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 이민 1세대였던 엄마의 삶
딸의 한식, 따뜻한 위로가 되다
◇전쟁 같은 맛/그레이스 M. 조 지음·주해연 옮김/464쪽·2만2000원·글항아리
‘솔(soul) 푸드.’ 원래 미국 노예제 시대 흑인들의 애환이 깃든 음식을 가리키는 말이다. 아프리카에서 노예로 끌려간 이들은 싸구려 식재료를 고향의 방식대로 요리해 먹으며 폭력에서 살아남았다. 그들에게 음식은 그리움의 종착점이기도 했다.
책은 한국판 솔 푸드에 관한 이야기다. 1972년 미군 기지촌에서 일하던 31세 여성 군자는 백인 미국 남성을 만나 태평양을 건넜다. 한국인이 단 한 명도 없던 워싱턴주의 시골 마을에서 미국인이 되고자 영어와 미국 요리를 배우며 고군분투했다. 딸이 한국 땅에서 ‘양공주 자식’이라고 놀림받는 대신 비교적 평범한 삶을 살게 해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딸이 열다섯 살이 되던 해, 군자는 마음의 문을 닫고 스스로를 완전히 고립시켰다. 갑자기 조현병이 온 탓이다. 발병 후 군자는 음식을 거부했고, 혼잣말을 반복했다.
일본으로 강제 징용된 한국인 가정에서 태어난 군자가 미국에 오게 된 건 사실상 ‘미국인과 동침했다’는 이유로 추방당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군자는 이역만리에 닻을 내리려고 노력했지만 돌아온 것은 허망하게도 ‘전쟁 신부’, ‘차이나 돌’ 같은 혐오와 낙인이었다. 고국에서도, ‘자유의 땅’에서도 보호받지 못한 군자를 두고 저자는 말한다. “결코 살아남을 운명이 아니었다”고, 그리고 그건 ‘사회적 죽음’이라고.
굳게 닫힌 군자의 세상을 비집고 들어간 건 다름 아닌 딸이 만든 한식이었다. 딸은 미국에서 들어본 적조차 없던 생태찌개를 끓이고, 생일 밥상에 갈비와 콩나물무침을 올렸다. “한국 음식은 엄마의 과거를 보드랍게 놓아줬고 단조로운 삶을 조직하는 봉홧불이 됐다.” 군자는 2008년 건강이 악화돼 67세에 세상을 떠났다.
짐작하겠지만 저자는 군자의 딸이다. 미국 브라운대와 하버드대를 거쳐 현재 뉴욕 시립 스태튼아일랜드대에서 사회학·인류학을 가르치는 저자는 낙인으로 얼룩진 어머니의 삶을 사회학적으로 분석하며 전후 한인 이주여성의 삶의 궤적을 탐구했다. 저자는 군자가 겪어야 했던 고난이 “미국 군사주의와 한국의 독재 정권, 외국인 혐오가 평범한 여성들을 대상으로 자행한 조직적 폭력”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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