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동 ‘로스톤’ 설계한 건축가 정의엽
바위 모양 기둥들이 천장 받치는 모습
“자연과 인간 사이 단절 극복을 표현”
‘서울의 차이나타운’으로 불리기도 하는 서울 영등포구 대림동은 훠궈 등 중국 현지 음식 가게 등이 유명하지만 안쪽 노후주택가는 대체로 ‘가보고 싶은 동네’에 꼽히는 편은 아니다. 하지만 올해 5월 깎아지른 듯한 바위산을 닮은 건물 한 채가 들어서며 동네 분위기가 달라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지하 1층, 지상 6층 규모인 이 건물의 이름은 ‘로스트 스톤(Lost Stone)’을 줄인 ‘로스톤’. 너비와 생김새가 다른 콘크리트 소재 바위 기둥 48개가 고인돌처럼 층층이 천장을 받치고 있는 이색적인 모양새다. 1∼3층은 카페로, 4층은 갤러리로 운영 중인 이 건물을 보려고 최근 이 동네를 찾는 20, 30대가 적지 않다. 소셜미디어 등에는 “대림동에 이런 현대적인 건물이 있을 거라곤 생각도 못 했다”는 방문객들의 반응이 이어지고 있다.
7일 오후 이 건물 카페에선 손님들이 굴곡진 콘크리트 바위에 기대앉은 채 창밖 동네 풍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건물을 디자인한 정의엽 에이엔디건축사사무소 대표(47·사진)는 기자와 만나 “이곳을 찾은 이들이 바위로 둘러싸인 산 속에 들어온 것처럼 느꼈으면 좋겠다”고 했다. 정 대표는 경기 파주시의 카페 ‘루버월’로 2016년 한국건축가협회상을, 전남 여수시 상가주택 ‘웨이브월’로 2018년 대한민국 신진건축사대상 우수상을 받았다.
정 대표가 처음 ‘로스톤’의 이미지를 떠올린 건 2020년 10월. 제주 가파도를 여행할 때였다. 그는 “제주 바다의 수평선과 사람이 발 딛고 설 수 있는 땅 사이에 솟아오른 바위를 보며 내가 자연과 동떨어진 존재가 아니라 연결돼 있는 일부임을 깨달았다”며 “자연과 인간 사이의 단절을 극복할 수 있는 매개로 바위를 떠올리게 됐다”고 했다. 그때부터 그의 스케치북엔 바위에 기대거나 누워 쉬는 사람, 층층이 쌓아올린 바위 건축물의 이미지가 쌓였다.
이미지가 실현된 건 지난해 초 대림동 노후주택을 물려받은 40대 건축주를 만나면서다. 건축주는 “할아버지의 오래된 집처럼 오랫동안 이 동네에서 버틸 수 있는 건축물을 짓고 싶다”고 했다. 정 대표의 머릿속엔 바위산의 이미지가 떠올랐다고 한다.
바위를 형상화한 콘크리트 기둥들 사이엔 전면 창을 내 안팎의 시선이 단절되지 않고 통하도록 설계했다. 정 대표는 “이 건축물이 ‘차이나타운’이라는 동네의 경계를 허물고 많은 이들이 드나드는 문화공간이 되길 바랐다”고 했다.
최근엔 일본인 관광객으로부터 “서울을 여행하다가 이 건축물을 보기 위해 대림동을 처음 와 봤다”는 인스타그램 메시지를 받았다고 한다.
“로스톤 안에서 여러 언어가 뒤섞이는 모습을 상상해 봤어요. 앞으로도 이 동네를 찾는 이들이 더욱 많아지길 바랍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