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달 1∼3일 ‘백현진 쑈: 공개방송’
김고은-장기하-한예리 등 20명
낭독하다 콩트하며 무대 들락날락
쇼트폼 같은 20개 쇼, 80분 질주
무대 위 볼품없는 냉장고 하나가 덩그러니 웅웅댄다. 그 옆에 무심히 선 배우는 토막글을 소리 내 읽기도, 콩트를 벌이기도 하며 80분간 이어달리기를 한다. 짧게는 2분, 길게는 7분 길이의 쇼트폼 같은 20개의 쇼가 서사적 맥락 없이 연잇는 공연은 언뜻 낯설다. 그러나 어릴 적 책 귀퉁이에 그린 낙서를 빠르게 넘기던 놀이처럼 관객 마음에 잔상을 새겨놓는다.
다음 달 1∼3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에서 컨템포러리 시즌 ‘싱크넥스트23’ 중 ‘백현진 쑈: 공개방송’이 공연된다. 배우 김고은, 가수 장기하 등 소극장에서 만나보기 힘든 톱스타들이 출연 배우로 총출동해 화제가 된 작품이다. 작품의 연출과 미술감독, 출연까지 두루 맡은 아티스트 백현진(51)을 4일 세종문화회관에서 만났다. 그는 “내가 재밌어하고 잘하는 재료를 한데 모은, 듣도 보도 못한 공연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PKM갤러리 소속 화가인 백 씨는 드라마 ‘모범택시’(2021년)의 박양진 회장 등 강렬한 악역 캐릭터를 인상적으로 연기해 배우로서도 눈도장을 받았다. 음악인으로도 이름을 날렸다. 국악퓨전밴드 이날치의 장영규와 함께 ‘어어부 프로젝트’로 활동하던 시절 박찬욱 감독의 영화 ‘복수는 나의 것’(2002년)에서 음악감독으로 활약했다. 또 전설적인 현대무용가 피나 바우슈(1940∼2009)의 2003년 내한공연 ‘마주르카 포고’ 에선 그의 음악이 안무곡으로 사용됐다.
이번 공연에선 단막극과 낭송을 비롯해 무대 소품으로 설치미술 작품을 활용하는 등 여러 장르를 빌려 ‘문명’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는 인간이 변화하는 존재일 뿐, 진보하는 존재는 아니라고 말한다. 그는 “누가 우월한지 끝없이 비교하는 사회에 그만하라고 말하고 싶었다”며 “형식은 독특하지만 내용은 누구나 이해할 수 있도록 최대한 쉬운 문장으로 구성했다”고 말했다.
배우 한예리와 코미디언 문상훈 등 이번 공연 무대에 오르는 사람만 총 20여 명에 달한다. “주어진 제작비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조합”인 이들은 순전히 ‘재미’를 위해 모였다. 출연진은 장면을 들락날락하며 연기도 하고 토크쇼도 한다.
“그동안 캐스팅 타율이 경이로운 수준이었는데 이번엔 많이 까였어요. 말도 안 되는 조건으로 출연을 제안했죠. 작품이 흥미롭다는 이유만으로 단번에 ‘오케이’한 고마운 사람들이 출연합니다.”
여러 매체를 종횡무진하며 ‘괴짜’ 대접을 받는 백 씨가 가장 중시하는 것은 ‘재미’다. 최근에는 재미로 밴드 활동명을 백현진씨에서 ‘벡’현진씨로 바꿨다. 그는 “20, 30대까지만 해도 별명이 ‘홍대 염세왕’일 정도로 냉소적이었다. ‘이래선 안 되겠다’는 생각에 일상에서 재미를 느끼고자 훈련했다”며 “꾸준히 귀동냥, 눈동냥 하며 예술적 영감을 찾는다”고 고백했다.
“1995년에 처음 공연했을 땐 다들 ‘저 인간 뭐냐’고 했어요. 제 색깔대로 오래 하다 보니 이젠 사람들이 좋아해 주네요. 운신의 폭이 넓어진 만큼 과거의 저처럼 오랜 무명에 놓인 좋은 ‘일꾼’들과도 다양한 작업을 해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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