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이 흐른 지금 와서 보니 제가 아이들을 살린 게 아니라 아이들이 저를 살렸어요. 그때 저는 선생이라고 볼 수 없었어요. 그냥 착실한 월급쟁이였죠. ‘하룻밤만 재워 달라’며 나를 찾아온 아이들의 용기와 의지가 저를 선생으로 만들었습니다.”
학교부적응 청소년 707명과 함께 한 삶을 담은 신간 ‘선생 박주정과 707명의 아이들’(김영사)을 펴낸 박주정 광주 진남중 교장(60)이 8일 전화인터뷰에서 아이들과의 첫 만남을 떠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그날은 1993년 6월 2일 늦은 밤이었다. 2년차 초보교사였던 그의 집 앞에 고등학생 8명이 들이닥쳤다. 초인종도 없는 대문 앞에서 주먹으로 문을 쾅쾅 두드리는 아이들은 이미 술에 만취한 상태였다. 문을 열고 나가보니 그가 담임을 맡고 있는 광주의 한 실업계고의 ‘문제아’들이었다. 밤늦게 찾아온 아이들을 차마 내쫓을 수 없어 받아줬더니, 하루 이틀 그렇게 5개월이 흘렀다. 그 기간 그에게 “우리 아이가 어디 있느냐”고 전화하는 학부모는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는 “33㎡ 남짓한 집에서 저와 아내, 딸 세 식구 살기도 빠듯했지만 가족마저 외면한 오갈 데 없는 아이들을 길바닥에 내쫓을 수는 없어서 시작한 일”이라고 했다.
어쩔 수 없이 시작한 동거가 아이들을 변화시켰다. 그의 집에서 함께 공부한 아이들이 학기말 고사에서 전교 1등부터 7등까지 차지한 것. 박 교육장은 “새벽 4시에 일어나 주유소 아르바이트를 하고 오후엔 그렇게 번 돈으로 기능사 자격증 학원을 다녔다”며 “‘문제아’인 줄 알았던 아이들이 사실은 생의 의지를 갖고 있었던 것”이라고 했다. 꿈이 생긴 아이들은 그해 10월 박 교장의 집을 떠나며, 오토바이를 절도한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고 있었던 또래 무리를 그의 집으로 데려왔다. “우린 이제 사람 됐으니 이젠 이놈들 사람 좀 만들어 달라”면서.
“이 아이들을 나까지 포기하면 안 될 것 같아서 4000만 원 대출 받아 학교 근처 광주의 방 다섯 칸짜리 폐가를 전세로 얻었죠. 함께 먹고 살려고요. 그렇게 10년간 함께 지낸 학생 수가 총 707명입니다. 제가 선택해서 집으로 데려온 아이는 단 한 명도 없었어요. 아이들이 스스로 자기와 닮은 아이들을 집으로 데려왔습니다.”
당시를 회상하던 박 교육장은 “지금 생각해보면 늘 아슬아슬한 순간의 연속이었다. 학생들이 나를 향해 욕설을 내뱉고 주먹을 휘두르는 위험천만한 일들이 벌어졌다”고 했다. 진수(가명)는 그를 향해 “꺼져, 이 XX야”란 폭언을 달고 살았던 학생이었다. 또래와 어울리지 못하고 늘 겉돌았다. 어느 날 새벽, 4시간 동안 아무런 말없이 진수 곁에 앉아 모든 폭언과 분노를 들어주던 그에게 진수가 속내를 털어놨다. 부모에게 버림받고 자신을 학대하는 할아버지와 함께 살면서 늘 자살 충동에 사로잡혀 있었다는 얘기였다. 그는 “나는 진수를 붙들고 같이 울어준 것밖에 한 게 없는데, 그날 이후 진수는 마음을 다잡고 학업에 열중해 대학에서 문예창작과를 전공한 뒤 지금은 경기 용인에서 책방을 운영하고 있다”고 했다.
“제 목을 조르면서 분노를 쏟아내던 한 아이가 어느 날 제가 와 눈물을 흘리면서 30만 원만 빌려달라더군요. 문제집을 사서 공부해보고 싶다고요. 그 아이는 2년 뒤 해군사관학교에 들어가 지금은 대령이 됐어요. 그때 아이들의 몸부림엔 ‘살려 달라’는 외침이 담겨 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하지만 혼자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학생들의 식비와 교재비를 충당하기 위해 딸아이 돌 반지까지 전당포에 넘겼지만 빚이 계속 불어났다. 그는 “지금까지도 그때 진 빚이 1억4000만원 가까이 남아 있다”며 “이 일을 나 혼자 할 게 아니라 제도로 만들어 사회가 해야 된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고 했다.
그는 2004년부터 광주광역시교육청 장학사로 근무하며 학교부적응 학생을 위한 단기 위탁교육시설 ‘금란교실’을 2004년 국내 최초로 개설했다. 2008년에는 학교부적응 학생과 학업중도탈락 학생을 전담 교육하는 대안학교 ‘용연학교’를 설립했다. 2015년엔 자살 등 위기상황에 놓인 학생들을 위해 24시간 신속 대응하는 ‘부르미’를 창설해 초대 단장을 맡았다.
20년간 교육청의 장학사로 각종 교권침해와 학교폭력, 극단선택 현장을 조사한 그는 “죽도록 노력했지만 아이들은 여전히 자살을 시도하고 학교폭력 수는 줄지 않고 있다”며 “가만 생각해 보니 부모라는 한 축이 무너져 있던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일탈의 기로에 놓인 아이의 손을 부모가 놓아버리면 아이들은 무너져 내린다”며 “아이들에게는 많은 사람이 필요한 게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을 믿어줄 한 사람이 필요하다”고 했다.
후배 교사들에게는 “교권침해 문제로 괴로워하고 있다는 걸 선배로서 누구보다 잘 알지만, 그 어떤 때에도 교사의 책임과 의무는 변하지 않는다”는 말을 남겼다. “아이들은 복도에서 스치듯 던진 선생님의 한마디와 눈빛을 평생 간직합니다. 우리의 한마디가 한 아이에겐 평생의 원망이 될 수도, 희망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최근 책이 출간되고 옛 제자들을 만난 박 교장은 1993년 6월 자신의 집을 찾아온 제자들에게 “그때 왜 하필 나를 찾아왔느냐”고 물었다고 한다. 그러자 어른이 된 제자가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그때 선생님은 학교 결석 일수가 잦아서 퇴학당할 뻔한 학생들을 어떻게든 졸업시키려고 출석부를 품에 안고 살았잖아요. 혹시라도 다른 교과 선생님들이 결석 처리해 출석 일수가 모자라면 우리가 퇴학당할까 봐. 그런 ‘또라이’ 같은 선생님이라서 믿고 집을 찾아갔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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