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의 제주에서는 무더위를 피하면서 지친 심신을 달래주는 휴양지를 찾아가 보자. 한라산을 기준으로 동남쪽 권역에는 숨은 듯이 자리잡고 있는 힐링 명소들이 적잖다. 특히 천연의 기(氣) 스폿은 허해진 기력(氣力) 을 회복하는 데 도움을 주는 보양 명당이기도 하다.
● 천년의 향기 비자나무 숲
한라산이 빚어낸 제주의 숲에는 치유의 힘이 배어 있다. 한라산은 혈액 순환을 촉진하고 산소 및 수분 섭취와 배설을 원활하게 해주는 ‘삼초(三焦)의 기’가 강한 산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당연히 한라산의 자손뻘인 제주의 오름과 숲 또한 건강한 기운을 갈무리하고 있다.
대표적인 곳이 제주시 구좌읍 평대리의 비자나무 숲이다. 한라산 동쪽 44만8000여 ㎡의 면적에서 500∼800년생 비자나무 2800여 그루가 자라고 있는 곳이다. 비자나무 단일 수종으로는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피톤치드 향기가 가득한, 그야말로 생기(生氣) 넘쳐나는 비자림이다.
현재 이 숲은 천연기념물(제374호)로 지정돼 국가의 보호를 받고 있다. 사실 비자나무는 옛날부터 귀한 대접을 받아왔다. 마치 아몬드처럼 생긴 비자나무 열매는 구충제로 사용돼 왔다. 목재는 탄력성이 뛰어나고 습기에도 강해 고려 및 조선에 걸쳐 궁중 진상품에서 빠지지 않았다. 특히 비자나무로 만든 바둑판은 돌을 놓을 때 나는 음향과 감촉이 남달라 부르는 게 값이었을 정도라고 한다.
매표소를 거쳐 하늘을 가릴 듯 웅장한 숲을 이루고 있는 비자나무 숲길로 들어서니 한여름 무더위까지 비켜갈 정도로 그늘져 있다. 이곳 안내 간판에는 “피로를 해소하고 인체 리듬을 되찾고자 하는 사람들이 녹음이 짙고 울창한 비자나무 숲을 많이 찾고 있다”고 소개하고 있다.
천천히 숲에서 발산하는 향과 기를 음미하며 거니는 동안 특별한 스토리를 지닌 비자나무를 찾아보는 것도 재미있다. 먼저 매표소에서 가까운 곳에 ‘벼락 맞은 비자나무’가 있다. 약 100년 전 벼락을 맞은 후 지금처럼 암나무와 수나무가 붙어 있는 상태가 됐다고 한다. 당시 오른쪽 수나무 일부가 불에 탔으나 다행히 암나무로는 불이 번지지 않아 두 나무가 공생하면서 수명을 이어오고 있다는 거다. 이곳 마을 사람들은 ‘금실 좋은 부부’라고 하면서 신령스러운 나무로 대접하고 있다.
숲 안쪽으로 더 진입하면 ‘새천년 비자나무’와 ‘비자나무 사랑나무’라는 간판을 단 비자나무가 기다리고 있다. ‘새천년 비자나무’는 이곳 비자림에서 가장 굵고 웅장한 나무다. 높이 15m, 둘레가 6m에 달하는 신목(神木)이다. 고려 명종 때인 1189년에 심은 것으로 전해지는 이 나무는 새 밀레니엄이 시작된 2000년 1월 1일 당시 21세기 제주의 무사 안녕과 번영을 기원하는 의미로 ‘새천년 비자나무’로 지정됐다. 이곳 비자림이 ‘천년의 숲’이란 이름을 얻게 된 배경이다.
비자림을 지키는 터줏대감답게 한눈에 보아도 명당 터에 자리 잡은 게 인상적이다. 무더위를 식힐 겸 나무 주위에 놓인 벤치에 앉아 잠시 쉬거나 가벼운 명상에 잠기면 좋은 에너지가 몸속으로 스며듦을 느낄 수 있다.
바로 근처에는 두 나무가 서로 맞닿아 한 나무가 된 연리목 비자나무가 있다. 연리목이 형성되는 과정이 마치 부부가 만나 한몸이 되는 것과 닮았다고 해서 사랑나무라는 이름을 얻었다. 안내판에는 영원한 사랑을 빌어보라는 권유 글이 씌어 있는데, 좋은 기운까지 갖추고 있어서 금상첨화라 하겠다.
비자나무 숲길을 탐방한 뒤 조선시대 비자림을 지키던 산감(山監)이 마시던 물로 목을 축이면 비자나무 숲의 정기를 오롯이 ‘섭취’한 셈이 된다.
● 우도의 멍때리기 성지
서귀포시 성산항에서 우도행 배를 탄다. 우도에 다가갈수록 양파 모양의 돔들이 인상적인 건축물이 눈길을 확 끈다. 친환경 건축물로 유명한 ‘훈데르트바서 파크’다. 20세기 오스트리아를 대표하는 3대 화가 중 하나이자 친환경 건축가로 유명한 훈데르트바서의 작품과 사상을 테마로 삼은 예술 공원이다.
이곳은 우도의 자연미를 그대로 살린 아름다운 채색 건축물로 유명하거니와, 편안하게 쉬면서 기를 충전할 수 있는 명당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대표적인 곳이 ‘훈데르트 윈즈’라는 이름의 카페 공간이다. 성산 일출봉의 아름다운 풍광을 즐기는 명소이자, 카페 스스로 ‘멍때리안을 위한 성지(聖地)’임을 표방할 정도로 몸과 마음이 이완되는 곳이다.
이처럼 심신이 편안해지는 느낌은 명당 터에서 나타나는 일반적인 현상이다. 실제로 우도는 섬 자체가 이름처럼 ‘누워 있는 소(와우·臥牛)’의 형상을 하고 있다. 섬에서 가장 높은 남동쪽의 우도봉(126.8m)은 소의 머리라고 해서 ‘쇠머리오름’이라 불리고, 섬의 중간 지역은 소의 등처럼 약간 돌출된 지형이고, 북서쪽으로 갈수록 지대가 낮아지면서 소의 꼬리 부분을 이룬다. 이런 지형에서는 서남쪽 훈데르트바서 파크가 들어선 천진항 일대 및 서빈백사해수욕장 일대가 소의 배, 즉 젖 부위에 해당한다. 풍수적으로 소의 젖에 해당하는 공간은 풍요로움과 안정감을 상징한다. 포근하게 쉴 수 있는 공간이라는 뜻이다.
훈데르트 윈즈에서 멍때리기를 하다가 깜빡 존 듯했는데 1시간이 훌쩍 지났다. 이곳에서 최고 속력 30km인 3륜 전기차를 이용해 해안도로를 따라 2km가량 떨어진 서빈백사해수욕장으로 향했다. 서빈백사(西濱白沙)는 흰 모래사장이란 뜻이다. 거무튀튀한 해변 일색인 제주도에서는 좀체 구경하기 힘든 백사장이다. 마치 소의 젖에서 나오는 우유 같다는 느낌도 든다.
사실 햇빛 아래에서 하얗게 반짝이는 백사장은 아열대성 해조류의 일종인 홍조류가 만들어놓은 홍조단괴라고 한다. 살아 있을 때 붉은색이던 홍조류가 죽어서는 색소가 사라져 흰색으로 변한 채 파도에 떠밀려온 덩어리라는 것이다. 홍조단괴가 팝콘처럼 동글동글한 흰색이어서 ‘팝콘 해수욕장’으로도 불리기도 한다. 이곳은 우리나라에서 유일할 뿐만 아니라 세계에서도 드문 홍조단괴 해변이기 때문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보호받고 있다. 에메랄드빛 바다와 흑색 현무암, 그리고 백색 홍조단괴가 조화를 이루고 있는 이 해수욕장에서 물놀이를 하면서 우도의 좋은 기운을 만끽해 본다.
● 천연 암반수와 바다가 만나는 쇠소깍
제주에는 전통 나룻배 모양의 카약을 탈 수 있는 곳이 있다. 서귀포시 효돈마을의 쇠소깍이다. 쇠소깍은 한라산에서 발원한 효돈천이 해안가에서 바닷물과 만나면서 생긴 깊은 웅덩이를 가라킨다.
이곳 역시 우도처럼 소와 연관이 깊다. 효돈마을이 소가 누워 있는 형태라 해서 ‘쇠둔’이라고 불렸다고 한다. 쇠소깍이라는 이름도 여기에서 나왔다. 효돈마을을 가리키는 ‘쇠’, 웅덩이를 의미하는 ‘소’, 끝을 의미하는 ‘깍’을 합친 제주도 말이라고 한다.
이곳은 용암이 흘러내리면서 형성된 계곡과 바다가 만나는 풍경이 아름다워 제주 올레길 탐방객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비경뿐만 아니다. 강과 바다가 만나는 곳은 원래 상업이 발달하기 마련인데, 풍수적으로는 풍요와 부의 기운이 강한 곳으로 평가한다. 특히 쇠소깍에서는 민물과 바닷물의 기운을 몸으로 직접 느껴볼 수 있다. 카약 혹은 단체용 뗏목을 타고 쇠소깍 안쪽으로 깊숙하게 들어가면서 제주의 수(水) 기운을 흠뻑 쐴 수 있다.
이 외에 쇠소깍 인근의 소정방폭포(서귀포시 토평동)와 소천지(서귀포시 보목동)도 기 스폿에 해당한다. 소정방폭포는 정방폭포와 닮아 붙여진 이름인데, 높이는 7m 정도로 낮지만 떨어지는 물줄기 소리만큼은 크고 웅장하다. 백중날(음력 7월 15일)에 소정방폭포에서 떨어지는 물을 맞으면 일 년 내내 건강하다는 속설이 있어 물맞이 장소로 사랑받는 곳이다.
또 소천지는 백두산 천지를 축소한 모습을 닮아 붙여진 이름인데, 현무암으로 된 기암괴석이 병풍처럼 둘러싼 소천지 자체가 명당 터다. 잔잔한 소천지 안에서 스노클링을 하는 재미도 남다르다. 기력 충전용 여름 나기로는 제주도 천연의 명소들이 제격인 듯싶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