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어느 날 산길을 운전하던 저자는 도로 위에 뛰어든 한 동물과 맞닥뜨렸다. 그땐 철석같이 사슴이라고 생각했는데, 얼마 뒤 그가 본 동물이 노루인지 고라니인지 묻는 지인의 질문에 답하지 못했다. 이름은 익숙하지만 이 동물들이 서로 어떻게 다른지 전혀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그제야 깨닫게 된 것이다.
사진작가인 저자는 그날 이후 10년간 충남 서천군 국립생태원과 전남 순천시의 전남야생동물구조센터, 비무장지대(DMZ)를 다니며 고라니를 찍었다. 그리고 고라니 200여 마리를 만난 순간을 50여 마리의 사진과 함께 책에 담았다.
저자와 눈을 맞출 때까지 오래 기다려 포착한 고라니의 얼굴들은 ‘고라니’라는 하나의 이름으로 뭉뚱그리기 어려울 정도로 각양각색이다. 긴장을 푼 고라니의 얼굴은 너무나 예쁘다. 저자는 “함께 보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처음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비슷하지만 똑같은 얼굴은 없다”고 했다. 코끝에 땅콩 같은 작은 혹이 붙은 ‘땅콩이’, 눈매가 삼각형을 닮은 ‘세모’, 한쪽 눈 없이 태어난 ‘자주’ 등 이름도 지어줬다.
도로 위에 툭 튀어나와 운전을 방해하고, 작물을 먹어치워 농가에 피해를 주는 동물로 여겨져 온 고라니에게 생명을 불어넣은 책이다. 저자는 고라니의 얼굴을 기록하는 ‘널 사랑하지 않아’ 프로젝트 등으로 올해 제13회 일우사진상(다큐멘터리 부문)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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