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년 만에 연극무대 선 손석구… “너무 맑고 순수한 ‘신병’ 연기, 때묻은 내가 할 수 있나 고민”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6월 28일 03시 00분


LG아트센터 개막 ‘나무 위의 군대’
종전 모른 채 숨어 살던 병사 다뤄
손, 캐나다서 연극으로 배우 시작
9년전 함께 연극한 최희서도 출연

연극 ‘나무 위의 군대’에서 극한의 굶주림을 견디고 있는 신병(손석구·왼쪽)의 등 뒤에서 나무의 혼령인 ‘여자’(최희서)가 
“무엇을 위해서?”라고 물으며 전쟁의 무익함을 일깨운다. 최 씨는 “객석에서 웃음이 터져 나오는 연극이지만 그저 유쾌하고 가볍게만
 다가가지 않도록 고민하며 연습했다”고 밝혔다. 엠피앤컴퍼니 제공
연극 ‘나무 위의 군대’에서 극한의 굶주림을 견디고 있는 신병(손석구·왼쪽)의 등 뒤에서 나무의 혼령인 ‘여자’(최희서)가 “무엇을 위해서?”라고 물으며 전쟁의 무익함을 일깨운다. 최 씨는 “객석에서 웃음이 터져 나오는 연극이지만 그저 유쾌하고 가볍게만 다가가지 않도록 고민하며 연습했다”고 밝혔다. 엠피앤컴퍼니 제공
“5, 6년 전부터 연극 무대로 돌아오고 싶었어요. 다만 기회가 닿지 않았죠. 공연 첫날, 사랑하는 연기를 관객 앞에서 원 없이 해볼 수 있어 기뻤습니다.”

서울 강서구 LG아트센터 서울에서 20일 시작된 연극 ‘나무 위의 군대’로 9년 만에 무대에 복귀한 ‘대세 배우’ 손석구(40)가 말했다. LG아트센터 서울에서 27일 열린 간담회에서 그는 “대본을 보자마자 너무 출연하고 싶었다”며 “오늘날 한국 관객들이 볼 때도 가장 와닿는 작품일 거라 생각했다”고 밝혔다. 드라마 ‘D.P.’(2021년), ‘나의 해방일지’(2022년), 영화 ‘범죄도시2’(2022년)에서 강렬한 연기를 선보인 손 씨가 주연을 맡아 화제가 된 연극 ‘나무 위의 군대’는 티켓 판매를 시작하자 전석 매진됐다.

‘나무 위의 군대’는 1945년 일본이 태평양전쟁에서 패했다는 사실을 모른 채 2년 동안 나무 위에 숨어 살아남은 두 병사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이다. 일본 대표 극작가 이노우에 히사시(1934∼2010)의 유작을 극작가 겸 연출가 호라이 류타(47)가 대본으로 만들어 2013년 도쿄에서 초연했다. 살아남는 것에 부끄럼 없는 신병 역은 손 씨가, “살아남은 것은 수치”라며 대의명분을 중시하는 상관 역은 배우 이도엽과 김용준이 번갈아 가며 연기한다. 두 병사는 낮에는 적군의 야영지를 살피고 밤에는 몰래 나무에서 내려와 식량을 구하며 목숨을 부지한다.

손 씨는 “신병은 상관이 옳다고 믿지만 진심으로 이해할 수는 없기에 마음속 부조리가 움튼다. 하지만 계급이 달라 싸우지도 못한다. 이건 가족과 직장, 학교 어디에나 있을 법한 이야기다. 지금껏 출연한 작품에서 보지 못한 주제라 강한 매력을 느꼈다”고 했다.

그는 영화와 드라마에 출연하며 이름을 알렸지만 캐나다에서 연극 ‘피라무스와 티스베’로 배우의 첫발을 뗀 연극인 출신이다. 그는 중학교 때 미국으로 가 공부했다. 한국에 돌아온 뒤에는 연극 ‘오이디푸스의 왕’(2011년), ‘사랑이 불탄다’(2014년)에 출연하며 연기 생활을 이어갔다. 손 씨는 “상관 역을 맡은 도엽이 형이 연습 초반 ‘무대라고 해서 손을 다르게 쓰려 하지 말고 카메라 앞에서처럼 해라’라고 조언해줬다”며 “오랜만에 연극 무대에 섰지만, 연습 과정에서 알맞은 연기를 찾아 갔다”고 했다.

한때 코미디언을 꿈꿨다는 그는 이번 공연에서 느긋하고 순진한 신병 역을 매끄럽게 소화해낸다. 자연스러운 표정 연기와 능청스러운 유머로 엄중한 서사에 여유를 더한다. 적군이 내다버린 쓰레기 더미에서 식량을 찾아 먹는 그에게 상관이 “맛있냐”고 호통치자 그는 한껏 쭈그러든 어깨로 “네, 맛있어요”라고 답하며 관객의 웃음을 유도한다. 손 씨는 “신병 캐릭터가 그간 해왔던 배역과 많이 달랐다”며 “나처럼 때 묻은 사람이 이렇게 맑고 순수한 사람을 연기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 컸다”고 말했다.

나무의 혼령으로서 무대 위에 있지만 두 병사에겐 들리지 않는 이야기를 풀어내는 ‘여자’ 역은 배우 최희서(37)가 맡았다. 나무 둥치 사이사이를 그림자처럼 돌아다니며 두 병사를 관조하고, 짧지만 굵은 대사로 전쟁의 의미를 묻는다. 신병에게 살의를 느끼는 상관을 향해 “전쟁터에선 부끄러움을 모르는 괴물이 태어난다”고 읊조리는 등 사유의 깊이를 더한다. 최 씨와 손 씨는 9년 전 연극 ‘사랑이 불탄다’에서 호흡을 맞춘 바 있다. 최 씨는 “당시 연극을 하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각자 통장에서 100만 원씩 꺼내 50석 규모의 소극장에서 5일 정도 공연했다. 이번 공연은 손석구 씨가 ‘다시 같이 해보자’고 제안해 함께 서게 됐다. 어마어마한 무대를 보며 매일 감사함을 느낀다”고 말했다.

8월 12일까지, 6만6000∼7만7000원.

#나무 위의 군대#손석구#최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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