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가 홍석호 밀고說에, “오히려 밀정 처단 앞장” 논문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6월 26일 03시 00분


“고마령 참변 관련 없어” 반박

1925년 2월 말경 중국 지린(吉林)성 지안(集安)현 고마령에서 독립군인 육군주만참의부(陸軍駐滿參議府)가 국내 진입을 위한 작전 회의를 열던 중 일제 경찰의 기습을 받아 혈전 끝에 참의장 최석순 이하 42명이 전사한다. 고마령 전투 또는 고마령 참변이라 불리는 이 사건은 일본 군경이 밀정을 통해 정보를 탐지했기에 벌어진 일이었다.

이 기습은 한인 순사부장 고피득이 밀정 이죽파를 앞세워 진행됐다는 사실이 알려져 있지만 1920년대 중국 남만주 일대에서 유격대를 이끌었던 독립운동가 홍석호(1891∼1925·1995년 건국훈장 독립장 추서) 역시 밀고와 관련됐다는 의혹이 제기돼 왔다. 고마령 참변 직후 일본 군경이 작성한 한 문건에 “(참의부) 제2중대의 패배는 제1중대장 홍석호가 일본 관헌에게 밀고한 결과라고 한다”는 전언이 나오는 탓이다.

그러나 홍석호가 고마령 참변에 관련됐을 가능성이 없다고 본 논문이 학술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에 최근 발표됐다. 이상구 국가보훈부 보훈기록관리과 연구원은 논문 ‘홍석호의 항일무장투쟁과 고마령 참변 밀고설 검토’를 통해 지린성 기록보관소 자료에서 찾아낸 홍석호 관련 내용을 밝혔다. 이에 따르면 1925년 3월 28일 일본영사관은 중국 당국에 공문을 보내 “홍석호는 부하들을 모아 내지(內地)로 침입해 살인, 방화 등을 저질렀다. 신속히 이 범인을 귀 공서로 압송해 달라”고 요청했다. 공문에 따르면 홍석호는 1925년 3월 4일 중국 당국에 체포된 상태였다.

이 연구원은 “일본 군경은 남만주 지역 항일운동세력을 일망타진하기 위해 밀고자를 앞세워 경찰력을 총동원했다”며 “홍석호가 밀고자라면 일본 측이 공문이 발송된 3월 28일까지 그의 신병을 확보하지 못했을 리 없다”고 지적했다. 홍석호의 부대는 1924년 7, 8월 평안북도 초산군에서 밀정을 처단했다. 이 연구원은 “홍석호는 오히려 밀정 처단에 앞장섰다”며 “남만주 독립운동계에서 변절자는 고마령 참변 직후 일제에 투항한 통의부 제4중대장 출신의 홍기주였을 것”이라고 밝혔다.

#독립운동가#홍석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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