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은 오에 작가의 분신과 같은 캐릭터인 ‘조코 코기토’를 주 화자로 진행된다. 동일본 대지진으로 무너진 서고에서 빈 노트를 발견한 코기토는 비평가 에드워드 사이드의 책 ‘만년의 양식에 대해서(On Late Style)’에서 착안해 만년양식집(晩年樣式集)이라고 이름을 붙이고 글을 쓰기 시작한다. 여동생과 아내, 딸은 코기토의 소설에서 자신들이 ‘일방적으로 묘사되어 온 사실에 불만을 품고 있다’며 반론 글을 보내온다. 코기토는 지진 관련 TV 프로그램을 보다가 ‘우우 소리를 내면서’ 운다. 소설은 여러 사람의 시선이 중첩되면서 오에 작가의 인생과 작품세계를 형상화한다.
작가는 일본 사회가 2011년 ‘3·11’(동일본 대지진)을 겪고 충격과 혼란에 휩싸인 가운데 2012∼2013년 문예지에 이 소설을 연재했다. “원숙한 노작가로서가 아니라 파국에 내몰리는 심정으로 썼다”고 했다. 소설 속 코기토는 노구를 이끌고 원전 반대 집회에 나선다. 맨 앞줄에 섰다가 커다란 유세차 스피커 소리에 노출되는 통에 괴로워하지만 휘청거릴지언정 끝내 낙오하지는 않는다. 평생 반전과 반핵 운동에 앞장섰던 저자의 모습을 보는 것 같다. 오에 작가는 이 작품을 쓰고 10년이 지난 올 3월 88세로 별세했다.
“내가 열 살이 될 때까지/온 나라가 다 같이 전쟁을 했다/…/나라님이/인간의 목소리로/전쟁에 졌다고 통고한 날/라디오 앞에서 교장이 서서 외쳤다./우리는 다시 살 수 없다!/…/그 어떤 절망에도 동조하지 않는 일이다…/…/나는 다시 살 수 없다. 하지만/우리는 다시 살 수 있다.”
책의 맨 뒤에 실린 시다. ‘노년의 곤경’에 처한 화자는 첫 손주에게서 자신과 닮은 모습을 보고 어린 시절 어머니가 했던 수수께끼 같은 말을 떠올린다. 그리고 “내 상상력이 쓴 소설 따위가 어느 만큼의 영향이 있었나, 싶어” 괴로워하다가 다시 “누군가에게 가 닿을 수가” 있다고 희망을 품는다. 작가는 “젊은이들에게 희망을 이야기하는 시”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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