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과 양적 완화로 뜨겁게 달아올랐던 미술 시장의 분위기가 금리 인상과 함께 순식간에 차분해졌습니다. 국내 주요 경매사들의 1분기 낙찰 총액은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58% 감소했다고 하죠. 작품 관람이나 마케팅의 기회로 ‘프리즈 서울’은 여전히 많은 관심을 받고 있지만, 올해 세일즈는 어떻게 될지 지켜봐야 한다는 의견도 많습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지난달 크리스티 홍콩 봄 경매 현장 취재를 다녀왔습니다. 크리스티와 소더비 등 주요 경매사들은 홍콩에 자체 경매장을 마련하면서, 컨벤션센터에서 이뤄지는 대규모 경매보다 소규모 상시 경매의 형태로 변화가 이뤄질 모양새였습니다.
크리스티 아시아태평양에서 20·21세기 미술 데이 경매 헤드 및 스페셜리스트인 에이다 츄이 부사장을 만나 미술 시장 전망과 컬렉팅 팁을 위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을 질문 답변의 형태로 공유합니다.
차분해진 시장, 달라진 타깃
김민(민): 경제 상황이 급변한 현재 미술 시장을 어떻게 보고 있나요?
에이다 츄이(에): 미술 경매가 경제의 영향을 많이 받는 것이 사실입니다. 경기가 좋아야 경매 실적도 좋죠. 그런 상황에서 요즘은 세일즈와 관련해 최고가 작품들은 500~700만 달러(60~90억 원) 선을 겨냥합니다. 경매시장에서 1000만 달러(약 130억 원) 이상의 작품에는 고객들이 더 신중하기 때문이죠.
이번 경매에서 제프 쿤스 작품을 놓고 그랬듯이 경합이 벌어져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 지금의 경제 상황에서 적당한 수준이 500~700만 달러라는 거죠.
민: 최상위층 컬렉터는 그 정도이고, 그 아래는 어떤가요?
에: 그다음은 100만 달러(약 10억 원)대의 작품에서도 고객이 많습니다. 좋은 작품이 있다면 그 정도는 쓸 용의가 있는 컬렉터들이 있다는 것이죠. 다만 시장 전체적으로는 관망하는 모습이고, 차분한 분위기입니다.
민: 아시아 미술 시장은 어떤가요?
에: 아시아 컬렉터들은 돈을 들고 있지만 어디에 써야 할지 아직 결정하지 못한 것 같아요. 2년 전에는 제 작품을 내놔도 100만 달러에 팔 수 있었을 거예요(웃음). 그 정도로 현금이 많았고 시장이 좋았죠. 그런데 지금은 한 푼 한 푼 신중하게 쓰려는 경향이 강해요.
건강한 일이죠. 경기는 나쁘지만, 그 덕분에 컬렉터들이 좀 더 신중해졌고 그만큼 좋은 작품을 가려낼 여유를 갖게 됐어요.
한 가지 다른 점은, 중국 시장은 지난 시즌보다 훨씬 좋다는 점이에요. 왜냐면 지난해 중국은 코로나19 록다운 때문에 시장이 죽어있었거든요. 상하이 국경이 열린 게 올해 초이니, 이번 봄 경매가 엔데믹 후 첫 중국 고객을 맞은 경매라고 보시면 됩니다.
경매장에서 중국인 고객들을 정말 많이 만났고, 구매 추세도 회복되고 있어요.
“5년 전 도록과 지금 도록을 비교”
민: 아시아 컬렉터의 취향 변화가 있는지도 궁금해요.
에: 제가 고객들에게 항상 말하는 게 있어요. 바로 5년 전 경매 도록과 현재 도록을 비교해보라는 거예요. 시간이 지나도 남아 있는 예술가들을 보라는 의미죠. 이름 목록만 봐도 누가 살아남았는지 알 수 있어요.
그렇게 비교해보면 서양 예술가들의 비중이 좀 더 높아졌다는 걸 알 수 있어요. 경매는 어쨌든 2차 시장이니까 시장의 흐름을 반영할 수밖에 없죠. 경매 시장에 나오는 작품은 사람들이 사고 싶어 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죠.
따라서 취향 변화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좀 더 신중하고 건강한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고 생각해요. 중요한 건 예술가들의 국적보다 이제는 퀄리티나 작품을 더 본다는 점이죠.
민: 이번 경매에서 니콜라스 파티 작품도 경합이 있었어요. 그는 왜 인기가 있는지 궁금했어요.
에: 우선 그가 재능있는 작가이기 때문이고, 오일이 아니라 파스텔을 사용해 자신만의 아이코닉한 스타일을 갖고 있는 것도 특징이에요. 노래를 잘한다고 다 인기 있는 게 아니라 개성이 있어야 하잖아요. 예술가도 마찬가지죠.
그가 과일을 그리건, 풍경을 그리건, 정물을 그리건 누가 봐도 니콜라스 파티라는 걸 알 수 있어요. 그게 중요한 포인트이고. LACMA 같은 좋은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는 것도 플러스 요소입니다.
컬렉터가 물어야 할 세 가지 질문
민: 이브닝 경매에서 활약상이 인상 깊었습니다. 고객들에게 컬렉팅 팁을 많이 알려주실 것 같은데 독자들에게도 공유해주세요.
에: 물론이죠. 제가 새 고객을 만날 때 항상 보여주는 슬라이드가 있어요. 거기에 삼각형을 그리고 세 가지 질문을 적어 놓았어요. 컬렉팅을 시작할 때 이 질문들을 생각해보라고 조언합니다.
첫 번째는 ‘나는 뭘 좋아하는가?’에요.
컬렉팅의 목적에 오로지 투자만 있는 것이 아니잖아요. 결국은 내가 좋아해야 하고, 10년이 지나도 좋아할 수 있어야 해요. 바스키아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쿠사마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는 것처럼 취향은 정말 다양하고 옳고 그름도 없어요. 새 고객이 와서 ‘뭘 사야 하냐?’’고 물어보면 저는 우선 이 질문을 해보라고 해요.
그다음은 ‘주어진 시간이 얼마인가?’입니다.
예를 들어 작품을 사놓고 아주 오랫동안 보관할 수 있다면, 돈을 좀 더 투자해 유행을 타지 않는 안정적인 예술가의 작품을 살 수 있겠죠. 그게 아니라 활발하게 미술 씬에 참여하고 갤러리도 자주 가면서 보는 사람이라면 좀 더 짧은 주기를 택하겠죠.
마지막은 ‘예산은 얼마인가?’입니다.
100달러를 갖고 있다면 그걸 다 쓰지 말고, 내 취향과 시간에 맞춰서 얼마나 쓸 수 있는지를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정해야 합니다.
이걸 기준으로 저 역시 2차 시장에서 정말 많은 작품을 보고 경험했으니, 시장을 다 아는 건 아니지만 나름의 경험을 토대로 각 컬렉터에게 맞는 조언을 드립니다.
또 인터넷 검색에만 의존하지 말고 최대한 많은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듣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민: 말씀 감사합니다.
※ ‘영감 한 스푼’은 예술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창의성의 사례를 중심으로 미술계 전반의 소식을 소개하는 뉴스레터입니다. 매주 금요일 아침 7시 발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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