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에 있는 ‘포도뮤지엄’에 가면 음악가 나이트오프(이이언, 이능룡)이 노래를 만들고 미술가 최수진이 영상을 만든 ‘그러나 우리가 사랑으로’를 들을 수 있답니다.
1년 전에 완성되어 미술관에서만 들을 수 있었던 이 음악과 영상이 최근 유튜브와 음원으로도 공개되었습니다. 목탄으로 그려 지우개로 지운 흔적을 그대로 볼 수 있는 드로잉은 따스한 손을 떠올리게 하고, 나이트오프의 가사와 음악은 소외된 모든 사람들을 어루만지려는 마음이 담겨있습니다.
이들을 직접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나누어보았습니다.
서로의 톤에 맞추고 절제하며 만들다
최수진과 나이트오프가 노래와 영상을 만들게 된 데에는 포도뮤지엄의 요청이 있었습니다. 미술관 전시 ‘그러나 우리가 사랑으로’를 기획한 김희영 대표는 뮤지컬 헤드윅의 ‘사랑의 기원’처럼, 나와 상관없는 일로 여겼던 타인의 이야기에 공감할 수 있도록 만들어 줄 애니메이션을 제작하기로 했고, 그에 맞는 예술가로 두 팀에게 제안을 했다고 합니다. 김민(민): 제작 과정이 어떤 순서로 진행됐나요?
이이언(언): 처음에 접근하기가 쉽지 않았어요. 여러 고민을 하다가 최수진 작가에게 스토리보드와 인물 스케치를 먼저 받아 출발했어요.
이능룡(능): 수차례 소통의 과정이 있었죠. 음악을 만들어 들려 드리고, 작가님이 또 짧은 클립을 보여주시고. 서로 맞는 톤을 찾아가는 과정이 있었습니다.
민: 영상과 가사에 바다가 등장하고, 또 바닥에 선을 긋고 없어지는 장면이 인상깊어요.
최수진(최): 처음 제안을 받았을 때 미술관 전시 서문을 대신해 압축해서 설명할 수 있는 작업이라는 컨셉을 전달받았어요. 그리고 첫 회의에서는 ‘하나의 돌’이라는 키워드에서 출발을 했습니다.
언: 하나의 돌에 모든 존재들이 모여 있다가 그 사이를 바다가 가로 막으면서 함께했던 사람들이 따로 지내게 되는… 그런 식의 우화적인 비유에 관한 이야기에요.
능: 전시가 완성되고 난 뒤 음악과 영상을 만든게 아니라 초반 작업부터 함께 하다보니 완성되지 않은 아이디어와 말들이 섞여가며 작업을 했습니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드로잉
민: 그렇게 만들어진 영상을 보면 목탄 드로잉의 흔적이 없어지지 않고 그 위에 다른 그림이 오버랩 되어 따뜻한 느낌이었어요. 어떤 것을 염두에 두셨나요?
최: 기획 단계에서는 윌리엄 켄트리지 느낌의 목탄 이야기가 나왔는데, 따뜻한 이미지를 만들 수 있는 펠트나 털실을 사용해보기도 했어요. 그러다 지워도 흔적이 남는 목탄으로 결정했고, 흑백이지만 풍부한 화면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았어요.
민: 흔적이 남는 것을 왜 보여주고 싶었나요?
최: 평화로운 마을이 급작스러운 재난을 맞고, 그런 사건의 여운이 계속해서 이어지길 바랐어요.
능: 마을에 위성이 떨어져 사고가 났는데, 그것이 뭉게구름이 되고 그 구름 안에서 사람이 나와서 도망치고… 흔적 안에서 다른 스토리가 나와서 이어지는 것이 중요했던 것 같아요. 제작할 때 최수진 작가 작업실에 지우개 가루가 산처럼 쌓였었답니다.
최: 봄에 3-4달 작업을 했는데, 유화 옆에서 목탄을 쓰면 가루가 다 달라 붙어서 방 하나를 따로 사용했어요. 공기청정기 두 개를 돌렸는데도 나중에 그 방 전체가 새카만 목탄 가루로 가득 찼어요.
소외된 모든 존재를 위한 사랑노래
민: 음악은 제가 잘 알지 못하지만 사운드가 포근하게 감싸주는 느낌이 들어요.
능: 첫 요청을 받을 때는 직설적이고 파워풀한 느낌을 이야기했는데, 나이트오프가 원래 하던 스타일대로 조용한 이야기가 더 깊게 전달하기 좋을 거라고 다시 의견을 냈고 흔쾌히 받아들여졌어요. 좀 더 부드럽고 조용한 목소리로 이야기하는 것들이 작업의 흐름이었습니다.
언: 사회적 이슈를 테마로 노래를 만들면 자칫 구호처럼 될 수도 있잖아요. 그걸 피하고 싶었고, 그래서 난민에 대한 이야기를 넘어 소수자, 혹은 사랑 이야기처럼 들리기를 바랐어요. 사람들의 감정을 다양한 관점에서 어루만져줄 수 있는 곡이 되길 원했고 이 때문에 섬세한 작업이 필요했어요. 지금까지 한 가사 작업 중에 가장 오래 걸렸고 힘들었던 곡이었어요.
민: ‘우리가 택한 것과 택한 적 없었던 모든 것들로 우리가 우리가 된 걸요’ 라는 가사가 그렇게 느껴졌어요. (모든 사람은 다 다른 정체성을 갖고 있으니까…)
언: ‘오래된 오해들을 웃어버려요’라고 하는 것은 사람들이 소수자에 대해 갖는 편견, 무지에서 비롯된 오해와 공포를 생각했어요. 그런 표현들을 잘 정리해 담으려고 애썼죠.
민: 그리고 음악이 절정에 달할 때 말풍선이 나타나고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서로를 이해하는 과정이 공감이 됐어요.
최: 사람들의 마음을 경계를 허무는 매개로 강아지가 등장한 것도 중요해요. 주인공이 배척을 당하지만, 그는 또 약자인 강아지를 구해주거든요. 이렇게 강자와 약자가 정해진게 아니라 누구든 약자이고 이방인일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리고 강아지는 흑이든 백이든 상관하지 않고 누구든 먼저 탐색하고 경계를 뚫고 나간 뒤 친구와 가족이 되거든요.
언: 또 이 곡에서 ‘우린 다르기엔 너무 같아요’라는 가사가 있는데 저는 그 부분이 사람을 넘어 모든 생명에게 적용되는 말이라고 생각해요. 영상에서 강아지가 등장함으로서 동물권에 관한 이야기도 자연스럽게 연결이 되어서 좋았어요.
민: 나이트오프의 음악이 미술관에서 보여지게 된 것은 어떤 기분이었나요?
언: 우선 보통은 뮤직비디오 작업을 할 때 음악이 주가되고 영상은 그 다음이거든요. 그런데 이번엔 뭐가 메인이라고 할 수가 없었고, 계속해서 서로 맞춰가는 과정이 새로운 자극이고 재밌는 경험이었습니다.
능: 전시장에서 기분이 묘했어요. 은유적으로 주제를 다루는 미술가들의 작품을 보다가 ‘그러나 우리가 사랑으로’ 영상을 보니 관객에게 좀 더 친절히 설명해주는 느낌이었고, 우리의 작업이 미술관에서 이런 역할을 하고 있구나 그 때 이해가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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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가 열리는 1년 동안 미술관에는 음원을 공개해달라는 요청도 왔다고 합니다. 또 ‘나이트오프’의 팬들은 제주도에 가야만 들을 수 있는 미공개음원을 멀리서 궁금해했고요.
다음달 초에는 이 음원이 한정판 LP로 발매된다고 합니다. 또 포도뮤지엄의 ‘그러나 우리가 사랑으로’ 전시는 9월 3일까지 무료로 공개된다고 하니 관심있는 분들은 전시장에 직접 가셔서 들어보세요!
※ ‘영감 한 스푼’은 예술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창의성의 사례를 중심으로 미술계 전반의 소식을 소개하는 뉴스레터입니다. 매주 금요일 아침 7시 발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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