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플루언서도 프리랜서…쉽게 돈 벌 순 없더라고요”[정양환의 요즘 (젊은) 것들]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7월 22일 14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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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여행 인플루언서 ‘도로시’ 김슬기 씨 (하)

“사회변화로 인한 기성세대와 신세대의 갈등에서 기성세대가 자주 사용하는 말.”
나무위키에 실린 ‘요즘 젊은 것들’ 정의입니다. 폄하의 뉘앙스가 짙지만, 사실 다들 한때는 그런 말을 듣지 않았나요. “누구나 처음엔 어린이였지. 허나 그걸 기억하는 어른은 별로 없어.”(생텍쥐페리 ‘어린 왕자’에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청년들 목소리를 담아보려 합니다. 그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에서 어쩌면 인생이란 타래의 실마리를 찾게 될지도 모르니까요. 살짝 여지를 남기고자 (젊은)엔 괄호를 쳤습니다. 나이가 어디쯤 와있건, 우린 모두 ‘요즘 것들’ 아닌가요.
2019년 필리핀 보라카이 해변에서 해 질 녘 촬영한 여행 인플루언서 김슬기 씨 뒷모습. 사진제공 김슬기 씨
*상편(www.donga.com/news/article/all/20230714/120244326/1)에서 이어집니다.

“갈수록 산티아고로 가는 방향을 알려주는 노란 화살표도 늘어났다. 카미노에선 종종 어떤 강력한 목표에 이끌리는 듯한 기분이 들곤 했다. 노란 화살표 덕분에 내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가 명확했다. 일상에서도 그런 화살표를 가질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김희경의 ‘나의 산티아고, 혼자이면서 함께 걷는 길’에서)

소셜미디어 시대에 등장한 인플루언서는 독특한 위상을 지닌 존재다. 타인의 관심과 공감을 얻어 영향력을 쌓고, 다시 그 힘을 발휘해 반대급부를 얻는다. 그건 주로 자기만족이나 인기, 명예 등 무형의 것이지만, 때로는 상당한 물질적 수익으로 이어진다. 이에 최근 인플루언서는 많은 이들이 선망하고 도전하려는 직업이 됐다.

그렇다면 실제 ‘직업’으로서 인플루언서는 어떻게 봐야 할까. 어떤 일이든 마찬가지겠지만, 스마트폰과 모니터를 통해 ‘보여주는’ 게 일인 인플루언서의 세계는 특히나 속사정을 알기 어렵다. ‘여행킬러도로시’로 활동하는 여행 인플루언서 김슬기 씨(36) 역시 “당연히 보이는 게 다가 아니다”며 “직장은 전쟁터, 바깥은 지옥(만화 ‘미생’)은 여기도 마찬가지”라 했다. 부산의 평범한 직장인에서 인스타그램 팔로워 15만 명의 인플루언서가 된 그에게 ‘인플루언서로 산다는 것’은 무엇인지 들어봤다.

-2016년 처음엔 블로거로 시작한 거죠.
“맞아요. 네이버 블로그로 출발했어요. 초기엔 제 ‘일기장’이나 다름없었죠. 여행은 사비로 다니며 고군분투했죠. 블로그 방문객도 몇 명 되질 않았죠. 지금 생각하면 겁이 없었어요. 일단 좋아하니까 한번 해보자는 맘으로 했어요. 새로운 곳을 가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만 해도 얻는 게 있다고 믿으며 계속 밀고 나갔던 것 같아요. 그동안 직장생활 때 모아뒀던 돈은 ‘착실하게’ 까먹으면서요, 하하.”

지난해 1월 경기 양평군에서 패러글라이딩 체험을 하며 찍은 사진. 사진제공 김슬기 씨
-언제쯤부터 ‘돈벌이’가 된 거였나요.
“대략…, 1년 반 정도 걸렸어요. 차츰차츰 방문객이 늘고 있었는데, 어느 날부터 여행 관련 회사 등에서 메일이나 쪽지가 오더라고요. ‘이런저런 프로젝트가 있는데 같이 해보지 않겠느냐’는 식이었죠. 처음엔 스팸 메일인가 싶어 무시하기도 했어요. 그런데 접촉해보니 유명한 회사들도 적지 않았고, 상당히 좋은 제안을 해주시더라고요. 그때부터 ‘아, 이제 수익을 낼 수 있겠구나’ 싶었어요.”

-좀 구체적으로 말해줄 수 있나요.
“아마 사람마다 분야마다 다르겠지만, 제 경우엔 네이버는 하루 평균 방문객이 1만 명을 넘어서던 시점으로 보면 될 거 같아요. 유튜브나 인스타그램은 소위 ‘대박 콘텐츠’가 하나 있으면 구독자나 팔로워가 갑자기 늘기도 하지만, 블로그는 거의 그런 일이 없어요. 꾸준히 콘텐츠를 업로드하면서, 방문객도 그에 따라 조금씩 늘어나죠. 그래도 이쪽 업계에선 1년 반 만에 그렇게 성장한 거면 대단한 거라고 하시긴 했어요. 인스타그램 역시 ‘케바케(케이스 바이 케이스)’지만, 최소한 팔로워가 3만 명은 넘어야 작게라도 제안이 들어오는 거 같아요.”

-그때까지 버티는 게 불안하지 않았나요.
“아니라고 하면 거짓말이죠. 특히나 통장에 ‘따박따박’ 월급 들어오던 직장생활을 해봤잖아요. 계속 빠져만 나가니 걱정이 되죠. 그나마 부모님이 크게 내색을 안 하셔서 다행이었어요. 회사도 자기가 알아서 다녔는데 어떻게든 뭐라도 하겠지 싶으셨대요. 감사한 일이죠. 근데 ‘불안’은 지금이라고 없지 않아요. 저희는 결국 프리랜서잖아요. 더구나 사람들 평판이 중요하게 작용하니 언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까요. 특히 팬데믹을 겪으면서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도 벌어진다는 걸 알게 됐죠.”

-여행 쪽이라 특히 타격이 컸겠네요.
“그때 힘들지 않았던 사람이 누가 있겠어요. 하지만 여행 쪽은 말 그대로 ‘셔터 내린’ 상황이긴 했죠. 저는 특히 해외여행 전문이어서 팬데믹 터진 뒤 1년 동안 수익이 ‘0’이었어요. 이걸 계속할 수 있을지 불확실했죠. 그동안 쌓은 게 억울해서 국내 여행을 다루거나 다른 콘텐츠를 하며 버텼어요. 3년 동안 견뎌낸 스스로를 조금은 칭찬해주고 싶네요. 그때 포기하고 떠난 분들도 적지 않거든요. 그런데 너무 이해가 되는 게…, 솔직히 생계가 막막한 상황이라면 쉽지 않았을 거 같아요.”

지난해 3월 제주도 섭지코지. 사진제공 김슬기 씨
-어려움을 이겨낸 비결이 있을까요.
“에구, 거창한 게 있는 건 아니고…. 그냥 좋아하는 일이라 그랬나 봐요. 처음 시작할 때 참 많이 헤맸거든요. 글과 사진으로 정보를 전달한다는 게 보통 일이 아니더라고요. 특히 글쓰기가 힘들었어요. 그래서 ‘생각의 전환’을 했죠. 좋은 글, 대단한 글을 쓰려 하지 말자. 그냥 평범한 20대 여성이 여행 다녀온 뒤 친구한테 ‘여기 갔더니 이런 게 좋았어’ 알려주는 기분으로 정리해보자. 그때부터 저도 어깨에 짐을 내려놓고, 콘텐츠도 주목받기 시작했어요. 동네 친구 같은 애가 편하게 알려주는 여행정보처럼 느껴지신 게 아닐까 싶어요. 단어도 어렵거나 전문적인 걸 피하려고 했고요. 그렇게 ‘나만의 것’을 돌탑처럼 쌓아 올린 거라 더 놓고 싶지 않았어요.”

-실제로 얼마나 버세요.
“너무 갑자기 훅 치고 들어오시는 거 아니에요, 하하. 아무래도 들쭉날쭉하죠? 수익이 거의 없을 때도 있고, 일이 몰릴 땐 기대보다 훨씬 많이 벌고. 음…, 팬데믹 전에 한참 잘 될 때는 제 또래 직장인보다 훨씬 연봉이 높았죠. 그때는 건방지게 ‘앞으로 몇 년 동안 이렇게 벌면, 부산에 조그만 아파트 하나 마련할 수 있겠는데’라는 생각도 했으니까요. 가족이랑 해외여행 가면서 ‘플렉스’도 꽤 했어요. 뭘 해도 잘 될 거라는 착각에 빠진 거죠. 하지만 8년 동안 이런저런 일을 겪고 나니, 사람은 겸손해야 한다는 걸 뼈저리게 느낍니다.”

-나쁜 짓 한 것도 아닌데, 그럴 필요 있나요.
“그래서 더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는 거죠. 세상일이 내 맘대로 되는 게 아니니까요. 누구나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 건 아니잖아요. 싫어도 해야 하니까 하는 경우도 많고요. 근데 전, 어쨌든 하고 싶은 일을 찾았고 벌이도 나쁘지 않은 거잖아요. 그런 행운을 제가 잘 나서 찾은 게 아니라는 걸 알아요. 특히나 인플루언서는 감사하게도 팔로워와 방문객, 구독자들 덕분에 먹고사는 거니까요. 주위 사람들, 세상 사람들 덕에 좋은 직업을 가졌으니 몸가짐도 조심해야지란 생각을 하게 돼요.”

여행 인플루언서 김슬기 씨가 지난해 10월 일본 교토 에이칸도에서 직접 찍은 사진. 사진제공 김슬기 씨
-하긴 사람은 어디서 어떻게 마주칠 줄 모르죠.
“네, 저는 원래 제 신상이나 얼굴을 공개하지 않았어요. 부담스럽기도 하고, 쑥스럽기도 했거든요. 근데 인지도가 올라가니까 그게 문제가 되더라고요. ‘여행을 직접 다녀온 거 맞느냐’는 의심을 받더라고요. 포털사이트에서 확인 들어온 적도 있어요. 그래서 결국 제 자신을 드러내게 된 거죠. 연예인이야 주목받는 게 일이지만, 저로선 쉬운 일이 아니었어요. 주변에서 다 알게 되니까, 더 신중해야겠더라고요. 게다가 여기도 사회생활인지라 업계의 여러 사람들을 만나기 때문에 처신이 중요합니다.”

-신상 공개 뒤 불편한 점은 없었나요.
“있죠. 아무래도 악플도 늘어나고요. 다행히 크게 신경 안 쓰는 편이에요. 그냥 차단해버리고 심하면 신고하면 되죠, 뭐. 처음엔 힘들었죠. 밤에 잠을 못 잤어요. 하지만 그분들은 제 얘길 듣기보단 그냥 본인 감정만 쏟아내는 거더라고요. 물론 적절한 지적이나 비판은 받아들여야죠. 그렇게 꼼꼼히 봐주시면 고맙기도 해요. 그보단 아무래도 여성이라 조심스러운 면이 있죠. 이상한 메시지야 수도 없이 오고, 여행 사진 올리면 계속 ‘나도 거긴데 만나자’는 쪽지도 보내요. 그래서 몇 년 전부터 콘텐츠를 현장에서 바로 올리는 경우는 절대 없어요.”

-어디나 사람 관계가 중요하군요.
“그러니까요. 프리랜서에겐 더 중요할지도 모르겠어요. 직장인이야 함부로 자를 수 없지만, 저희는 맘에 안 들면 안 쓰면 그만이잖아요. 실제로 평판이 안 좋은 분들은 그리 오래 가지 못하더라고요. 프로젝트를 제안하는 업체분들과도 잘 지내야 하지만, 인플루언서 동료들하고도 원만한 관계를 맺어야 해요. 여행 투어 같은 경우엔 여럿이서 같이 가는데, 다른 분들이 함께 가길 꺼리면 일이 들어오겠어요? 사람 사는 곳은 어디나 마찬가지인 거 같아요.”

여행 인플루언서 김슬기 씨는 인터뷰 내내 씩씩하면서도 유쾌했다. 이날 만남은 해외에서 막 돌아온 뒤 부산으로 내려가기 직전 잠시 짬을 내 이뤄졌다. 많이 피곤했을 텐데도 어떤 질문에도 진솔하고 적극적으로 답해줬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나이 상관없이 인플루언서를 꿈꾸는 이들이 많아요.
“그게 이 일의 가장 큰 매력 중 하나죠. 청년도 도전할 수 있고, 경륜 있는 어른들도 나름 무기를 지닌 거니까요. 나이대에 맞춰 콘텐츠를 바꿔나갈 수 있는 것도 장점이에요. 친한 인플루언서 언니가 있는데 20대엔 화려한 솔로 느낌으로 하더니 결혼 뒤엔 신혼부부 콘셉트, 아이 낳고는 가족 분위기로 가요. 그런 성장 일지를 좋아해 주시는 분들도 많고요. 결국 중요한 건 얼마나 이 일에 진심인가예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아무래도 처음엔 외모가 뛰어나거나 원래 유명한 분들이 유리한 게 사실이에요. 근데 거기에 의존해 제대로 콘텐츠를 만들지 못하면 오래 가지 못하더라고요. 조용히 사라지는 분들도 꽤 봤어요.”

-관심 있는 이들에게 조언 부탁드려요.
“제가 그럴 정도의 위치는 아니지만…, 여긴 누구에게나 기회가 열려 있잖아요. 원하면 언제든 도전할 수 있어요. 다만 취미나 부업 정도로 여기는 분들은 길게 못 버티더라고요. 적어도 1, 2년 수익이 없어도 끝까지 해보겠다는 결심이 먼저예요. 뭣보다, 편하게 돈 버는 일은 어디에도 없어요. 예를 들어, 여행이 일이 되면 사진 1장도 편하게 찍을 수가 없어요. 숙소나 비행기에서 잠 못 자고 일하는 건 일상이라 힘들다고 말할 거리도 안 돼요. 여행 장소도 자기 입맛대로 고를 수 있는 이들은 정말 극소수예요. 페이를 낮춰서라도 하겠다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요. 여기도 정글인 건 똑같아요.”

-그런데도 계속하는 이유는 뭘까요.
“세상에 쉽게 사는 방법이 있나요. 좋아하는 직업이라는 게 ‘좋은 일만 생긴다’는 뜻은 아니거든요. 단점도 어려움도 있지만, 그걸 감내할 메리트가 있다는 거 아닐까요. 원래 직장인은 프리랜서를 꿈꾸고, 프리랜서는 직장인을 부러워한다잖아요. 자기가 갖지 못한 건 언제나 커 보이죠. 분명한 건 여기도 열심히 하면 성과를 얻을 수 있어요. 다만 겉으로 보이는 것만 쫓으면 실패할 가능성이 높아요. 마음 단단히 먹고 뛰어들어야 해요. 저로선 좋아하는 일을 찾았는데 포기할 이유가 없죠. 앞으로 더 열심히 해야죠. 그게 제 콘텐츠를 봐주시는 분들에게 보답이라고 생각합니다.”

[나의 옛날이야기] ‘요즘 (젊은) 것들’은 연재 글마다 청년들이 직접 고른 옛 사진들을 싣고자 합니다. 자신의 얘기를 들려주며 그 시절을 들춰보는 ‘코너 속의 코너’입니다. 김슬기 씨가 보내준 두 번째 사진은 1999년 초등학교 6학년 때 합주부 공연을 마치고 어머니와 함께 찍었다고 합니다. 3살 때부터 피아노를 친 슬기 씨는 첼로 연주 실력도 상당했다고 하네요. 현재 키가 170cm가 넘는 슬기 씨는 당시에도 무척 큰 키가 눈에 띕니다. 사진제공 김슬기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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