시 ‘영원, 낭만, 꽃’이 전남 광양시 전남도립미술관에서 20일 개막했다.
● 루이 14세 찬양한 태피스트리
이번 전시는 현대미술 작품뿐 아니라 공예품과 도자기, 불교미술까지 아우른다. 협력 기관의 면면을 봐도 갤러리·미술관은 물론 박물관과 사찰, 해외 기관까지 다양하다. 그 중 눈에 띄는 것은 프랑스 모빌리에 나시오날이다.
모빌리에 나시오날은 루이 14세가 세운 왕립 가구관리소의 후신으로 가구 및 장식예술품 13만 점을 소장한 국립박물관이다. 지금도 프랑스 대통령, 장관, 외교관이 머무는 관저에 놓는 가구를 책임지고 있으며 베르사유, 퐁텐블로 등 역사적으로 유명한 궁궐과 기념 장소 복원에도 기여하고 있다. 이곳이 소장한 태피스트리와 원화 9점을 전시에서 볼 수 있다.
여기에는 루이 14세 시대 궁정화가인 샤를 르 브룅의 회화를 원작으로 한 태피스트리 ‘봄’도 포함됐다. 아레스와 아프로디테가 등장하는 신화 속 이야기를 모티프로 악기와 꽃의 사실적인 묘사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20일 전시장에서 만난 아르노 드니 모빌리에 나시오날 컬렉션 담당자는 “당시 베르사유궁의 모습을 볼 수 있으며, 빛이 닿는 부분은 금사를 이용한 아주 화려한 작품”이라며 “각 소재마다 전문 장인들이 협업해 수 년에 걸쳐 제작된다”고 설명했다.
이밖에 프랑스 상징주의 화가 오딜롱 르동의 원화와 태피스트리, 모네의 ‘수련’을 원작으로 한 태피스트리도 선보인다.
● 전(傳) 초의선사 불화도 첫 외출
전시는 총 5개 섹션, ‘연화화생, 재생의 염원’, ‘자유와 역동, 구체적 삶의 복귀’, ‘시대를 넘어서’, ‘미래로부터’, ‘삶의 확장, 가능성을 향해’로 구성된다. 이연우 학예연구사는 “꽃의 의미가 다양하듯 삶의 의미도 계속해서 변하는 가운데, 그 변화를 받아들이고 자신의 꿈과 감정에 충실한 태도를 ‘낭만’으로 보았다”고 설명했다. 그의 설명처럼 전시는 꽃을 주제로 삶과 욕망 염원 죽음 등 다양한 감정을 느끼고 비교해보도록 한다.
그 중 전시의 초입을 장식하는 것은 연꽃을 모티프로 한 전남 해남 대흥사의 소장품인 ‘관음보살도’와 ‘준제보살도’다. 두 작품은 시서화와 다도에 능했으며, 소치 허련의 스승이었던 초의선사가 그린 것으로 전해진다. 두 작품에서 연꽃은 진흙 속에 뿌리를 박고 청정한 꽃을 피워 모든 사람이 태어나면서부터 갖고 있는 불성을 의미한다. 대흥사 밖에서 두 불화가 전시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밖에 국립민속박물관·서울공예박물관이 소장한 꽃신, 귀주머니, 보자기, 모란도와 미국 팝 아티스트인 제임스 로젠퀴스트, 여수의 동백꽃 작가 강종열과 김상돈 등 동시대 작가 작품도 소개된다. 죽음과 파괴적 감성을 자아내는 로버트 메이플소프의 사진 연작과 동전을 바닥에 흩뿌려 떨어진 꽃잎을 연상케 하는 박기원의 설치 작품 ‘대화’가 마지막을 장식한다. 전시는 11월 5일까지. 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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