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장의 어깨가, 손끝이 신들린 듯 움직인다. 베토벤의 폭풍같은 격정이, 영혼이 순식간에 공간을 가득 채운다.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17번 ‘템페스트’다.
현존하는 최고 권위의 베토벤 스페셜리스트 루돌프 부흐빈더(77)가 내한했다. 그는 28일 첫 공연을 시작으로 30일, 7월1일, 6~9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무대에 올라 7일간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32곡 전곡을 연주한다. 그의 60번째 베토벤 소나타 전곡 연주라는 기념비적 공연이다.
부흐빈더는 첫 공연에 앞서 28일 서울 강남 오드포트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피아니스트 중에는 중 바쁘게 전쟁하는 것처럼 연주하는 이들이 있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피아노 앞에 앉아 노래하듯 연주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젊은 시절에는 ‘이런 해석만이 절대적’이라는 좁은 관점으로 베토벤 소나타를 대했다”며 “지금은 더 많은 가능성을 열어두고 더 많은 음악적 요소를 연구한다”고 했다.
1946년 체코슬로바키아에서 태어난 부흐빈더는 5세에 빈 음악원에 입학할 정도로 천재였지만 ‘거장’이라는 명성을 얻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는 묵묵하게 베토벤에 천착했다. 1980년대 처음으로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 음반을 발매하며 세계적 주목을 받았고, 이후 수십 년간 이어진 해석과 연구를 통해 최고 권위의 베토벤 스페셜리스트 자리에 올랐다. 2014년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을 시작으로 세계를 돌며 전곡 연주를 펼쳤고,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을 60회 연주한 전무후무한 전설이 됐다.
이번 내한은 그의 여덟번째 한국 방문이다. 그는 2012년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로 처음 내한한 이후 꾸준히 한국을 찾고 있다. “한국에는 굉장히 좋은 청중들이 있어요. 어떻게 한국 젊은이들 사이에 클래식이 이렇게 전파됐는 지 놀라울 정도죠.”
평생 베토벤을 연구해온 그는 “24시간 동안 베토벤의 방에 앉아 그가 모르게 관찰하고 싶은 꿈이 있다”며 “베토벤은 나에게 하나의 혁명이고, 가장 인간적인 면을 가진 작곡가”라고 했다. “베토벤은 작곡가이자 혁명가죠. 매우 인간적이고, 유머러스하고, 사랑이 넘칩니다.”
그는 “베토벤을 연주하며 단 한 번도 질리거나 싫증난 적이 없다”며 “베토벤의 작품 속에서 항상 새로움을 발견한다”고 했다. “베토벤의 모든 소나타를 다 사랑해요. 그런데 유감스럽게 모든 곡이 다 어렵죠.(웃음)”
그는 “이제 60번째 리사이틀을 돌고 있고, 그렇게 여러번 연주했음에도 매번 새로운 것을 배운다”며 “제가 어디까지 갈 지 모르겠지만 앞으로 갈 길이 많다”고 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