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 노출 극도로 꺼렸던 작가
한국판 표지 “훌륭하다” 감탄
◇밀란 쿤데라 읽기/박성창 외 지음/198쪽·3000원·민음사
대학생 때 처음 산 문학 전집은 12일 향년 94세로 세상을 떠난 체코 출신 소설가 밀란 쿤데라(1929∼2023) 전집이다. 15권짜리 전집엔 희곡 ‘자크와 그의 주인’, 에세이 ‘만남’ ‘커튼’ 등 한국 독자에게 낯선 작품이 포함돼 있다. 사실 이런 작품들은 대표작인 장편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농담’처럼 잘 읽히진 않았다. 하지만 쿤데라의 다양한 작품을 읽는다는 괜한 동경 때문에 아직도 집에 고이 모셔두고 있다.
‘밀란 쿤데라 읽기’는 2013년 쿤데라 전집이 완간됐을 때 출간된 해설집이다. 작품 해설뿐 아니라 민음사 직원들이 쓴 출판 뒷이야기가 재밌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1988년 송동준 서울대 독어독문학과 교수의 번역을 통해 국내에 처음 소개됐다. 송 교수가 번역한 제목은 ‘존재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고(故) 박맹호 민음사 회장(1934∼2017)이 “첫머리에 ‘존재’라는 단어가 들어가면 무겁다”며 바꾸기를 제안했다. 출간 후 한동안 ‘참을 수 없는…’ 시리즈가 유행했을 정도니 박 회장의 선구안이 ‘쿤데라 신드롬’에 일조한 셈이다.
민음사에서 쿤데라 전집을 펴내기로 한 건 2011년이다. 전집을 만들 때 가장 공을 들인 건 표지다. 편집부가 고른 표지는 벨기에 화가 르네 마그리트(1898∼1967)의 그림이었다. 마그리트의 ‘중산모자를 쓴 남자’를 보면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의 등장인물 사비나가 알몸인 채 중산모자만 쓰고 거울 앞에 서 있는 장면이 떠오른다는 이유다. 뒤틀린 현실 속에서 삶의 본질을 보려는 쿤데라의 시선이 마그리트 그림과 어울린다는 판단도 있었다.
쿤데라는 전집 시안을 보고 “이전에 본 적이 없을 정도로 훌륭하다”며 찬성했다. 작품에 담긴 여러 사실관계를 다시 확인할 때마다 쿤데라는 “내가 써 놓은 그대로 하면 된다”고 자신했다고 하는데 그의 완벽주의 성향을 엿볼 수 있다.
박성창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가 2000년 프랑스 파리에서 쿤데라를 직접 만난 기억을 꺼내놓은 대목도 눈길이 간다. 쿤데라는 당시 “작품 밖에서 작품에 대해 말한다는 것이 몹시도 거북하고 난처한 일”이라고 했다. 인터뷰를 비롯해 외부 노출을 극도로 꺼리며 살아온 그의 삶을 대변하는 말이다. 헤어질 때 사진을 찍자는 요청에 대해 쿤데라는 “사진 공포증이 있다”면서도 “대신 선물로 귤 하나를 들고 가라”며 장난을 친다. 진지하면서도 유머를 잃지 않는 그의 작품이 삶 그 자체인 것처럼 느껴진다.
타계 소식을 듣고 그의 전집을 살까 했다가 망설이는 이들이라면 쿤데라가 한국 독자들을 위해 고른 책들을 읽어보는 것도 좋겠다.
“‘웃음과 망각의 책’은 형식의 자유분방함이 두드러진 작품이죠. ‘삶은 다른 곳에’는 약간 어려울지도 모르겠고 ‘이별의 왈츠’는 반대로 쉬울지도 모르겠어요. 전자는 무거움이 가벼움과 결합되지 못했고 후자는 가벼움이 무거움을 만나지 못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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